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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구 월드컵’ 꿈꾸는 WBC

온라인 중앙일보 2013.02.24 02:21


세계인의 야구 대축제 브랜드는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다. 2006년 1회 대회부터 클래식(Classic·고전)이라고 이름 붙이며 자부심을 표현했다. 미국 메이저리그 챔피언전 월드시리즈를 폴 클래식(Fall Classic·가을의 고전)이라고 부르는 것에서 아이디어를 차용했다. 축구 월드컵처럼 WBC가 세계인의 축제가 되기를, 명승부의 고전이 되기를 기원하는 뜻을 담았다.

‘그들만의 경기’ 올림픽 퇴출 불명예 세계화로 씻는다





WBC의 탄생 목적은 ‘야구의 세계화’에 있다. 미국을 중심으로 한 북미 대륙과 한국·일본 등 동아시아 나라들이 활발한 프로리그를 운영하는 것과 달리 유럽과 남미 등은 야구의 저변이 취약하다. 국가대항전을 통해 야구를 세계화한 종목으로 만드는 것이 WBC의 꿈이다.



제3회 WBC는 3월 2일부터 17일 동안 열전에 들어간다. WBC는 세계 야구를 이끌고 있는 미국 메이저리그와 다른 나라 프로리그 선수들이 모두 참가해 최강 중의 최강을 가리는 빅 매치다.

이 대회는 야구의 저변을 넓히고 인기를 끌어올리자는 취지로 2006년 처음 개최됐다.



축구 열기는 모든 대륙에서 뜨겁지만 야구의 인기와 인프라는 미국과 동아시아 지역에 편중돼 있다. 그동안 세계선수권대회 격인 야구 월드컵, 대륙간컵 등의 국제대회가 있었지만 주로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한 탓에 흥미를 불러일으키지 못했다. 세계 최고 무대인 메이저리그가 앞장서 WBC를 만들자 각 프로리그도 하나둘 동참했다.

걱정 반, 기대 반으로 치러진 1회 대회는 꽤 성공적이었다. 메이저리그 스타 선수들이 나섰고, 약팀이 강팀을 잡는 이변이 속출했다. 한국은 미국을 잡았고, 일본이 쿠바를 꺾고 우승했다. 예상과 전혀 다른 결과들이 나오면서 WBC는 세계적인 이슈를 만들었다.



WBC는 2009년 2회 대회를 열고 이후 4년마다 개최키로 했다. 짝수 해에 열리는 축구 월드컵, 올림픽과 개최연도가 겹치는 것을 피해 스포츠팬들의 관심을 야구로 끌어오기 위해서다. 국제야구연맹(IBAF)이 주관하는 야구 월드컵이 2011년 폐지되면서 WBC는 명실상부한 세계 최고이자 유일의 야구 국가대항전으로 인정받고 있다.



세계 최고·유일의 야구 국가대항전

미국은 WBC 이전부터 야구의 세계화를 위해 노력했다. 메이저리그는 1990년대부터 호주와 중국·이탈리아 등 야구 개발도상국의 발전과 붐 조성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코치를 파견하고 장비를 건네줬다.

메이저리그는 당시 미국과 캐나다, 중남미 시장을 탈피해 전 세계에서 우수한 선수를 끌어들이려 했다. 또 반대로 메이저리그 선수를 전 세계로 내보내며 활발한 교류를 시도했다. 시장 팽창이 목적이었다. 박찬호가 1994년 메이저리그 LA 다저스에 입단한 후 수많은 유망주가 미국 무대에 도전했다. 반대로 1998년엔 한국 프로야구에도 외국인 선수들이 들어왔다. 야구에도 거대한 교류가 일기 시작한 것이다.

WBC는 메이저리그가 물밑에서 진행한 세계화 노력을 세상 밖으로 내보인 결과물이자 세계화 진행 정도를 측정하는 시험대였다. 메이저리그는 2004년부터 선수노조와의 협의를 거쳐 IBAF와 함께 WBC 개최를 준비했다. 반대 목소리도 있었지만 충격적인 사건이 WBC 창설을 가속화했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야구를 올림픽 정식 종목에서 퇴출한 것이다. IOC가 2005년 총회에서 이 같은 결론을 내리면서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노조, IBAF는 함께 위기감을 느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을 끝으로 야구가 올림픽에서 빠지자 새로운 국제대회의 필요성은 더욱 커졌다.

자크 로게 IOC 위원장은 당시 셀릭 커미셔너에게 “야구가 여름 올림픽에서 살아남으려면 메이저리거가 나와야 한다”고 최후 통첩을 했다. 그러나 셀릭 커미셔너는 “올림픽이 열리는 때(8~9월)는 메이저리그 시즌 중이라 어렵다”며 일축했다. 그리고 메이저리그 시즌 전에 열리는 WBC를 만드는 것으로 IOC에 맞불을 놨다.

우여곡절 끝에 시작한 WBC는 불완전했다. 나라 간의 실력 차가 뚜렷하고, 대회를 개최할 만한 구장과 날씨를 갖춘 국가가 얼마 없다는 것이 치명적인 약점으로 지적됐다.

그래서 나온 아이디어가 유연한 출전 규정이다. WBC는 1회 대회부터 국적에 관계없이 나올 수 있다는 규정이 적용됐다. 국가 대항전은 국적이 같은 선수가 한 팀을 구성하는 것이 대원칙이지만 WBC 규정은 훨씬 너그러웠다. 덕분에 미국 국적의 메이저리그 스타 마이크 피아자는 고조부의 나라인 이탈리아 대표로 출전했다. 역시 미국 출신의 거포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2회 대회에서 부모의 출신지인 도미니카공화국 유니폼을 입었다.

메이저리거는 WBC에 참가하는 선수의 다수를 차지한다. 이들이 미국이 아닌 조부모나 부모가 태어난 야구 개발도상국을 대표해 WBC에 참가할수록 전력은 평준화된다. 해당 국가에 야구 붐을 일으키는 효과도 얻을 수 있다.

WBC는 대회 분산 개최도 이어가고 있다. 월드컵이 한 나라에서, 올림픽과 각 종목의 세계선수권대회가 한 도시에서 열리는 것과 비교하면 대단히 특수하다. 2006년 1회 대회는 일본·푸에르토리코·미국에서 본선 라운드가 벌어졌다. 2회 대회는 멕시코·캐나다가 추가돼 5개 국가가 동시에 대회를 열었다. 보다 많은 대륙과 국가의 팬들에게 야구를 즐길 수 있는 기회를 주기 위해서다.

밥 두푸이 메이저리그 사장은 “분산 개최에 대한 두려움이 없진 않았지만 시청률, 관중, 수익이 함께 늘었다. 모든 것이 잘 될 거라는 자신감이 생겼다”고 말했다. WBC는 3회 대회에서 처음으로 1라운드 아시아 개최국을 일본과 대만 두 곳으로 늘려 영역을 확대했다.



아직은 걸음마, 가능성은 무한대

올해로 3회째를 맞이한 WBC는 아직 걸음마 수준이다. 대회 규모나 수익, 시청자 수 등을 따져봤을 때 축구 월드컵과 상대가 되지 않는다. 2009년 2회 WBC에는 경기당 2만548명이 입장했다. 2010년 남아공 월드컵 4만9670명의 절반에 미치지 못했다. 전 세계 시청자 수는 300억 명이 보는 것으로 추산되는 월드컵과 100배 이상 차이가 난다. 대회를 주관하는 미국에서 WBC 전국 시청률은 약 1%에 불과했다.

규모가 작으니 경제적 효과도 월드컵에 비할 수 없다. WBC에서 두 대회 연속 우승한 일본은 약 7600억원의 수익을 얻을 것으로 예상했다. 2002년 한·일 월드컵을 통해 한국이 100조원 가까운 유·무형의 이득을 얻은 것을 고려하면 WBC가 사회 전반에 미치는 파급력은 작다. WBC 브랜드는 아직 월드컵 파워와 비교할 수 없다.

그러나 발전 속도에 주목하면 얘기는 달라진다. 1회 대회 때 관중 수가 74만451명이었지만 2회 대회 때는 80만1408명으로 늘었다. 9%의 상승률을 기록했다. 1회 대회 때 26개에 불과했던 스폰서가 2회 대회에서 56개로 두 배 이상 증가하면서 수익도 크게 늘었다. WBC 조직위는 2회 대회가 끝나고 3200만 달러(약 347억원)를 벌어들였다고 발표했다. 1280만 달러 흑자를 낸 1회 대회의 2.5배 수준이다. 2회 대회는 글로벌 기업 맥도날드, 펩시콜라, 니콘과 미국 통신기업 AT&T, 가전제품 매장 Best Buy(베스트 바이), 일본 맥주기업 아사히 등이 대회를 후원해 WBC에 대한 관심을 실감케 했다. 특히 대회 스폰서의 다수를 차지한 일본 기업은 일본이 두 대회 연속 우승하고 결승전이 스포츠경기 시청률 기록까지 갈아치우면서 WBC 특수를 톡톡히 누렸다.

이런 자신감을 바탕으로 WBC는 3회 대회부터 참가국 수를 16개국에서 28개국으로 늘렸다. 외연의 확대로 수익 증대는 물론 ‘축구의 나라’ 브라질과 스페인 등 야구 신흥국이 본선에 진출하면서 새로운 시장 개척에도 도움이 될 것으로 예상된다.



대만 자이(嘉義)현 도류구장에서 전지훈련 중인 WBC 한국 대표팀이 19일 오후 NC다이노스와 연습경기를 가졌다. 경기 전 선수들이 밝은 표정으로 파이팅을 외치고 있다. 도류(대만)=김민규 기자


미국에 유리한 수익 배분으로 갈등

WBC의 성공적 개최와 흥행으로 야구의 세계화 노력은 가시적 성과를 내고 있다. 이탈리아가 2010년 프로리그 IBL(Italia Baseball League)을 출범시켰고, 호주도 메이저리그의 지원 아래 2010년 프로리그 ABL(Austrailia Baseball League)을 시작했다.

이뿐이 아니다. WBC의 영향으로 제3세계까지 야구에 눈을 뜨는 중이다. 하비 실러 전 IBAF 회장은 “2회 대회가 끝나고 쿠웨이트에 갔었는데 현지 체육부 관료들이 학교에서 야구 수업을 시작하고 싶다며 용품 지원을 요청했다”고 전했다. 한국 프로야구는 WBC 바람을 타고 지난해 700만 관중을 돌파했다. 더불어 매년 티켓·마케팅·중계권료 수익이 늘고 있다.

물론 WBC에는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도 있다. 미국이 수익의 절반 이상을 가져가는 배분이 다른 국가들로부터 불만을 사고 있다. 특급 메이저리거는 여전히 불참률이 높다. 또 세계 영화시장을 잠식한 할리우드처럼 미국 중심의 야구 세계화를 경계하는 시선 역시 존재한다. 미국 다음으로 야구시장이 큰 일본 프로야구는 수익 배분 문제로 3회 대회 보이콧을 선언했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WBC는 양적·질적으로 성장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210여 개국 중 12개국 정도만 프로리그를 열고 있다. 새로운 나라에서 뛰어난 선수가 나오고 리그가 늘어날수록 WBC는 진짜 ‘야구 월드컵’에 가까워진다. 송재우 JTBC 해설위원은 “5회 대회가 열리는 2021년쯤이면 WBC가 여러 측면에서 제대로 된 전 세계의 축제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우철 기자 beneat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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