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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석천의 시시각각] “박근혜 정부도 별수 없을걸?”

중앙일보 2013.02.27 00:14 종합 34면 지면보기
권석천
논설위원
그제 박근혜 정부 출범은 우리에겐 새로운 시장이 열린 거나 다름없소. 청와대·정부의 달라진 면면도 파악해야 하고, 신규 비즈니스 모델도 구상해야 하고…. 비즈니스? 당신들 누구냐고? 아, 아직 소개를 안 드렸네. 우린 수요와 공급을 매치시켜 주고, 중요한 사업이 막혔을 땐 뚫어주는 일을 하지. 일종의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할까. 누구는 ‘브로커’ ‘악마’라고 하지만 우리끼린 ‘로비스트’라고 부르오. 내가 오늘 얼굴을 내민 건 우리 업계에 관한 오해가 안타까워서요.



 첫째는 왜곡된 이미지. 여러분은 대개 어두운 인상에 음흉한 미소를 떠올릴 거요. 실제 우린 번듯한 정장, 밝은 표정의 사업가들이오. 생각해 보시오. 제비에게 신세 망친 여성들이 제비인 줄 알고 당하는 게 아니거든. 측근이니, 실세니 하는 분들도 대표이사, 회장 명함 내밀고 정중히 고개 숙이면 껌뻑 넘어가지. 그래서 “공무원의 적(敵)은 담벼락 밖에서 3000㏄ 이상 검은색 세단 굴리는 사람들”이라고 하는 거요. 왜 하필 검은색 세단이냐고? 정부 쪽 계신 분들이 좋아하는 색상인 데다 접대 후 댁까지 모셔다 드릴 때도 편하니까.



 둘째, 여러분 앞에 있는 사람은 영원히 배신하지 않을 거란 착각이오. 일단 악마의 덫에 걸려들면 ‘그와 내가 어떤 사이인데…’라고 철석같이 믿게 되지. 개중에 의리가 강한 친구도 있긴 하오. 문제는 사람이 아니라 상황이 배신한다는 거요. 역대 대통령의 아들들부터 노건평, 이상득, 박영준씨까지 모두 믿는 이들에게 발등 찍혔소. 인간성이 나빠서 검찰에 리스트 털어놓았을까? 아니지. 그들도 자신과 가족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입을 연 거요. 욕할 필요도, 탓할 이유도 없소. “당신이 믿는 사람이 당신을 감옥에 보낸다”는 진실이 슬플 뿐이지.



 셋째로는 우리가 여러분 양복 안주머니에 꽂아주는 돈 봉투에 대한 환상, 판타지를 지적하고 싶소. 돈 받은 사람들, 재판에 가면 열에 아홉은 “전화 한 통화 해줬을 뿐” “대가 없이 받은 돈” “순수한 정치자금”이라고들 하지. 하지만 우리도 엄연한 직업인이라오. 우리가 술 사고 돈 주는 건 여러분이 아니라 여러분이 앉은 자리 때문이오. 어떤 판사가 얘기했다지. “대가성은 주고받은 말이 아니라 지위 자체에 있다”고.



 넷째, 감시·감독만 하면 우리 비즈니스를 막을 수 있다? 내가 보기엔 이게 가장 웃기는 소리요. 우리는 가스와 같소. 틈만 생기면, 아니 틈이 없으면 뚫어서라도 스며들어 가지. 승부는 목표물을 청와대와 정부 청사 밖으로 끌어내느냐 여부에서 갈린다오. 누구든 약속 장소에 나오는 순간 우리 승률은 99%로 올라가지. 밖에선 절대 만나지 않는다는 사람도 있겠지만 돈에든, 권력에든 욕망이 있는 자는 반드시 나오게 돼 있거든. 공식 모임도 없는데 호텔 식당이나 고급 음식점 기웃거리는 자들, 그들이 바로 우리의 영업 대상이오.



 박 대통령이 펼쳐놓은 인사 명단을 보면 가슴이 좀 답답하긴 하오. ‘밀봉인사’ ‘묻지마 인사’ 때문은 아니고 2인자, 실세 후보자가 보이지 않아서요. 작업에 들어가려면 라인이 보여야 하는데 그게 선명하지가 않아. 우리 짐작엔 내부 갈등·비리는 용납하지 않겠다는 권력 관리 차원인 듯한데….



 그래도 뭐 그렇게 걱정되진 않소. 이 정도에 포기하면 프로가 아니지.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까지 단 하나의 정권도 친인척·측근 비리에 흔들리지 않은 적이 없었소. 시간이 가면 팽팽한 활시위도 늘어지기 마련. 기다리면 분명 기회가 올 거요. 그때가 언제냐고? 임기 5년의 시한부 권력이란 사실을 잊고 자만에 빠질 때, 측근들이 ‘우리들의 세상’ 만들겠다고 설치고 다닐 때, 그때 우린 공격을 개시할 거요.



 이번만큼은 다를 거라고? 흐흐. 우리도 그러길 바라오. 자, 두고 봅시다. 5년 뒤에 누가 웃을지.



권 석 천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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