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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보경·이민지·오수현 ‘골프 소녀시대’ 열다

중앙선데이 2013.02.24 01:07 311호 21면 지면보기
호주와 뉴질랜드의 10대 한인 교포 소녀. 고보경, 오수현, 이민지가 돌풍 샷을 날리며 소녀시대 못지않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

샛별로 떠오른 호주·뉴질랜드 10대 교포 골퍼들

가장 뜨거운 스포트라이트를 받고 있는 선수는 여자 아마추어 세계랭킹 1위에 올라있는 리디아 고(16·한국명 고보경)다. 6세 때 부모를 따라 뉴질랜드로 이민간 리디아 고는 지난해 1월 호주여자프로골프(ALPG) 투어 뉴사우스웨일스오픈에서 전 세계 남녀 프로 대회 최연소(14세9개월) 우승을 차지하며 주목받기 시작했다. 8월에는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캐나다 여자오픈에서 1969년 조앤 카너(버딘스 인비테이셔널) 이후 43년 만에 아마추어 우승이자 최연소(15세4개월) 우승자로 화제를 뿌렸다. 그뿐이 아니다. 지난 2월 10일에는 유럽여자프로골프투어(LET) ISPS 한다 뉴질랜드 여자오픈에서 또다시 최연소 우승 기록(15세9개월)을 작성하며 여자 골프계의 블루칩으로 급부상했다.

골프계에서는 리디아 고가 당장 프로에 데뷔해도 손색이 없다며 뜨거운 러브콜을 보내고 있다. LPGA 투어 통산 37승을 거둔 베테랑 카리 웹(39·호주)은 “리디아 고는 세계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골퍼다. 그의 활약을 봐라. 이미 프로 무대에서 뛸 준비가 끝났다”고 말했다. 리디아 고에게는 전 세계 프로 투어로부터 출전 요청이 쇄도하고 있다.

2000년 이후 유학 러시, 한때 500여 명
리디아 고보다 한 살 많은 오수현(17)도 지난 2월 3일 끝난 LET 볼빅 RACV 레이디스 마스터스에서 공동 2위를 차지하며 주목을 끌었다. 부산에서 태어난 오수현은 초등학교 2학년 때인 2004년 호주로 이주했다. 2006년 취미로 골프를 시작했고 2009년 호주여자오픈에 역대 최연소인 12세로 출전했다. 호주 국가대표로 활동하면서 지난해 11월부터 최근까지 호주 주요 아마추어 대회에 여섯 차례 출전해 네 번이나 우승했다. 아마추어 세계랭킹 5위다.

호주교포 2세 이민지(17)도 아마추어 여자 골프 세계랭킹 2위에 올라 있는 실력파다. 1996년 호주 퍼스에서 클럽 챔피언을 지낸 아버지(이수남)와 티칭 프로인 어머니(이성민)의 1남1녀 중 장녀로 태어났다. 한 살 어린 남동생(이민우)도 골프 선수로 활동하고 있는 골프 패밀리다. 초등학교 3학년 때까지 수영 선수로 활동한 이민지는 이후 골프로 전향해 지난해 US 여자 주니어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올해는 호주 여자 아마추어에서 우승하는 등 발군의 실력을 뽐내고 있다.

리디아 고와 오수현, 이민지 같은 10대 천재 소녀들의 등장은 2000년을 전후해 시작된 이주 행렬에서 비롯됐다. 호주·뉴질랜드 유학 1세대는 박희정(33)이다. 1994년 호주 시드니로 유학간 박희정은 15세 때인 1995년 최연소의 나이로 호주 여자 주니어 대회에서 우승했고, 크고 작은 주니어·아마추어 대회에서 42승을 거두며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박희정은 “처음 호주에 갔을 때만 해도 한국 선수들이 거의 없었다. 그러나 당시 호주 달러가 600원 선이었고 미국에 비해 비용이 훨씬 저렴하다는 장점이 있어 선택했다”고 말했다.

2000년 이후 유학을 떠나는 주니어들이 크게 늘어나 2000년대 중반에는 호주와 뉴질랜드 유학생 수가 500여 명에 달했다. 학업과 골프를 병행할 수 있고 라운드 환경이 좋다는 매력이 크게 부각됐기 때문이다. 중 3이던 2004년 호주 골드코스트로 유학을 떠났던 양희영(24·KB금융그룹)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골프를 시작했는데 한국에서는 라운드를 하기가 힘들어 유학을 결심했다. 호주는 한국과 달리 저렴한 비용에 자유롭게 라운드할 수 있다. 코스 상태도 좋다”며 “영어 공부를 할 수 있다는 점도 마음에 들었다”고 말했다.

LPGA 투어에서 활동 중인 강혜지(23·한화)를 비롯해 한국여자프로골프(KLPGA) 투어의 안신애(23·우리투자증권), 김다나(24·넵스), 김보배(26·한국피엠지) 등은 뉴질랜드 유학파다. 미국프로골프(PGA) 2부 투어인 웹닷컴투어에서 활동하는 대니 리(23·한국명 이진명)는 뉴질랜드로 유학을 갔다가 시민권을 받고 정착한 케이스다.

국가대표 되면 용품·훈련비까지 보조
호주와 뉴질랜드가 인기를 끈 이유는 천혜의 자연 환경과 좋은 훈련 여건 덕이 컸다. 호주에는 약 1700개의 골프장이 있는데 주니어들은 1년에 150~300 호주달러(약 16만7000~33만5000원)만 내면 마음껏 공을 칠 수 있다. 뉴질랜드도 1년에 200~300뉴질랜드달러(약 18만~27만원)를 내면 된다. 크고 작은 대회도 많아 실전 경험을 쌓으면서 기량을 키울 수 있는 것도 매력 포인트다. 호주, 뉴질랜드 PGA AA 멤버인 이신 J골프 해설위원은 “나이별, 지역별, 메이저 대회 등 1년에 20~30개의 주니어 대회가 열린다. 또 수준에 따라 A·B·C 디비전으로 나누어 대회에 나갈 수 있다. 실력만 뒷받침되면 나이가 어려도 시니어 아마추어 대회에 출전할 수 있어 기량 향상에 도움이 된다”고 설명했다.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은 파격적인 지원도 받을 수 있다. 리디아 고나 오수현, 이민지처럼 국가대표가 되면 정부와 협회의 정책적인 지원을 받으면서 돈 걱정 없이 골프에 전념할 수 있다. 박희정은 “1995년 호주 여자 주니어에서 우승하자 시민권 없이도 국가대표를 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국가대표가 되자 용품은 물론 훈련비까지 보조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2000년대 후반부터는 호주와 뉴질랜드로 향하는 유학생의 발걸음이 뜸해지고 있다. 불경기가 이어지고 있고 환율 상승으로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리디아 고의 삼촌인 고재민(49·전 중부대 골프지도학과 교수)씨는 “2004년 뉴질랜드에서 아카데미를 시작한 뒤 100명이 넘는 한국 학생을 받았다. 하지만 요즘에는 호주와 뉴질랜드를 모두 합쳐도 유학생 수가 채 100명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한국 골프가 세계 최고 수준이 됐고 국내 훈련 여건이 많이 좋아진 것도 요인”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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