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세월의 향기와 흔적을 담다

중앙선데이 2013.02.15 23:20 310호 23면 지면보기
반항기 가득한 젊은이, 중후한 멋을 지닌 중년, 그리고 해탈의 경지에 이른 노인. 디테일하게 표현된 사진 속 얼굴들은 와인 레이블을 대신하고 있다. 와이너리 오너는 왜 이렇게 서로 다른 세대의 얼굴을 레이블로 사용한 것일까. 또 이 모델(?)들은 와인과 무슨 관계가 있는 것일까.

김혁의 레이블로 마시는 와인 <9> 빈테 마츠(Vintae Matsu)

이 레이블은 빈태(Vintae)라는 거대 와인 그룹의 계열 회사인 마츠(Matsu) 와이너리가 스페인 토로(Toro) 지역에서 만드는 최고급 유기농 와인에 부착된 것들이다. 마츠란 일본어로 ‘기다린다’는 뜻. 오너는 와인의 철학을 표현하는 데 이만큼 좋은 단어는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최고 품질의 와인을 만들기 위해서는 인간의 간섭을 최소화하며 포도가 가장 적당하게 익기를 기다려야 한다. 이렇게 만들어진 와인은 최상의 맛을 갖기 위해 또 다른 기다림을 가져야 한다. 완벽한 가치의 구현을 위해 조용히 ‘때’를 기다리는 철학을 오너는 가슴 깊이 새기고 있는 듯하다.

이 같은 철학을 담아 마츠에서 만드는 와인으로 엘 피가로, 엘 레치오, 엘 비에호가 있다. 오너는 스페인의 유명 사진작가 벨라 아들레와 살바도 프레네다(Bela Adler and Salvador Fresneda)에게 레이블용 작품을 의뢰했다. 이들은 바르셀로나와 뉴욕을 오가며 버버리, 리바이스 등 유명 패션 브랜드 사진을 찍어 엘르, 보그 등에 게재하고 있고 디자인에도 남다른 재능이 있는 재주꾼들이다. 오너의 근본적인 생각을 형상화하기 위해 작가는 이 와이너리에서 일하는 농부들을 모델로 삼기로 했다.

우선 가장 거친 와인 엘 피가로의 모델로 가장 젊은 농부가 선정됐다. 약간 반항적이지만 많은 가능성을 내포하고 있는, 그래서 나이가 들면서 어떻게 변화될지 많은 궁금증을 불러일으킨다. 수령이 60~100년 된 것에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엘 레치오는 향이 짙고 맛이 깊어 중후하다. 그래서 선택된 모델이 중년의 농부. 세월의 향기를 자연스럽게 얼굴에 담은 이 모델에서는 편안함과 안정된 이미지를 얻을 수 있다. 이 때문인지 이름의 뜻이 ‘근육’인데 이 모든 것을 더욱 명확하게 해주는 느낌이다. 마지막으로 노인의 뜻을 갖고 있는 엘 비에호는 백 년이 넘은 포도나무에서 한정적으로 생산된 포도로 만든 와인이다. 과일 향이 일품이며 프렌치 오크를 사용해 토스트 향이 은은하게 배어 있다. 모델이 된 나이 든 농부의 모습도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는 세월의 흔적을 얼굴에 담고 있다.

오너의 의도를 살려낸 작가 덕분에 레이블만 봐도 병 속 와인의 맛과 성격을 유추할 수 있다. 물론 각 와인이 만들어진 포도나무의 수령도 있겠지만 근본적으로 와인과 사람의 관계 그리고 인생과 기다림의 관계를 와인에서 터득하지 못했다면 작가는 이러한 시도를 할 수 없었으리라.

우리는 와이너리 오너의 와인 한 잔에서 만드는 사람의 성품과 철학을 모두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주저 없이 이야기한다. 와인은 인간의 모습을 닮았다고….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