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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같은 사고인데 벤츠·K9 수리비 차이가…

중앙일보 2013.02.21 00:09 경제 4면 지면보기


“수입차 업체는 고객 만족을 논할 자격이 없다.”

[J Report] 정지! 수입차 ‘갑의 횡포’
공정위 현장조사 … 수입차 업계 판매실태 어떻길래
똑같은 사고로 수리비 따지니 벤츠, 차값의 36% … K9은 7%
“딜러가 부품 싸게 수입해오면 수입사는 딜러 자격 박탈시켜”



 지난달 29일 서울 삼성동에서 열린 시트로앵 DS5 출시 행사장. 이 차를 수입하는 한불모터스의 송승철 대표는 수입차 업계에 ‘돌직구’를 날렸다. 그는 “어느 브랜드가 몇만 대 팔았다고 하면 겉으로는 대단해 보이지만, 물량 밀어내기에 급급해 서로 헐뜯고 싸우는 과정에서 고객만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판매 대수만 많으면 뭐하나. 그래 놓고 무슨 고객 서비스를 논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수입차 업체의 과속 주행이 곳곳에 스키드 마크(급정지 자국)를 남기고 있다. 수입차를 들여와 파는 업체의 대표마저 쓴소리를 할 정도까지 갔다. 결국 공정거래위원회가 19일 국내 수입차 ‘빅4’에 대한 전격 조사에 나섰다. 성장세에 걸맞은 ‘수입차 2.0 시대’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 가격·수리비 과속=지난해 9월 기획재정부는 자동차에 붙는 개별소비세를 한시적으로 1.5%포인트 인하했다. 당시 현대 에쿠스(6741만원)는 가격을 119만원 낮췄다. 그러나 비슷한 가격대인 BMW 528i(6680만원)의 인하 폭은 70만원에 그쳤다. “운송료나 딜러 마진 등 수입차의 특성 때문에 국산차와 단순비교 하는 것은 무리”라며 수입차 업계는 항변했다.



 그러나 소비자의 눈총은 따갑기만 하다. 이런 불만 뒤에는 더 싸게 팔 수 있는 길을 막아 놓은 수입차의 판매 구조가 있다. 대부분 수입차는 해외 본사가 한국에 설립한 지사(수입사)가 경영을 총괄한다. 전시장을 운영하며 소비자에게 차량을 파는 역할은 ‘딜러사’가 한다. 중견 딜러업체 대표는 “미국과 부품 가격만 비교해봐도 우리가 직접 수입하면 지금보다 싸게 들여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그럴 경우 수입사가 딜러 자격을 박탈해버릴 수 있기 때문에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일부 수입사는 딜러사에 한 해 판매 목표를 설정해 달성하지 못하면 딜러사에 돌아가는 마진을 낮추는 등의 압력을 행사하기도 한다. 지난달 29일 송승철 한불모터스 대표의 쓴소리도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차가 팔리지 않으면 가까운 곳에 딜러점을 또 낸다. 편의점과 다를 게 없다”며 “딜러가 죽든 말든, 고객이 불만을 가지든 말든 그 회사들은 관심이 없다”고 말했다.



 수입차의 비싼 수리 비용은 국내 소비자의 가장 큰 불만이다. 지난달 보험개발원 산하 자동차기술연구소는 국산차 4개, 수입차 3개 모델을 대상으로 전·후면 저속충돌시험을 한 후 수리비를 분석했다. 그 결과 벤츠 C200의 수리비는 1677만원으로 집계됐다. 새 차 가격의 36%에 해당하는 금액이다. 혼다 어코드 3.5의 수리비는 1394만원(새 차 대비 33.8%), 폴크스바겐 골프 2.0 TDI는 826만원(25%)으로 조사됐다.



반면 비슷한 배기량의 국산차를 대상으로 한 실험에선 가격 대비 수리비 비중이 10% 미만이다. 배기량이 3342cc인 기아 K9의 수리비는 386만원으로 배기량이 1796cc인 벤츠C200의 4분의 1에 불과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차량 판매에서 수익이 줄어든 수입차 업체가 부품값 등 수리비에서 이를 만회하려고 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며 “수입차 업계는 부품 품질이 우수해 가격이 비쌀 수밖에 없다고 항변하지만 품질 차이가 가격 차이만큼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보험개발원의 2011년 조사에 따르면 수입차 수리비 항목을 국산차와 비교했을 때 수입차가 부품값은 6.3배, 공임은 5.3배, 도장료는 3.4배 비쌌다.





 공정위는 이런 높은 가격이 수입차 업계 내 쏠림 현상과 무관하지 않다고 보고 있다.



공정위가 19일 현장 조사를 한 BMW그룹코리아·메르세데스벤츠코리아·아우디폭스바겐코리아·한국도요타자동차의 지난해 기준 국내 수입차 시장 점유율은 79%를 넘는다. 특히 ‘빅4’ 중 세 곳은 독일차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서 차량가격 결정, 부품 판매 가격, 수입사 계열금융사에 대한 특혜 여부, 수입사와 딜러 간 유통구조 등을 집중적으로 챙기고 있다. 공정위는 이번 조사에 앞서 지난해 2월에도 4개 수입차 업체에서 판매 관련 현황 등에 대한 보고서를 받아 서면 조사를 했다. 한·유럽연합(EU) 자유무역협정(FTA)이 2011년 7월 발효됐지만, 유럽산 차량과 부품 가격은 내리지 않은 데 따른 것이었다.



 ◆수입차 2.0 시대=수입차 업계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은 업계도 인식하고 있다. BMW그룹코리아 김효준 대표는 지난 7일 “고객 취향과 트렌드(경향)가 변하고 있다”며 “고객이 이제는 브랜드·디자인·성능을 이야기하고 서비스의 구체적 실천 여부를 꼼꼼하게 따지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변화의 필요성은 수입차의 성장과 함께 왔다. 한국수입자동차협회에 따르면 2009년 국내에 판매된 수입차는 전체 신차 판매의 4.94%(6만993대)에 불과했다. 이후 꾸준히 판매 대수가 늘어 지난해에는 13만여 대가 판매됐다. 점유율은 10%를 돌파했다. 지난해 판매된 차량 10대 중 1대가 수입차였던 것이다.



상대적으로 싼 수입차도 많이 들어왔다. 닛산 큐브, 도요타 코롤라, 푸조 208 등은 모두 2000만원대다. 수입차를 ‘부자만 타는 차’에서 ‘국산차 살 돈에 조금만 보태면 살 수 있는 차’로 인식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용자 수가 늘면서 눈 밝은 소비자도 늘었고, 전반적인 소비자의 안목도 함께 높아졌다. 복득규 삼성경제연구소 연구전문위원은 “이번 공정위 조사를 계기로 수입차 업계가 품질과 가격이라는 본원적인 경쟁으로 다시 초점을 잡아야 한다”며 “이렇게 되면 잠재적 경쟁자인 국내 완성차 업계의 경쟁력도 올라가는 선순환이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김필수 교수는 “단기적으로 수입차 업체들에 악재라고 여겨질 수도 있지만 이번 조사를 계기로 수입차 업계의 암묵적인 폐해들이 개선된다면 장기적으로 도움이 될 것”이라며 “점유율 두 자릿수 시대인 만큼 수입차 업계들도 수입차 2.0시대를 만들어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가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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