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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인들 “시퀘스터가 뭐지”

중앙일보 2013.02.25 00:01 종합 23면 지면보기
열차가 마주 달리는데 양측 기관사는 멈출 줄 모른다. 서로 “물러나라”고 목소리를 높인다. 그런데도 바라보는 국민은 무덤덤하다. 미국 백악관과 의회 간의 시퀘스터(sequester·연방 예산 자동 삭감) 줄다리기를 둘러싼 이상한 풍경이다.


재정절벽 막판 절충 학습효과
“이번에도 버티다 타결하겠지”
월가도 무덤덤 … 주가 영향 없어

 지난해 말 한 차례 미뤘던 시퀘스터 발동 시한이 다음 달 1일로 다가왔다. 백악관·행정부와 의회가 이달 말까지 합의안을 내지 못하면 이날을 기점으로 2013 회계연도에만 850억 달러(약 92조원) 연방 예산이 자동 삭감된다. 2021년까지 9년치 삭감액은 무려 1조2000억 달러에 달한다.



 정부 예산이 삭감되면 최대 100만 명 이상 공무원의 무급 휴가가 현실화될 수 있다. 23일(현지시간) AFP통신에 따르면 78개 기관 65만 명에 이르는 공무원을 회원으로 둔 미국 최대 공무원 노조인 연방공무원노조(AFGE)가 이 같은 가능성을 경고하고 나섰다. 국방부는 4월 말부터 최대 22주간 일주일에 하루씩 무급 휴가를 떠날 수 있다고 민간인 직원들에게 이미 통보했다. 연방항공청 직원 4만7000여 명의 무급 휴가가 시행될 경우 “주요 공항에서 최소 90분 이상 항공편이 연착될 우려가 있다”(레이 라후드 교통장관)는 경고도 나왔다.



 그러나 정작 미 국민은 관심이 없다. 최근 USA투데이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퓨리서치센터에 따르면 조사 대상자의 43%가 시퀘스터에 대해 ‘조금’ 들어봤다고 답했다. 29%는 이 이슈에 대해 전혀 들어본 바가 없다고 했다. ‘꽤 많이’ 알고 있다는 네 명 중 한 명꼴인 27%에 불과했다. 월가조차 심드렁하다. 23일 뉴욕 증시 다우존스지수는 전일 대비 0.1% 상승했다.



 이 같은 배경에는 미 공화당과 민주당 간의 예산안 ‘치킨게임’이 데자뷰(기시감을 주는 현상)가 돼버린 탓이 크다. 지난 연말 양당은 재정절벽(fiscal cliff) 파국 직전 협상을 마무리했다. 이번에도 공화·민주 양당은 협상 자체보다 서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3일 예산 삭감이 경제 성장을 둔화시킬 뿐 아니라 국가 안보까지 위협할 수 있다고 했다. 공화당 측은 “오바마 의 세금 인상 욕심은 끝이 없는 것 같다”고 맞섰다.



 이번 퓨리서치 조사에선 오히려 시퀘스터가 그대로 발동되도록 내버려 두라는 응답자도 40%나 됐다. 월가의 무관심 또한 “더한 고통을 피하기 위해 정치인들이 또다시 최후의 타결을 할 거라고 기대한다는 뜻”(허핑턴포스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것이 임박한 경제 충격을 상쇄하진 못한다. 워싱턴 싱크탱크인 바이파티잔정책센터는 시퀘스터가 시행될 경우 최소 100만 일자리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향후 몇 년간 실업률이 심각한 수준을 계속 유지하게 될 것”이라는 전망도 내놨다. 시퀘스터가 발동되면 2014년까지 70만 개 이상의 일자리가 사라질 거라는 관측도 있다. AFP는 미국의 올해 성장률이 2.0~2.6% 수준에 그칠 것이라고 내다봤다.



  강혜란 기자



◆시퀘스터(sequester)= 격리시킨다는 의미로 재정 용어로선 일괄 삭감의 뜻이 있다. 3월 1일 시행되면 미 연방정부 지출을 연간 1100억 달러씩 10년간 총 1조2000억 달러 자동 삭감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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