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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의 시시각각] 박근혜, 한반도 운명 개척하라

중앙일보 2013.02.25 00:23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남한 대통령에게 북한은 숙명적인 숙제다. 북한이 어디로 가느냐에 따라 7500만 한민족 운명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한국인은 반세기 만에 한반도 남쪽에 위대한 국가를 만들어놓았다. ‘한국문명(the Korean Civilization)’이라 부를 만하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이 문명은 아직 미완성이다. 북쪽 2500만이 압제와 가난 속에서 신음하고 있는 것이다. 이들을 구해내야 비로소 문명이 완성된다. 그러므로 남한 대통령은 북한 동포를 위해서도 북한을 극복해야 한다.



 50년 전인 1963년 12월 박정희 대통령에겐 두 가지 숙제가 있었다. 김일성의 도발을 막아내고 남한을 가난에서 구하는 것이다. 취임식에서 박 대통령은 비장한 표정이었다. 미스 코리아가 꽃다발을 전하고 여고 합창단이 축가를 불렀지만 그는 별로 웃지 않았다. 조선일보는 이렇게 적었다. “2년 전 5월 웃지 않는 얼굴로 데뷔한 그는 대통령에 취임하는 영광의 날에도 웃지 않는 얼굴로 일관했다.”



 취임사에서 박정희는 숙제에 정면으로 맞섰다. 그는 “치욕과 후진의 굴레”를 벗기 위해 “오염과 악풍을 세척하자”고 했다. 그는 북한도 잊지 않았다. “노예 상태 1천만 동포”를 위해 공산주의에 승리하겠다고 공약했다. 약속은 지켜졌다. 남한은 가난에서 탈출했고 경쟁에서 김일성을 이겼다.



 오늘 그의 딸이 대통령에 취임한다. 겉으로만 보면 아버지보다 사정이 훨씬 좋다. 세계 5대 공업국, 7대 무역국, 10위권 경제에다 국민총생산(GNP)은 북한의 40배나 된다. 그러나 북한 문제로 보면 상황은 아버지보다 어렵다. 북한 정권은 안으로는 2500만을 극한으로 몰고 있다. 밖으로는 핵으로 5000만 동포를 위협한다. 김일성은 안정된 권력이었다. 반면 지금 31세 김정은은 불안하다. 인류사에서 3대 세습이 성공한 적은 없다.



 안보의식으로 보면 상황은 더 심각하다. 아버지 시절, 가난하고 피폐했지만 국가 의식은 투철했다. 지도자는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건설하자”고 외쳤다. 예비군을 만들고 방위산업을 일으켰다. 대부분 국민은 따라주었다. 눈에 불을 켜고 간첩을 신고했다. 월남 가는 장병들에게 태극기를 흔들었다.



 지금 안보의식은 뿌리부터 흔들린다. 김대중은 김정일을 만나러 4억5000만 달러를 주었다. 김정일을 만나고는 국민에게 “이제 한반도에 전쟁의 위험은 없다”고 했다. 역사상 가장 순진한 발언이다. 노무현은 “인도 핵은 되고 북한 핵은 왜 안 되나”라고 했다. 역사상 두 번째로 순진한 발언이다.



 이명박과 그의 군대는 유약하고 무능했다. 섬마을이 불바다가 되는데도 보복 하나 하지 못했다. 국민이 혈세로 F-15K를 수십 대나 사주었는데도 응징작전에 벌벌 떨었다. 합참의장이란 사람은 북한이 핵을 만들어도 선제 타격하면 된다는 허풍 논리를 펴고 있다.



 국민은 국민대로 풀어져 있다. 적잖은 이가 “설마 동포에게 핵을 쏘겠느냐”고 한다. 어떤 이들은 “적당히 돈을 줘서 달래지 왜 싸우나”라고 한다. 지도층 상당수는 “북핵은 미·중이 해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야당은 “전쟁이냐 평화냐”로 국민을 선동한다. 지금 남한은 인류 역사상 가장 순진하고 가장 무책임한 국가 중 하나다.



 박근혜는 이런 지도층, 이런 군대, 이런 국민, 이런 야당으로 북한과 맞서야 한다. 북핵이라는 ‘검은 운명’과 싸워야 한다. 악(惡) 조건이다. 그러나 길은 있다. 그 길을 뚫으려면 박근혜는 자신부터 바꿔야 한다. ‘대북 신뢰 프로세스’라는 환상을 깨야 한다. 11년 전 그는 평양에서 융숭한 대접을 받았다. 그러나 그는 껍데기만 본 거다. 그가 보지 못한 곳에서 사람들은 굶주리고 갇혀 있다.



 대선 직후 박근혜는 건강검진을 받았다. 컴퓨터단층촬영(CT)도 찍었을 것이다. 그의 심장에선 안보라는 글자가 찍혀 나왔는가.



김 진 논설위원·정치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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