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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행복 시대의 봉화 올려라

중앙일보 2013.02.25 01:15 종합 1면 지면보기
1979년 11월 21일, 청와대 떠나던 27세 박근혜



송호근 교수가 본 박근혜 시대





유난했던 올겨울 한파도 작별을 고하는 시간, 한반도 상공에 떠오른 정월 대보름달은 흐뭇했다. 진 곳 마른 곳 가리지 않고 너와 나의 삶의 터에 골고루 내려앉는 달빛은 인류학적 감동이었다. 사람들은 그 달빛에 축원을 실었다. ‘달아 높이곰 돋아샤 멀리곰 비치오시라, 아으 다롱디리.’ 천수백 년 전, 그 감홍색 달이 정읍에 사는 한 아낙네의 소원을 들어주었듯이, 대한민국 오천만 국민의 염원을 한 몸에 담고 2013년 정월 보름달은 서쪽으로 졌다. 그리고 희망의 새 아침을 발령했다. 오늘 2월 25일, 지난날의 시름과 애환을 일단 접어두고 새로운 시간의 개막을 알리며 힘차게 타오를 저 봉화(烽火)에 희망의 내일을 걸어보기로 하자.



 유수와 같은 시간에 어디 마디가 있겠냐만, 지난 일을 갈무리하고 새로운 각오로 나서려는 정치학적· 사회학적 인식이야말로 역사를 진전시키는 문명의 힘인 것을. 민주주의가 시작되면 모든 것이 저절로 해결될 것이라 믿었던 우리의 순진한 오류(誤謬), 민주화 25년 동안 ‘더 나은 민주주의’를 향해 서로를 질타하고 반목하던 우리의 현란한 이력(履歷)은 결국 대한민국 역사를 이만큼이라도 발효시킨 생장의 효모였음을 오늘만은 아무런 단서 없이 인정하자. 그래, 우리가 빚어낸 저 경험의 지층에는 동아시아 어디에서도 발견되지 않는 정통과 이단의 혹독한 투쟁사가 묻혀 있고, 식민·전쟁· 빈곤이라는 20세기 인류의 3대 악에서 벗어나려는 서러운 탈출기가 광맥처럼 얽혀 있다. 돌아보면 아찔한 저 얼룩진 세월을 넘어 성공의 신화를 쓴 대한민국 국민에게 세계가 새로운 역사를 쓰라는 명령을 다시 발령하는 오늘, 새 시대를 끌고 갈 지도자와 함께 역사의 전선과 기대지평을 가다듬는 것은 성숙한 시민의 책무이리라.



 국가의 운명을 대통령 한 사람에게 온통 떠맡겼던 시대가 있었다. 증산·수출·건설의 함성에 청춘을 바쳤던 시대가 있었다. 군림하는 권력이 주체였던 그런 시대를 지나 이제 ‘국민이 주인인 시대’ ‘국민을 섬기는 시대’로 진화했다. 그런데, 국민적 권력을 바라보는 우리의 시선은 인색해졌다. 민주화 시대 대통령들이 기대를 한껏 부풀리고 속절없이 퇴장하는 악순환과, 사익과 과시 효과에 집착하는 정치권에 대한 실망감이 반복되었기 때문이다. ‘환상의 냉각’이 ‘기대의 상승’보다 더 빨리 쉽게 일어나는 한국 정치의 고질적 병폐를 치유할 책임은 정치권과 민주시민의 공동 몫이다.



 기대와 절망, 포기와 망각의 교차 속에 오늘 한 분의 대통령이 다시 태어난다. 그분은 국민행복, 통합, 희망의 새 시대를 말할 것이다. 국민과 결혼했다는 그의 여성성, 섬세한 손길과 겸허한 내면의 힘을 우리는 믿는다. 균형감각과 모성(母性)으로 균열과 갈등에 얼룩진 사회현실을 치유해줄 것으로 믿는다. 노동자·약자·서민층에 대한 후보 시절의 애정이 감동적 정치철학으로 뿜어져 나올 것을 믿는다. 치유의 리더십은 극단적 자해로 치닫는 북한 핵위협을 안정시키고, 세계 최빈국과 몸을 맞댄 비극적 역사의 접점을 평화의 숨골로 변환시킬 것을 믿는다. 한반도에 신역사(新歷史)를 쓰고자 했던 개화기 선각자들의 백 년 염원이 이제 그 작사(作史)의 계기를 맞아야 한다는 통지서가 여성 대통령과 민주시민에게 전달된 것이다.



지난 두 달 동안 뜻밖의 단독적 행보에 대한 세간의 평가, 통치철학과 소통능력에 대한 약간의 우려는 곧 부식되고, 민주시민의 성숙한 코러스를 조율하는 멋진 컨덕터가 될 것으로 믿는다. 독단의 정치가 국가를 얼마나 무서운 난장(亂場)으로 몰고 가는지를 33년 전 오늘 입성하는 그곳 청와대에서 아프게 목격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보낸 지난 세월이 ‘고독의 외길’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33년 만에 청와대로 돌아가는 귀환의 길에서 흉탄에 스러진 어머니, 격류의 탄환에 소멸된 아버지의 영정을 가슴 속에 품을 것이다. 그런 만큼 33년 격동의 세월이 발육한 시대의 품위를, 성숙해진 사회를, 민주적 권력의 본질을 누구보다 냉철히 깨닫고 있을 터이다. 33년이 고독의 외길이었다면, 이제는 국민과 함께 하는 삶이자 국민에 의해 존재이유를 부여받는 사람임을 말이다.



 유년기와 청년기의 화려했던 시간들이 널려 있는 청와대, 그러나 딱히 터놓고 심정을 나눌 지인들이 없는 듯한 여성 대통령에겐 홀로 감당하기 벅찬 그곳엔 국민들이 함께 한다는 사실을 말이다. 한반도에 국민행복과 희망의 언어를 전하는 여성 대통령의 시대에 오늘은, 오늘만은, 조건 없이 동참하기로 하자. 새 시대의 개막을 알리는 봉화가 오르면, 가무(歌舞)를 사랑하는 한민족답게 마음 터놓고 송축의 노래를 불러도 좋겠다. 서민 민복과 신역사 쓰기를 축원하는 그런 노래를.



송호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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