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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고 공부하고 글 쓰고…같이 커가는 공동체

중앙일보 2013.02.25 00:54 종합 25면 지면보기
10년 전 편집자와 필자로 만난 인연으로 평생 동지가 된 세 사람은 출판사 ‘북드라망’에서 ‘밥과 벗과 길’을 이뤘다. 그들은 “공부하면서 운명의 주인이 되시길”이라고 기원했다. 오른쪽부터 북드라망 대표 김현경, 편집장 김혜미, 고전평론가 고미숙씨.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들어서자마자 편집장 김혜미(32)씨에게 손을 덥석 잡혔다. 이곳에 오신 분들 모두 당하셨다는데 태어난 연월일시(年月日時)를 묻는다. 생체실험이 아니고 사주(四柱) 실험이다. 배움을 위한 사례 연구이기에 복채는 안 받는다니 밑져야 본전이다.

문화 창업 리포트 ⑦ ‘북드라망’



서울 사간동 출판사 ‘북드라망(Book Dramang)’ 편집실은 그래서 누구나 한 번쯤 놀러 갈만한, 문자 그대로 복덕방(福德房)이다.



‘운명학’을 바탕에 깐 인문 의역학(醫易學) 전문출판사로서 이 정도는 수인사란다. 앞으로 10년 인생을 몸을 중심으로 풀어주니 계사년 정월부터 운명 용법이 훤하게 트이는 듯하다. 멀리 인왕산이 병풍처럼 펼쳐지고, 가까이 경복궁이 안마당마냥 들여다보이니 통유리 너머가 한 폭의 풍경화다.



 북드라망은 고전평론가 고미숙(53)씨를 중심으로 책과 공부와 공동체를 하나로 연결하자는 희망을 담아 지난해 7월 문을 열었다. 우주 만물이 한 몸이자 한 생명이라는 인드라망에 책을 뜻하는 북을 붙여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삶을 지향하는 지혜의 네트워크임을 표현했다. 대표를 맡은 김현경(41)씨는 10년 전 한 출판사의 편집자로서 필자 고미숙씨를 만나는 순간, 감전되듯 먼 길이 보였다고 했다.



 “여느 저자들과 달랐어요. 첫 눈에 스승임을 알아봤죠. 책을 내는 분들이 대부분 출판사 대표만 상대하는데 고 선생은 편집을 담당하는 저만 찾았어요. 편집자 대접을 해준 거죠. 원고 마감도 칼 같았고 제 의견을 구하며 책 만듦새에 독립권을 줬어요. 같이 커가자는 거죠. 그 분이 의역학을 인문학과 연결해 책을 죽 쓰고 싶은데 이 분야만 해줄 출판사가 있었으면 하시기에 용기를 냈죠.”(김현경)



 출판사 등록 6개월 만에 책 13권을 낸 놀라운 생산력은 핵심 필자인 고미숙씨 덕이다. 8월에 『나의 운명 사용설명서-사주명리학과 안티 오이디푸스』, 올 1월에 『고미숙의 몸과 인문학』을 냈고 6월 초에 다산 정약용과 연암 박지원의 지성사 평전이 나올 예정이다.



여기에 다른 출판사와 계약이 끝난 고씨의 ‘열하일기 삼종세트’와 ‘달인 삼종세트’를 더해 북드라망의 강철망을 이뤘다.



 “그렇다고 고 선생 책만 내는 건 아닙니다. 고 선생도 우리하고만 책을 내는 건 아니고요. 북드라망의 성격에 맞는 원고만 보내시죠. 저희가 사명감을 지니고 하는 일이 일반인 필자들의 공부 결과를 책이란 열매로 맺어주는 겁니다. ‘서당 시리즈’가 그 한 예인데 배움으로 변화를 겪은 학인(學人)들이 쓴 글은 ‘공부하면서 같이 가자’는 우리 마음을 더 단단히 해줬죠.”(김혜미)



 북드라망의 탄생에는 형제 같고 자매 같은 인문의역학연구소 ‘감이당(坎以堂, www.kamidang.com) 힘이 컸다.



‘몸, 삶, 글’을 뼈대로 한 감이당은 ‘도심에서 유목하기, 세속에서 출가하기, 일상에서 혁명하기, 글쓰기로 수련하기’를 꿈꾼다.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를 넘어선 학문공동체다.



 배우기에 그치지 않고 앎을 글쓰기로 실천하는 데 중점을 두어 이곳에 등록한 이들은 꼭 자기 글을 창조해야 한다.



학벌과 나이를 차별하지 않는 이 너른 마당에 늦깎이 중년 남녀가 몰리고 있는 건 반가운 일이다. 20, 30대 수평적 네트워크가 40, 50대를 만나 세대간의 네트워크를 이루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감이당에서 활동하는 다양한 연령층의 학인 180명과 미래의 학인들이 북드라망의 든든한 원고 은행이다. 이들이 삶에 단단히 발 딛고 몸으로 토해내는 글이 있기에 북드라망의 사주는 좋다.



 “고미숙 선생은 감이당 젊은 세대를 위해 공부방을 세계로 넓혀가는 꿈을 얘기해요. 내후년쯤 미국 뉴욕, 몇 년 뒤 쿠바와 중남미로 감이당의 감수성을 확장하고 싶다는 거죠. 여행과 연수, 즉 소비의 방식으로만 만나던 세계화가 아니라 의역학이라는 동양적 지혜를 함께 나누는 식의 글로벌화죠. 그 일에 북드라망이 힘을 보태고 싶습니다.”(김현경)



 옆에서 듣고만 있던 고미숙씨가 “아, 아이디어가 떠올랐어”라며 한마디 했다. “고전평론을 하고 싶다는 사람은 많은데 실제로는 나밖에 없잖아요. 자기들도 등단하고 싶다는 학인들이 많아. 북드라망이 연말쯤 신춘문예 비슷하게 고전평론과 인문평론 등단 코스를 만들면 어떨까요.”



글=정재숙 문화전문기자

사진=권혁재 사진전문기자



◆ ‘북드라망’ 창업 비용은 …



학인들의 공부방과 학사가 서울 남산 언저리 필동에 흩어져있고, 출판일의 효율성을 위해서도 사무실은 서울 광화문 근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사간동에서 지금 공간을 보았을 때 ‘바로 여기다’ 무릎을 쳤다. 경복궁 건너편 건물 4층에 올라서니 일대 풍광이 다 우리 거였다. 이야말로 인문의역학 책을 낼 명당 자리였다.



 40평 단일 층을 3000만원 보증금에 월 250만원에 임대했다. 풍경 값이라 생각하니 아깝지 않았다. 올 11월에는 바로 옆에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이 개관할 예정이라 문화의 거리에 사는 보람도 크다.



 고미숙 선생의 책은 신간이 기본 1만부라 이를 잘 지켜가면서 학인들의 책이 새로운 출간 흐름이 되도록 노력할 계획이다. 북드라망 식구들은 ‘공부하면서 일한다’가 가장 큰 기쁨이기에 ‘공부하면서’를 여러 일터에 전파하는 게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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