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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쟁] 지하경제 양성화,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2013.02.16 00:35 종합 28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이제 곧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가 복지 재원 확보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를 추진하고 있다. 국세청은 양성화 방안을 총괄할 ‘공정과세기획’을 신설했다. 이를 두고 “조세 정의와 공평 과세 차원에서 반드시 필요하다”는 주장과“성급하게 추진할 경우 자칫 부작용만 낳을 수 있다”는 우려가 엇갈리고 있다. 두 갈래의 목소리를 들어봤다.

탈세자의 무임승차 계속 방치할 수는 없다

최승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
금융실명제 이후 지금처럼 지하경제에 대해 관심이 뜨거웠던 적은 없다. 깊은 관심만큼 논란도 치열하다. 헌법은 주권자인 국민의 정치적 결단이다. 그리고 그 결단은 제38조에 “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는 문구로 명시돼 있다. 우리는 이 같은 헌법 조항이 구체화된 조세정의와 공평과세의 의미에 대체로 동의한다. 그러나 개별적인 이해관계를 따질 경우엔 다양한 반론이 제기된다.

 국가는 조세수입을 가지고 경찰·복지 등 다양한 공공서비스를 제공한다. 그 서비스는 관련 법령에서 정한 일정한 기준을 충족할 경우 차별 없이 제공된다. 결국 정당하게 세금을 납부하지 않은 사람들은 타인의 땀과 노력에 무임승차하게 되는 데 반해, 성실한 납세자는 낸 만큼의 서비스를 받지 못하는 불합리한 결과에 직면하게 된다. 이러한 상황이 결코 공평하거나 정의롭지 않음은 모두가 인정할 것이다.

 지하경제 양성화에 대한 반론 중 하나는 지하경제를 양성화하더라도 그 금액이 미미해 당선인의 공약 이행에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그러나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 주장의 타당성 여부를 떠나 조세정의와 공평과세의 차원에서 지하경제 양성화는 그 자체로 큰 의미를 지닌다. 양극화·저출산·고령화·위기대응 등 오늘날 국가의 역할은 더욱 확대되고 있고, 그만큼 재원 확보는 중요하다. 그러나 증세는 매우 어려운 문제다. 더욱이 노출된 세원에 집중되는 증세는 성실한 납세자에게 더욱 불이익을 주는 행위다. 나아가 성실납세자들을 탈세의 유혹에 빠지게 할 수 있다. 따라서 새로운 세원 발굴을 통해 나머지 부분을 채우겠다는 시도는 바람직하다.

 물론 고려해야 할 사항들이 있다. 새로운 제도의 부작용으로 인해 어려움에 처할 수 있는 영세한 자영업자와 상공인, 저소득 근로자 등에 대한 배려다. 아울러 더욱 지하화할 수 있는 영역에 대해서는 인센티브 제공과 유예기간을 둬 지상으로 끌어올리는 방법도 고려해 볼 필요가 있다. 금융정보분석원과 국세청의 정보 공유로 발생할 수 있는 개인정보 침해와 권한 남용에 대한 통제도 필요하다. 공유 수준 및 한계에 대한 기준 설정, 외부 감시기구의 설치, 위반 시 제재 등의 통제장치를 설정해야 한다.

 한편으론 지하경제 양성화의 대상인 각종 탈세 행위가 이미 규제되고 있어 실효성이 없다는 견해도 있다. 그러나 현재 시행되고 있는 제도가 과연 잘 작동하고 있는지, 보완할 곳은 없는지를 살펴 세원 투명성을 제고할 수 있는 새로운 틀을 제시하는 것도 양성화 노력의 일부분이라고 할 수 있다.

 201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의 국내총생산(GDP) 대비 지하경제 규모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5위에 속한다고 한다. 우리는 국가가 주는 혜택에 대해 이야기할 때 미국 또는 유럽 등 선진국의 예를 많이 든다. 그러나 이들 국가에서 조세 납부의무가 얼마나 중요한지, 위반 시 제재가 얼마나 엄격한지에 대해서는 침묵한다.

 모든 국민이 낸 만큼 누리고, 누린 만큼 내는 사회를 위해 지하경제 양성화는 반드시 필요하다. 다만 시장이 적응할 수 있도록 단계적으로 세심히 추진돼야 하며, 단번에 모든 것을 완벽하게 마무리하려는 욕심은 버려야 한다. 공평과세와 조세정의는 한순간의 정책적 선택이 아닌 지속적으로 추진돼야 할 기본적 가치이기 때문이다.

최 승 필 한국외국어대 로스쿨 교수

섣부른 양성화는 서민경제 위축시킬 수 있다

홍기용
인천대
경영대학 교수
박근혜 정부가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해 여러 가지 정책수단을 강구하고 있다. 일단 세율 인상과 같은 외형적 증세보다는 지하경제 양성화, 비과세·면세 축소 등을 통해 ‘새는 세금’을 막겠다는 것이다. 매우 높은 수준인 우리나라의 소득탈루율은 지하경제 양성화의 당위성을 뒷받침하고 있다. 그러나 지하경제 양성화가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가에 대한 심도 있는 분석은 부족한 것 같다.

 우선 지하경제 양성화로 세원 투명성이 증가할 경우 가장 크게 영향을 받는 계층은 중소규모 법인과 자영업자들일 것으로 보인다. 자영업자의 경우 소득탈루율이 29~57%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이들의 조세 부담이 크게 증가한다면 조세 저항을 부를 수 있고 결과적으로 가뜩이나 어려운 서민경제의 주름을 깊게 할 수도 있다. 즉 소상공인 육성 및 저소득층 복지 확대라는 국가적 과제에 오히려 역작용을 일으키고, 정치적 부담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이에 대한 심층적이고 철저한 분석을 거친 후 구체적이고 면밀하게 지하경제 양성화의 정책수단들을 추진해야 할 것이다.

 최근 지하경제 양성화의 일환으로 금융정보분석원(FIU)이 가지고 있는 금융거래 정보를 국세청 등이 직접 접근해 활용하는 방안이 거론되고 있다. 그러나 FIU는 탈세 혐의가 있는 고액 금융거래를 이미 국세청 등에 보고해오고 있다. 또한 국세청 직원 7명 등 각 기관에서 32명이 파견근무하면서 탈세정보 등을 매일같이 수집하고 있다. 이러한 현행 제도에도 불구하고 국세청의 모든 직원들이 직접 금융거래정보를 들여다본다고 해서 금방 지하경제가 양성화될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과도한 면이 있다.

 지하경제 양성화를 해야 한다는 대전제에는 동의한다. 하지만 중소규모 법인이나 자영업자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서는 먼저 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법인의 세원 투명성을 높인 후 이들과 거래하는 자영업자와 개인의 소득 탈루를 점차 막도록 하는 순차적 대응 방안이 필요하다. 이에 대해 제안할 수 있는 구체적 정책수단은 법인에 대한 회계감사 등 간접 세무조사를 확대해 세원 투명성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자진해서 회계감사를 받는 법인에게 세무조사, 세금, 금융거래 등에 인센티브를 부여하게 되면 국세청의 직접적 세무조사 확대로 인한 납세자 저항을 피하면서도 세원 투명성을 높일 수 있을 것이다. 회계감사 등으로 법인의 투명성이 확인되면 이들과 거래하는 자영업자도 영향을 받아 금융거래도 건전화될 수 있다. 궁극적으로 모든 사업자의 세원 투명성을 높이는 길이다.

 이와 함께 현금 소지가 많은 청소년 및 대학생의 소비지출 업종에 대한 소득 탈루를 막기 위한 현금영수증 확대, 휴대전화 결제 등의 제도적 밑받침이 필요하다. 또 영유아 대상 학원비를 소득공제해줌으로써 사교육의 세원 투명성을 높였던 경험을 살려 성형·치과·변호·세무 분야 등에도 소득공제 제도를 적극 도입할 필요가 있다. 아울러 탈세 제보에 대한 포상금을 대폭 상향 조정하는 방안도 검토해야 한다. 2011년 9206건의 탈세 제보에 따라 4812억원을 추징했지만 포상금은 겨우 150건에 27억원을 지급하는 데 그쳤다.

 지하경제 양성화는 하루아침에 이뤄지기 어렵다. 가능한 곳부터 차근차근 햇볕 아래 드러나게 해야 실효를 거둘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될 것이다.

홍 기 용 인천대 경영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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