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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철 칼럼] 위기의 양돈농가

중앙선데이 2013.02.24 03:13 311호 34면 지면보기
“기름이 자르르 흐르는 새까만 자웅을 식이는 사람보다도 더 귀히 여겨… 그의 방 한 구석에 짚을 펴고 그 위에 재우기까지 하던 것이 젖이 그리워서인지 한 달도 못돼서 숫놈이 죽었다. 나머지의 암놈을 식이는 애지중지하여 단 한 벌의 그의 밥그릇에 물을 받아 먹이기까지 하였다.”

이효석의 소설 『돈(豚)』에 나오는 장면이다.
내게도 돼지와 함께 한 방에서 잠을 잤던 소년 시절이 있다. 나무상자 한구석에 모여 잠든 새끼 돼지들을 바라보며 나도 잠들곤 했다. 달큰한 젖냄새가 좋았다. 겨울밤이면 새끼 돼지가 얼어 죽을까 봐 두세 시간마다 어미에게 데려가 젖을 먹였다. 아버지를 따라 돼지우리까지 걸어가는 밤길은 왜 그리 추웠던지…. 그래도 젖을 먼저 물려는 새끼들의 발버둥과 꿀꿀거리며 젖을 물리는 어미의 모습을 보면 행복했다. 따스한 봄날에는 우리 앞에 펴 놓은 짚 위에서 잠이 들었다. 그때마다 새끼 돼지들은 주둥이로 땅을 파듯 내 얼굴을 밀어 잠을 깨우곤 했다. 그 감촉을 어찌 표현할 수 있을까.

1970년대까지만 해도 대부분 농가엔 돼지우리가 있었고 너나 할 것 없이 한두 마리씩 키웠다. 음식물 찌거기나 쌀뜨물에 쌀겨 등을 먹여 키웠다. 농가 경제의 효자였다. 하지만 사료로 키우는 양돈장이 생겨나면서 돼지우리는 차차 추억 속으로 사라졌다. 이젠 수백, 수천 마리의 대규모 양돈장에서 돼지를 사육하고 있다. 양돈농가 평균 사육 두수는 2012년 12월 기준 1642마리다. 며칠 전 경북의 한 50대 초반 양돈인이 양돈장에서 뇌졸중으로 쓰러져 숨졌다. 혼자서 500여 마리의 돼지를 돌보던 그는 돼지 가격 폭락으로 큰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종일 양돈장에 매달려 애지중지 키운 돼지를 출하할 때마다 마리당 12만원 정도의 적자를 냈다. 눈덩이처럼 불어난 빚더미에 스트레스가 쌓여 쓰러졌을 거라고 양돈인들은 말한다.

양돈 농가들이 도산 위기에 빠졌다. 지난해 9월부터 시작된 적자 때문에 파산하거나 양돈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하고 있다. 불과 1년 전 『금(金)겹살』로 불리던 돼지고기 가격이 급락했기 때문이다. 1년 새 가격이 절반 이하로 뚝 떨어졌다. 2011년 초 발생한 구제역으로 330만 마리를 살처분한 이후 공급은 꾸준히 늘어난 반면 경기침체로 수요는 줄었기 때문이다. 또한 물가안정을 명분으로 정부가 무관세에다 항공료 지원까지 하며 대량 수입의 길을 튼 게 단단히 한몫했다. 구제역 피해 농가가 새로 기른 돼지 물량이 대량 출하될테니 무관세 수입을 중지해달라는 건의는 묵살됐다. 결국 수급 상황을 제대로 예측하지 못한 정부의 무능이 화를 키운 셈이다. 정권교체기의 무사안일인지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강 건너 불구경이다. 한돈협회 정선현 전무이사는 “이런 상황이 서너 달 더 계속되면 양돈 농가 80%가 도산하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돼지는 주식인 쌀 다음으로 중요한 제2의 식량, 단백질 식량이다. 양돈산업의 붕괴는 우리의 먹거리 시장을 혼란에 빠뜨린다. 우리나라 전체 농업생산액에서 축산업 비중은 이미 40%를 넘어섰다. 우리 식탁 또한 쌀 중심의 탄수화물에서 동물성 단백질로 전환되고 있다. 그래서 축산은 식량안보 차원에서 다뤄야 할 산업이다. 양돈농가의 줄도산 사태를 정부가 막아야 할 이유다. 하지만 정부는 지난 10년 새 농촌의 고령화와 구조조정으로 축산인들이 절반 이상 감소한 이 분야의 요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것 같다. 한·미, 한·EU 자유무역협정(FTA) 발효 이후 축산업이 큰 타격을 받고 있지만 정부는 수수방관하고 있다. 오죽하면 정부가 축산업을 붕괴시키고 있다고 비난하겠는가.

박근혜 정부가 내일 출범한다. 새 정부는 서둘러 돼지가격 안정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 위기의 양돈농가를 살려야 한다. 삶의 기본인 먹거리를 생산하는 농촌이 안정돼야 나라가 안정된다. 박정희 대통령 시절 새마을운동으로 ‘잘 살아보세’를 다짐하던 농촌의 모습을 다시 볼 수 있길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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