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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미래 고객은 자기 표현에 겁없는 여자들”

중앙선데이 2013.02.15 22:42 310호 12면 지면보기
스톡홀름 패션위크는 신진 디자이너들을 키우는 인큐베이터이기도 하다. 매년 12명의 신진 컬렉션 중 ‘올해의 루키(Rookie)’를 선정해 브랜드를 설립하고 알리는 데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지난해부터는 더 큰 지원행사가 마련됐다. 바로 ‘H&M 디자인어워드’다. 이 상은 유럽 8개국 19개 패션스쿨 졸업생들의 작품을 심사해 이 중 한 명에게 각종 특전을 준다. 5만 유로(약 7500만원)의 상금은 물론 스톡홀름 패션위크에 단독 쇼를 지원하고, 향후 전 세계 주요 매장에 우승작 일부를 판매한다.

‘H&M 디자인어워드 2013’ 우승한 김민주씨

올해도 런던 세인트마틴스쿨, 이탈리아 마랑고니 등에서 수학한 내로라하는 유망주들이 지원했고, 지역 예선을 거쳐 8명이 최종 심사에 올랐다.

영예의 우승자는 한국인 김민주(26)씨였다. 국내 SADI(삼성디자인스쿨)를 나와 앤트워프 왕립 예술학교 석사 과정에 재학 중인 김씨는 학부 졸업 컬렉션에서 선보인 옷들로 최후 승자가 됐다. ‘친구에게(Dear My Friend)’라는 이름의 컬렉션은 일본 만화가 이토 준지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작품들. 심사위원이었던 런던의 유명 디자이너 조너선 선더스는 “보는 이를 행복하게 만드는 창의력에 완성도 있는 마무리가 인상적이었다”고 평했다. 지난달 29일 스톡홀름 패션위크 백스테이지에서 김씨를 만났다.

-영감이 된 이토 준지 만화는 공포스럽고 기괴한데, 옷은 펀(fun)하다는 평을 들었다.
“만화의 그림 스타일이 아니라 작가가 사람들의 성격이나 캐릭터를 바라보는 시각에 중점을 뒀다. 작가처럼 저랑 관계 있는 사람들을 관찰하고 스토리를 만들어나가면서 제 스타일로 직접 드로잉을 했고, 그것을 그대로 패션에 옮기려고 했다. 그래서 컬렉션 제목이 ‘친구에게’다.”

-아름다움을 추구하기보다 센세이셔널한 데서 영감을 얻나.
“미추를 떠나 늘 하고 싶은 걸 하자는 주의다. 컨셉트가 뭐든 아름답게 풀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이토 준지의 만화도 방학 때 한국에 있으면서 우연히 알게 됐는데 너무 재미있었다. 그래서 겁은 났지만 한번 해봐야겠다 싶더라. 흑백 만화를 컬러풀하게 푸는 상상이 재미있었다.”

-학생작품 같지 않게 완성도가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았다.
“SADI에서 이미 기술이나 패턴을 배워왔기 때문에 다른 학생들보다 형태를 만드는 거나 아이디어를 패턴화하는 작업이 더 유리했을 거다. 옷을 몸으로 이어서 볼 줄 안다는 게 큰 도움이 됐다.”

-이후 다시 유학을 간 이유는.
“원래 꿈은 만화가나 미술선생님이었다. 그래서 뉴질랜드로 갔는데 부모님이 얼마 안 있다가 귀국을 종용하셨다. SADI에 가라고 해서 갔는데 막상 2, 3학년 내내 내가 진짜 뭘 좋아하는지 고민했다. 그래서 확실히 알고 싶어 유학을 결심했다. 뉴욕 파슨스, 런던 센트럴세인트마틴도 붙었다. 앤트워프를 간 것은 자유스럽고 통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이번 수상으로 얻은 것이 많겠다.
“내 스타일을 더 믿고 계속 그걸 밀어붙이면 그게 성공으로 이끌어줄 거라는 확신을 얻었다. 항상 귀엽고 밝은 걸 하다 보니 스스로 의심이 많았다. 밝은 건 좋긴 하지만 어쩌면 귀엽고 예쁘기만 하다고 생각할 수도 있으니까. 그런데 이번 대회에서 팀 블랭크, 조너선 샌더스 등 정말로 유명한 분들이 나를 인정해 줬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이 좋아할 수도 있구나 싶어 기뻤다. 가장 중요한 건 자기 스타일을 끝까지 고집하는 것인 것 같다.”

-앞으로의 계획은.
“석사 마지막 학기라 마스터 컬렉션을 준비해야 한다. 상금이 있으니 자유롭게 할 수 있을 것 같다(웃음). 일단 졸업 후 미우미우·카르벤·겐조 등 소녀 감성에 즐거운 이미지의 브랜드에서 인턴십을 해보고 싶다. 10년쯤 많이 부딪치고 더 단단해져야 하지 않을까. 그러고 나면 무조건 한국에 가고 싶다. 뉴질랜드에 있다 한국에 갔을 때 그런 생각을 많이 했다. 좀 더 신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즐거워질 필요가 있지 않을까라고. 내가 이상적으로 꿈꾸고, 내 옷을 살 수 있는 친구들은 용감하고 자기 스타일을 보여주는 것에서 겁 없는 여자들이다. 난 그런 여자들이 늘어날 거라고 생각한다. 한국에도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패션하우스가 있다면 정말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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