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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교수도 놀란 박원순 영어, CNN인터뷰서…

온라인 중앙일보 2013.02.24 02:09
19일 박원순 시장(왼쪽 끝)이 ‘두바이교통상’ 시상식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두바이 왕세자(가운데)와 함께 식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사진 서울시]
지난 5일 박원순 서울시장은 시 청사를 찾아온 미 CNN 방송의 스타 기자 리처드 퀘스트와 1시간 가까이 인터뷰를 했다. 인터뷰 도중 퀘스트는 “당신을 아는 한국인들에게 미리 ‘박 시장에게 뭘 물어볼까요’ 했더니 모두들 ‘다음 대선에 출마할 건지 꼭 물어보라’고 하더라”며 “그래서 이 질문을 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박 시장은 웃으면서 “당신이 물어본 그 한국인들은 그 질문에 무슨 답을 내놓던가요”라고 받아쳤다. 이어 “지금 하고 있는 시장 업무만으로도 너무 바쁘다”는 말로 대답을 대신했다. 인터뷰는 전부 영어로 진행됐다. 서울시청 관계자들은 “시장이 한 시간 동안 통역 없이 영어권 매체 기자와 인터뷰를 하긴 처음”이라고 전했다.


글로벌 행보 부쩍 늘어 … 중도 이미지로 지지율 껑충

박원순 시장의 글로벌 행보가 주목받고 있다. 박 시장은 지난달 말과 이달 초 KAIST의 미국인 교수이자 영어 연설 전문가 3명을 두 차례 초빙해 각각 두 시간씩 영어 연설을 위한 교습·훈련을 했다. 박 시장은 이들과 함께 퀘스트와의 인터뷰 동영상을 관찰하면서 자연스러운 영어 표현과 대화 요령을 숙지했다. 훈련은 외국 방문 시 현지 기자나 관계자들과의 질의·응답·대화를 영어로 해내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박 시장의 영어를 들어본 미국인 교수들은 “수준급 영어를 구사한다. 자신감 있게 논리적으로 얘기를 풀어가는 능력이 뛰어나다”고 평했다. 교습 도중 박 시장은 자신이 구상 중인 서울시내 도로 차선 확장 방안을 ‘도로 살빼기(Road Diet)’로 표현하는 언어 감각을 보여주기도 했다. 박 시장은 올 상반기에 나올 미 스탠퍼드대의 교지에 기고문을 낼 예정인데, 최종 원고를 직접 영어로 다듬었다고 한다.



수지 여사 만나 영어로 시정 설명



박 시장은 지난해 7월 미 대선을 앞두고 민주·공화 양당의 전당대회에 나온 대선 주자들의 영어 연설도 벤치마킹한 것으로 전해졌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밋 롬니 공화당 후보의 연설은 물론 오바마의 부인 미셸과 빌 클린턴 전 대통령의 오바마 지지 연설, 롬니 부인인 앤과 할리우드 스타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롬니 지지 연설까지 전부 번역해 눈길을 끄는 표현과 가장 많이 등장한 단어 등을 분석했다. 책으로 내도 될 만큼 두툼한 분석보고서의 결론은 “민주당 인사들은 ‘의료보험(health care)’, 공화당 인사들은 ‘아버지(father)’란 단어를 가장 많이 사용했다”는 것이었다.



영어 공부와 함께 박 시장은 글로벌 행보를 늘려가고 있다. 지난달 29일엔 서울에 온 미얀마의 아웅산 수지 여사를 만났다.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당선인 면담 전이었다. 이 자리에서 박 시장은 서울 시정을 직접 영어로 설명했다. 이어 17∼21일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와 아부다비를 방문해 서울시 교통시스템 ‘홍보’에 나섰다. 박 시장은 교통카드시스템과 스크린도어 구축 기술 등 한국이 자랑하는 아이템을 두바이 측에 직접 영어로 설명했다. 이에 앞서 박 시장은 서울시 교통카드시스템을 보고타(콜롬비아)·방콕(태국)에 수출하는 성과를 올렸다.



박 시장은 4∼5월 중 중국을 방문할 계획이다. 베이징 칭화대에서 연설하고, 산둥성 등을 찾아 ‘서울 알리기’에 나설 작정이다. 더 많은 중국 관광객을 유치하기 위해서다. 박 시장은 나아가 ‘서울관광청’ 설립을 추진 중이다.



박 시장의 이런 행보는 합리와 중도를 표방해 온 삶과 무관하지 않다는 관측이 나온다. 박 시장은 두바이 방문 중이던 지난 19일 현지 특파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이중국적을 허용해야 한다”고 말했다. 김종훈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후보자의 이중국적이 한창 논란이 됐을 때였다. 그는 “구더기 무서워서 장을 못 담글 수는 없다”며 “나도 외국인을 서울시 국장으로 임명해 볼까 고민한 적이 있다. 김종훈씨뿐 아니라 외국에 훌륭한 인재가 있다면 한국에서 자유롭게 일하게 해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시장 재선 후 대선 출마 관측 무성



같은 날 서울에서는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가 ‘김 장관 후보자가 미 중앙정보국(CIA) 자문위원으로 일했다’는 사실을 부각하며 “국가관과 정체성이 의문스러운 인사에게 정부가 핵심 부처를 믿고 맡기긴 어렵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소속인 박 시장의 발언은 결국 당의 입장과 충돌한 셈이었다. 박 시장 주변에서 “외국에 나가 민감한 부분을 너무 세게 말한 것 아니냐”고 우려할 정도였다.



박 시장의 중도 이미지와 민생 행보 덕인지 그의 지지율은 눈에 띄게 약진하고 있다. 2011년 10월 보궐선거 전에 지지도 5% 미만이던 것과 비교하면 격세지감이다. 그는 민주통합당의 차기 대선주자감을 묻는 여론조사(지난 13일 모노리서치 실시)에서 21.2%로 1위에 올랐다. 손학규 전 대표(14%), 김두관 전 경남도지사(10.3%) 등을 크게 따돌린 수치다. 여론조사업체 리얼미터가 지난달 18일부터 사흘간 전국 2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16개 광역지자체장의 정책 만족도 조사에선 박 시장의 경우 69.9%가 “잘하고 있다”고 응답해 1위를 차지했다. 전국 평균 만족도(58%)보다 10%포인트 높았다. 이택수 리얼미터 대표는 “민주당의 대선 패배 이후 야권에 마땅한 리더가 없는 공백 상태에서 야당 지지자들이 박 시장을 ‘키워야 될 인물’로 여기고 있음을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서울시장을 거쳐 대통령이 된 이명박 대통령의 사례에서 보듯 서울시장 자리는 항상 잠재적인 대선 주자로 부각되는 경우가 많았다. 하지만 박 시장은 내년 6월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재도전하겠다고 선언해 놓고 있다. 재선에 성공한 이후 2017년 12월 대선에 도전할지가 세간의 화젯거리다. 그래서 박 시장의 중도 행보에다 부쩍 잦아진 언론 노출, 글로벌 행보 등을 사전정지작업으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일각에선 “서울시청과 산하기관에 박 시장 인맥으로 분류될 수 있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며 이런 관측에 힘을 싣는다. 하지만 박 시장은 시장 재도전 의사만 재확인할 뿐 입을 굳게 다물고 있다.



박 시장이 시장에 재선되기 위해선 넘어야 할 벽도 있다. 시장 취임 1년4개월 동안 서울시립대 반값등록금 실현, 서울시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성과를 냈지만 ‘박원순 브랜드’라고 연상될 만한 업적이 없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강 르네상스 사업 등 오세훈 전 시장이 추진한 프로젝트는 무조건 뒤집는다”는 비판도 있다. 서울시 부채 감축도 지지부진하다.



이택수 대표는 “내년 지방선거가 가까워질수록 새누리당과 보수세력이 박 시장을 맹공해 지지율이 흔들릴 수 있다”며 “박 시장은 전임 시장의 정책·인사에서 필요한 건 수용하고, 민생 못지않게 도시개발과 경기부양도 중시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익명을 요구한 여권의 한 인사는 “박정희 정권 시절 ‘피스톨 박’으로 불렸던 박종규 당시 청와대 경호실장은 영어를 엄청나게 공부했다. 하사관 출신이라는 콤플렉스도 있었을 것이다. 누군가 그 이유를 묻자 박 실장은 ‘언젠가 국제무대에서 영어로 연설하고 싶다’고 답했다고 한다. 나중에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위원이 된 것과 무관치 않다”고 회고했다. 그래서 “박 시장의 영어 공부와 중도 행보는 그동안 야권 주자들이 갖지 못했던 글로벌 이미지와 정책 능력을 축적하기 위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강찬호 기자 stoncold@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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