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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방 같고, 다락방 같고 … 멍 때리며 사색할 수 있는 곳

중앙선데이 2013.02.15 22:52 310호 14면 지면보기
"생각 좀 하고 살자." 어디서 흔히 듣던 말, 아니 혼자 되뇌던 말 아닌가. 그런데 말처럼 쉽지 않다. 어디서, 어떻게, 무엇을이란 물음표가 뒤따른다. 그런데 여기라면 좀 수월할 것도 같다. 서울 가회동 129-1번지에 12일 문을 연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다. 카드 회사가 도서관을, 그것도 이 고풍스러운 마을에 개관한 이유가 뭘까. “디지털과 속도로 지배되는 세상에서 생각할 여유를 찾을 공간으로 도서관을 생각했고, 그런 의미에서 가회동은 최적의 장소였다.” 현대카드 김진태 브랜드 본부장의 설명이다.

서울 가회동 ‘현대카드 디자인 라이브러리’

1 2층 ‘사랑채’ 중앙에 놓인 철판 테이블. 보통 책보다 큰 디자인 책들을 한 번에 펼쳐보기 좋다. 2 내벽을 통유리로 만든 도서관 전경. 3 2층 ‘안채’에는 다락방처럼 아늑한 ‘집 속의 집’이 있다. 4 2층에 마련된 세미나실. 5 기존 도서분류 방식과 다른 카테고리로 비치된 책들.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 현대카드]
5일 미리 둘러본 도서관은 우선 찾기가 쉽지 않았다. 간판도 없고 큰 길에서 들어가야 입구가 보였다. 연면적 495㎡(150평)의 지상 3층 건물은 조금 큰 카페나 갤러리쯤으로 보이는 현대식 한옥. 들어가 보니 아늑했다. 중정을 두고 ㅁ자 형태로 둘러진 건물은 내벽을 통유리 창으로 만들어 하늘로 뻥 뚫린 사각기둥 속에 들어와 있는 듯했다.

안으로 들어가 서가가 있는 2층으로 올라갔다. 책 구경을 하려는데 눈길은 딴 데로 자꾸 갔다. 독특하게 꾸민 공간, 공들여 꾸민 작은 인테리어 때문이다. 순서를 바꾼다. 일단 ‘하드웨어’부터 살펴보기로.

ㅁ자 형태 가운데를 기준으로 공간이 나뉜다. 건물을 리노베이션한 건축가 최욱씨는 “한쪽은 안채, 다른 한쪽은 사랑채 같은 분위기”라고 설명했다. ‘사랑채’에 들어서자 먼저 눈에 띄는 건 탁구대보다 크면서 이음매 하나 없는 철판 테이블. 일반 책보다 보통 서너 배쯤 큰 디자인 서적들을 여러 권 펼쳐놓고 ‘이미지 검색’ 하기 편하라고 특수 제작했단다. 테이블 주변으로 책들이 빼곡히 들어차 있는데, 중간에 설치된 아이패드가 검색 단말기를 대신한다.

건너편 ‘안채’는 분위기가 다르다. 우선 ‘이게 뭐지’ 싶은 오각형 공간이 있다. ‘집 속의 집’이다. 최씨는 “어린 시절 누구에게도 방해받지 않고 다락방 속에서 상상의 나래를 펴던 추억을 떠올려 봤다”고 했다.

은밀한 공간은 이뿐만이 아니다. 3층 옥상으로 가는 통로에도 작은 방이 있다. 2명이 겨우 들어가는 자투리 공간이다. 그곳에서 책을 보다 고개를 들면 작은 유리창을 통해 한옥 지붕과 멀리 남산타워까지 보인다. ‘멀리 보고 깊게 생각하라’는 창덕궁의 기호헌(奇傲軒·왕세자의 독서실)에서 아이디어를 빌렸다. 최씨는 “도서관은 ‘멍 때리며 사색할 수 있는 곳’이어야 하고, ‘책 읽고 생각하는 것 외에 불필요한 방해 요소가 없는 곳’이기를 바랐다”고 했다. 그래서 1층 카페에서조차 통유리 창 앞에 소파를 놓고 잡지를 뒤적이는 여유가 가능하다.

사색과 창의력을 발현시킬 ‘소프트웨어’ 수준도 만만치 않다. 비치된 책은 1만1500여 권에 이른다. 독일 ‘바우하우스’ 이후 디자인을 조망하는 국내외 유명 디자인 서적들이다. 이를 위해 국내외 도서 전문가들을 북 큐레이터로 초빙했다. 건축과 산업 디자인, 비주얼 디자인 서적은 물론 브랜드 디자인, 디자인 비평 등 관련 서적도 비중 있게 갖췄다. 현대카드 백수정 이사는 “70% 이상은 국내에 처음 선보이는 책이고, 또 이 중 약 3000권은 절판본이거나 희귀본”이라고 밝혔다. 포토저널리즘의 정수로 평가되는 ‘라이프’ 매거진의 전 컬렉션, 1928년 이탈리아에서 창간된 세계적 권위의 디자인·건축 잡지 ‘도무스’ 등 희귀본들이 눈길을 확 붙든다. 세계적인 아트북 출판사인 파이돈·타센의 한정판 화집도 있다. 단, 이들을 볼 땐 흰 장갑을 끼어야 하는 수고로움은 필수다.

현대카드가 특별히 디자인 서적에 집중한 데는 이유가 있다. “디자인이란 단순히 예쁜 물건이 아니라 스티브 잡스가 만든 아이폰처럼 새로운 삶의 양식과 의미를 만들어내는 것이기 때문”(김진태 본부장)이라는 것이다. 그동안 해온 스포츠·문화 마케팅처럼 이번엔 도서관을 새로운 라이프스타일로 제안하겠다는 의지다.

국내외 유명 디자인 서적 1만1500권
이곳의 도서 분류 방식은 낯설다. 라벨 표기, 청구기호 등 기존 도서관과 다른 고유 방식을 택했다.
“희귀한 서적, 꼭 봐야 할 서적, 정기 간행물 등 14개의 카테고리로 나눠 디자인의 과거·현재·미래를 한눈에 알 수 있게 했다”(백수정 이사)는 설명이다.

브랜드 공간이니만큼 카드 회원에게만 개방(월 8회 무료)된다. 비회원도 현대카드 회원과 함께 방문할 경우 무료(동반 1인)로 출입이 가능하다. 한도를 넘은 유료 입장은 현대카드로만 결제(1인당 5000원)된다. ‘쉼’을 표방하는 공간 특성상 50명까지만 수용하는 것도 특징. 운영시간은 화~토요일 오후 1~10시, 일요일은 오전 11시~오후 6시(월요일은 휴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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