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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 직원 잘 다루려면 ‘우정’과 ‘중간’ 잘 활용해야”

중앙선데이 2013.02.24 01:51 311호 26면 지면보기
러시아에서 사업을 하는 한국인들은 “되는 것도 안 되는 것도 없다”고 불평한다. 대기업 임원에게 진출하라고 권하면 “그 어려운 곳에 왜 들어가느냐. 돈 벌 다른 곳도 많은데”라고 한다. 러시아가 석유가 많고, 가스가 많고, 자원이 많다고 큰소리쳐도 아직은 한국인에겐 머나먼 땅이다. 오죽하면 ‘러시아와 러시아인은 수수께끼’라고 표현한다.

카자코바 교수가 말하는 러시아 투자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

그런데 블라디보스토크 국립 경제·서비스 대학 베로니카 카자코바(사진) 교수가 러시아인을 이해하는 열쇠를 제공한다. 지난 20일 서울에서 열린 극동투자 포럼에서다. 보통은 포럼에서 투자정책과 전략을 말하는 데 ‘러시아 투자를 위한 인문학적 성찰’이 처음으로 소개된 것이다. 포럼은 한양대 아태지역연구센터(엄구호 소장)와 블라디보스토크 주재 한국 총영사관(이양구 총영사) 주최로 열렸다. 카자코바 교수의 발표문부터 소개한다. 포럼 직후 프레지던트호텔 19층 세미나실에서 그를 만났다.

러시아인은 자신들이 ‘진실, 지성, 친절’의 표상이라 여긴다. 다른 민족보다 적극적이고 열성적이라고 본다. 늘 새로운 목표를 추구하며 사랑과 우정을 원한다. 러시아의 전형적 스테레오 타입으로 다음과 같은 점이 꼽힌다.
▶ 보수적이며, 변화에 수동적이다.
▶ 이견을 싫어하며 집단적이다
▶ 타협을 약함의 표시로 보고 자신이 강하다고 느끼면 강하게 나온다.
▶ 상대가 의견을 바꾸면 의심하고 함정이 있다고 본다.
▶ 돈에는 큰 관심 없고 때로는 거래를 포기할 준비가 돼 있다.
▶ 계약은 상호 이익이 될 때만 이행할 의무가 있다고 본다.
▶ 가혹한 지침을 싫어하며 시스템을 속이려 한다.
▶ 거의 반사적으로 ‘넷(아니오)’이라고 말한다. 심지어 “아니오, 나는 당신에게 동의합니다”라는 식이다.
▶ 마음을 터놓고 얘기하는 ‘우정’을 중시하고 직장에서도 마찬가지다. 함께 식사하고 휴일에 만나 업무를 얘기하고 조언을 구한다.

-러시아인의 세계를 잘 보여주는 흥미 있는 연구인데 근거가 있나.
“통계청이나 유명 상담가, 극동지역 연구소, 러시아 비즈니스인들의 말을 두루 종합한 것이다. 이양구 총영사가 한국인이 같이 일할 러시아인을 알아야 한다며 발표를 권해 인문학적 접근을 했다.”

-러시아인들이 스스로를 친절하다고 생각한다니 뜻밖이다.
“우린 스스로를 그렇게 생각한다. 가까운 사람을 만나면 잘 웃는다. 상점이나 거리에선 무뚝뚝해 보일 것이다. 밖에선 잘 웃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음은 따듯하고 연민에 차 있다. 사실 많은 선행을 한다. 얼마 전에 인터넷에 암에 걸린 아이 얘기가 올랐는데 순식간에 900만원이 모아진 경우도 있다.”

-좀 구체적으로 묻겠다. 러시아인은 변화를 싫어한다는데 개혁도 시장경제도 거부하나.
“그 정도는 아니지만 아무튼 러시아인은 누가 투자를 설명해도 새로운 것들을 싫어한다. 처음엔 ‘아니다’라는 반응을 보인다. 외국인들이 비즈니스하기가 어렵겠다 여기겠지만 다행히 큰 비즈니스맨들의 마인드는 많이 바뀌었다. 내가 말하는 것은 사장이 아니라 그 밑의 생각이다.”

-그들은 돈까지 싫어한다는 것인가.
“다들 돈을 벌려고 사업을 한다. 그런데 러시아인의 경우 돈을 벌고 싶어도 일이 마음에 안 들거나 자기 생각을 넘는 상황이 되면 돈을 포기할 수도 있다. 물론 사람마다 차이가 있고 상황이 많이 바뀐 것은 사실이다.”

-알겠다. 러시아인들의 조직생활도 한국인과 달라 보인다.
“한국인이나 일본인은 윗사람이 명령하면 일단 ‘네’라고 하지만 러시아인은 일단 소신껏 아니라고 말한다. 결국 나가서 일은 하지만… 이럴 경우 한국인 사장이 화를 내고 밀어붙이면 안 된다. 그러면 러시아인들은 잘 삐친다. 그렇다고 너무 많은 자유를 주는 것도 안 된다. 그러면 일을 하지 않는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왜 그 일을 해야 하는지 설명해 주는 게 좋다. 아시아인들은 윗사람이 명령하면 실제론 못하더라도 일단 따르지만 러시아인들은 그렇지 않다. 어느 수준까지 설명해 줘야 할지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아이들도 아니고 매번 어떻게 그러나.
“초기 단계엔 그렇다. 그러나 몇 달 고생하고 나면 괜찮을 것이다. 사장을 인정하면 러시아인은 말을 잘 듣는다. 그것이 바로 ‘드루즈바(우정)’다. 소중한 것을 서로 공유하고 마음을 터놓고 말하는 것이 드루즈바다.”

-수직적인 관계를 가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인가.
“그러면 힘들어진다. 옛 스타일로 수직적 분위기를 유지하는 회사들이 있지만 이직률이 아주 높다. 한번은 인터넷에서 한국 회사에서 일하는 러시아인의 글을 읽었다. 그는 윗사람(한국인 사장)이 직원에게 자신의 감정을 자주 너무 노골적으로 드러낸다고 썼다. 못하는 말이 없고 주위를 신경쓰지 않는다는 것이다. 러시아 사람들은 그런 것에 감정이 상한다. 사회주의 경험이 남아 있어 회사에서 위아래를 구별하는 것을 싫어한다.”

-변화를 싫어하고 수직적 관계를 거부하며 협상을 약점을 드러내는 것으로 본다면 회사 생활과 시장경제를 어떻게 하나. 협상도 존중하지 않고 상호 이익이 안 된다면 계약을 거부한다니 이해가 어렵다. 한국인들이 가장 힘들어하는 부분이다.
“협상 자체는 존중해도 협상 과정에서 뭔가 빨리 변하면 의심하고 수상하게 본다. 계약의 경우 자기 부담이 많아지는 것 같으면 계약이 날아갈 위험이 있다. 100%는 아니지만. … 한국과 러시아인을 비교한다면 한국인들이 계약을 훨씬 잘 지킨다.”

-러시아인들이 일의 단조로움을 그렇게 못 견디면 대량 생산 공장은 못하겠다.
“그런 것을 오래 못한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 현대자동차나 다른 외국 자동차 회사가 있는데 그곳 조립 생산라인에 있는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처음에는 조립라인에서 일해도 곧 승진시켜야 한다. 어떤 사람이 현대자동차 공장 조립라인에서 10년씩 같은 일을 한다면 비웃음을 살 것이다.”

-그렇다고 모두 승진시키거나 자리 이동을 해줄 수는 없다.
“요는 러시아인들은 성과를 만들어내면 올라가길 기대한다는 것이다. 승진 자리가 적다면 자리라도 옮겨줘야 한다. 그래서 러시아인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는 것이다. 개인 목표가 중요하다. 회사와 개인의 목적이 다르면 단호하게 자기 길로 간다. 그게 유럽 사람과 닮은 러시아인의 특징이다. 유럽에선 일에 흥미가 있어야 하고 자기 목적을 이루는 게 중요하지 않나.”

-러시아인과 함께 일하기가 어렵겠다.
“러시아인은 내가 너보다 높다고 드러내면 안 된다. 그렇게 하면 아랫사람은 속으로 윗사람을 나쁘게 생각한다. 사회주의의 역사가 남아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은 모두가 평등하다고 생각한다. 러시아인은 너무 강하게 해도, 너무 친절하게 대해도 안 된다. 러시아어에 좋지도 나쁘지도 않다는 ‘노르마르노’란 단어가 있다. 중간이다. 딱 그렇게 대해야 한다. 서로 다른 멘털리티를 이해해야 한국인과 러시아인이 서로 사업을 잘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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