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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미술 보물창고 동묘에 방치된 유물들

중앙일보 2013.02.21 01:13 종합 2면 지면보기
서울 종로구 숭인동 동관왕묘(동묘) 정전에 있는 장비, 유비, 관우상(왼쪽부터). 높이 69~80㎝ 목조상으로 의복의 주름, 세부 무늬까지 정교하게 묘사된 수준 높은 작품이다. 고종이 서대문구에 지은 서관왕묘(西關王廟)에 보관되어 있다가 1909년 동관왕묘로 옮겨왔다. [안성식 기자]


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동관왕묘(東關王廟)는 17세기 조선 중기 미술사의 보고(寶庫)다.”



 2011년 말부터 지난해 3월까지 서울 종로구 숭인동의 동관왕묘(동묘) 소장 유물을 조사한 문화재 전문가들은 이렇게 입을 모은다. 동관왕묘는 임진왜란의 혼란이 채 가시기 전인 1602년(선조 35년), 조선과 명나라 합동군의 승리를 축하하기 위해 명나라 황제 신종(神宗)이 직접 금 4000냥을 내려 지은 중국 장수 관우(關羽)의 사당이다. 중국 황실과 조선 왕실의 힘을 모아 지은 곳인 만큼 소장된 유물들의 수준이 높은 것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번 학술조사에서 처음 발견된 관우상 뒤편 벽의 ‘운룡도’(雲龍圖)’는 그 규모와 솜씨에서 ‘국보급’이라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중앙일보 2월 20일자 1, 2면>



 그뿐만이 아니다. 동관왕묘에는 높이 2m51㎝의 금동 관우상을 비롯해 유비상·장비상 등 조각품 16점, 영조가 이곳을 방문하고 남긴 어필(御筆)과 고종이 직접 쓴 현판(懸板) 등 49점의 서예작품이 보관돼 있다. 1909~1910년 서울 곳곳에 산재해 있던 관왕묘들이 동관왕묘에 합사되면서 북관왕묘, 서관왕묘 등에서 옮겨 온 유물들도 있다.



하지만 현재 이 유물들은 가치를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채, 동관왕묘의 정전(正殿) 내 빈 공간에 복잡하게 방치돼 있다. 방문객들에게 나눠주는 팸플릿에 적힌 유물 설명에는 관우·유비·장비 조각상의 이름이 뒤바뀌어 있기도 하다. 유물 하나하나에 대한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것이다.



 한서대 장경희(문화재보존학) 교수는 지난해 5월 종로구청의 의뢰를 받아 작성한 ‘동관왕묘 기초학술 조사보고서’에서 “높은 가치를 갖고 있는 유물들인 만큼 훼손을 막기 위해 문화재 지정과 원형 복원, 박물관 이관 등의 조치를 취해야 한다”고 제안한 바 있다. 그러나 담당기관인 서울 종로구청은 보고서 발간 후 8개월이 지난 현재까지 문화재 지정 신청 등 후속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문화재청 역시 보고서를 확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았다. 문화재청 관계자는 “국가 문화재 지정은 보통 지방자치단체의 신청을 받은 후 문화재청의 조사 절차를 거치는데, 종로구청으로부터 어떤 신청도 없었다”고 말했다.



 담당 관청들의 무관심 속에 조선 중기 미술을 대표하는 동관왕묘의 유물들은 조금씩 먼지가 쌓이고, 녹이 슬고, 부서져 가고 있다. 유물에 대한 정밀 조사와 문화재 지정이 시급한 이유다.



글=이영희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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