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밖은 하얀 눈나라, 안은 초록 꽃나라

중앙일보 2013.02.15 04:00 Week& 2면 지면보기
꽃밭에서 바다를 만날 줄이야. 허브아일랜드에 활짝 핀 꽃 ‘푸른바다’.
꽃피는 봄이 오면’. 고된 겨울을 버티기 힘들 때, 주문처럼 외는 말이다. 올해는 봄이 유난히 늦다. 원래 이맘때면 남도의 꽃소식이 들리곤 했지만 여태 소식이 없다. 이대로라면 3월이 훌쩍 지나서야 꽃향기를 맡을 수 있을 것 같다. 이번 주 week&이 봄을 찾아 나선 까닭이다. 경기도 포천에서 세종시까지, 서울 근교를 샅샅이 뒤져 꽃향기 그윽한 온실 네 곳을 찾았다.


봄 향기 진한 실내 식물원 4곳

글=이석희·나원정 기자 사진=신동연 선임기자



1 베어트리파크에서 만난 아나나스. 일생 단 한 번만 꽃을 피운다고 한다. 2 백막룡과 철화를 접붙여 만든 베어트리파크의 일명 ‘밍크 선인장’. 이곳에서만 볼 수 있다. 3 허브아일랜드에서 만난 로즈마리.
조각공원 같은 식물원 베어트리파크



세종시의 베어트리파크(http://beartreepark.com)는 설립자 이재연(82) 회장의 50년 정성이 오롯이 담긴 식물원이다. 돌멩이 하나, 풀 한 포기, 나무 한 그루라도 노회장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이 없어 허투루 지나칠 수 없다.



  베어트리파크에서 가장 유명한 온실은 ‘만경비원’이다. 만(萬)가지 경(景)치가 숨어 있는 비(秘)밀스러운 정원(園)이라는 뜻에서 알 수 있듯이 1500㎡나 되는 온실 곳곳에 비경이 숨어 있다.



  문을 열고 왼쪽으로 들어서면 신비한 정원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데 예사 온실과 다르다. 차이점을 단박에 알 수 있다. 하얀 꽃을 피운 에리카, 작은 붉은 열매를 품고 있는 피라칸서스, 노란색의 폰데로사 레몬, 일생 한 번만 꽃을 피운다는 아나나스 등 300여 종의 열대식물이 자태를 뽐내고 있다.



4 세계꽃식물원에는 붙임성 좋은 사랑앵무가 200여 마리나 있다.
  그 한쪽에 괴목으로 만든 독수리가 눈을 부릅뜨고 먹잇감을 노려보고 있다. 식물원에 웬 괴목이냐고 할 수 있겠지만 만경비원에는 이런 것이 많다. ‘예술이 된 괴목’의 작품(?)은 길이만 10m쯤 되는 인도네시아산 고사목이다. 공기정화기능이 뛰어나다는 틸란드시아 등 넝쿨 식물을 걸치고 있어 연옥(煉獄)이 있다면 이른 모습이 아닐까 싶다. 돌이 돼 버린 나무 화석(규화석)과 한반도 모양을 한 큼지막한 분재공원도 있다.



 눈길을 끈 식물은 밍크(?)목도리를 두른 선인장이다. 가시가 마치 밍크털처럼 부드러운 백막룡 선인장과 철화 선인장을 접붙여 만든 작품이다. 국내에서는 이곳에서만 볼 수 있는 희귀한 선인장이다.



 ●관람정보=3월까지는 오전 9시에 문을 열고 오후 6시에 닫는다. 매년 12~2월까지는 매주 월요일 휴장하지만 3월부터 11월까지는 매일 문을 연다. 어른 8000원, 어린이 6000원(이상 3월까지)이며 만경비원은 2000원을 더 내야 한다. 토요일 오후 2시에는 아이비 등을 이용한 천연가습기를 만드는 체험교실도 연다. 1인당 5000원. 044-866-7766.



5 베어트리파크 열대 식물원에는 극락조 등 300여 종의 다양한 꽃들이 피어 있다.




사계절 화사한 꽃사태 세계꽃식물원



충남 아산에는 한파가 몰아쳐도 ‘꽃사태’를 볼 수 있는 명소가 있다. 1년 내내 3000여 종의 꽃이 차례로 피어나는 세계꽃식물원(asangarden.com)이다. 2004년 화훼농가들이 힘을 합쳐 손수 일궜다. 온실로만 이루어진 식물원의 전체 규모는 3만3000여㎡(1만 평), 우리나라 실내 식물원 중 가장 크다.



 지난달 28일 식물원은 얼어붙은 논밭 한가운데 덩그러니 있었다. 장식 하나 없는 외관이 무척 소박했다. 그런데 온실 안에 들어서자 반전이 일어났다. 세계 각국의 꽃이 총천연색 봄기운을 자아냈다. “2월 중순이 지나면 수선화·튤립이 만발할 겁니다.” 남기중(57) 원장이 빙그레 웃으면서 귀띔했다.



6 만 가지 비경이 숨어 있다는 베어트리파크의 만경비원. 7 보랏빛 꽃들이 아롱아롱 늘어진 꽃길은 세계꽃식물원의 촬영 명소다. 8 허브 꽃이 만발한 허브아일랜드 허브식물박물관. 아침·저녁으로 다른 향이 감돈다.
 관람로를 따라 다양한 테마의 정원이 잇따라 등장했다. 화려한 동양란 화단을 지나 열대식물원에 다다랐다. 파인애플을 닮은 줄기 위에 노란 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20~30년에 한 번 꽃을 피우는 소철인데 절묘하게 때를 맞춰 취재를 왔다”고 남 원장이 말한다. 3월 말까지 꽃이 피어 있다고 한다.



 온실이 깊어질수록 눈 닿는 데마다 꽃 천지였다. 각양각색 허브 꽃과 30여 종의 감귤나무가 자기만의 독특한 향기를 뿜어내며 어우러져 있다. 새콤한 열대과일 패션프루츠 나무에선 예수의 가시면류관을 닮은 꽃이 폈다. 하이라이트는 보랏빛 작은 꽃(스트랩토칼푸스)이 아롱아롱 늘어진 꽃길이었다. 순백의 신부가 나타날 것처럼 로맨틱해서 사진 찍는 연인이 줄을 이었다.



 ●관람정보=개장시간은 오전 9시~오후 5시다. 3월부터는 오후 6시까지 연다. 연중무휴. 어른 6000원, 청소년 5000원, 어린이 4000원. 홈페이지에서 쿠폰을 출력해 오면 10% 할인해 준다. 꽃물 들인 손수건 만들기, 꽃 염색, 화분 꾸미기 등의 체험도 할 수 있다. 예약은 필수다. 1인 5000원부터. 삼색제비꽃, 베고니아 등 식용꽃을 버무린 꽃비빔밥(사진)은 눈과 입이 호강하는 별미다. 6000원. 041-544-0746.



340여 종의 허브향 진동 허브아일랜드



경기도 포천 허브아일랜드(herbisland.co.kr)는 호사스러운 꽃구경보다 은근한 봄 향기가 간절할 때 찾아갈 만한 곳이다. 허브를 테마로 한 정원, 박물관, 음식점, 펜션, 힐링센터 등이 43만여㎡에 걸쳐 알뜰살뜰 꾸려져 있다. 마음만 먹으면 온종일 허브 향에 파묻혀 지낼 수도 있다.



 허브아일랜드에서도 허브를 마음껏 음미할 수 있는 곳이라면 단연 허브식물박물관이다. 허브아일랜드가 처음 문을 연 1998년 아담한 온실로 출발해 지금은 6600여㎡로 규모를 넓혔다. 2011년 정식 박물관으로 인정받았다. 그만큼 구성이 알차다. 진한 초콜릿 향의 ‘헬리오트로프’며 로즈제라늄, 레몬밤, 라벤더 등 340여 종의 허브가 연중 쉬지 않고 꽃을 피운다.



 온실 문을 열자 감미로운 향이 왈칵 쏟아졌다. 로즈마리다. 심은 지 4년이 지나야 꽃을 피운다는 로즈마리가 보랏빛 은은한 꽃 덤불을 이루고 있었다. 로즈마리 줄기를 아래쪽에서 위쪽으로 가볍게 훑었다. 짙은 향이 진동하면서 묵직하던 머리가 가벼워졌다. 로즈마리는 피로회복에 좋다고 한다. “저녁에는 재스민 향이 더 짙어져요.” 허브아일랜드 임옥(51) 대표가 설명했다. 주로 밤에 흰 꽃을 피우는 재스민은 이성을 유혹하는 데 그 향이 쓰인다고도 했다.



온실 중간 즈음 완만한 오르막을 오르니 지나온 정원이 죄 내려다보였다. 파스텔톤 꽃구름을 딛고 선 듯한 분위기여서 촬영 포인트로 인기가 많다.



 ●관람정보=아기자기한 조명으로 꾸민 불빛동화축제가 4월30일까지 열린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10시까지 야간 개장하는 이유다. 연중무휴. 어른 6000원, 어린이 4000원. ‘엉 쁘띠 빌라쥬’에서는 허브를 활용한 각종 만들기를 할 수 있다. 2주 전 예약만 하면 허브 식초며 와인·잼·압화·화장품 등 원하는 형태로 허브 향을 담아갈 수 있다. 1인 4000원부터. 1644-1997.



9 지난달, 폭설로 새하얗게 뒤덮인 창경궁 대온실. 처음 문을 연 1909년에는 지금 남아 있는 본관 양쪽으로 돔형 별관 두 채가 나란히 서 있었다.




등록문화재가 된 온실 창경궁 대온실



“우리 어릴 적엔 서울에서 소풍 간다면 다 일루 왔지.”



 지난달 31일 서울 창경궁 대온실(cgg.cha.go.kr)에서 만난 조형신(68)씨가 추억을 곱씹었다. 조씨뿐이 아니다. 서울에서 유년기를 보낸 40대 이상에겐 대부분 비슷한 기억이 있다. 1980년대 초까지 창경궁은 식물원·동물원이 있는 유원지였다.



 창경궁 대온실이 처음 문을 연 게 1909년이다. 순종을 창덕궁으로 유폐한 일제는 왕을 위로한답시고 바로 옆 창경궁에 연못을 파고 동물원을 만들었다. 그리고 동양 최대 규모(약 580㎡)의 온실을 지었다. 그게 대온실이다.



10 창경궁 대온실에 소담하게 핀 재래종 동백꽃.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동산은 그 자태만으로 이국적이었다. 해외에서 들여온 아열대식물은 사람들의 이목을 끌었다. 1993년 서울시가 펴낸 『한국동물원 80년사』에 따르면 1940년대엔 온실의 나무 수가 1755그루나 됐다고 한다.



 창경궁은 궁의 위엄마저 잃고 ‘원(院·뜰 원)’ 자를 써 ‘창경원’으로 격하됐다. 1983년 벚나무를 모두 베어내고 서울대공원으로 동식물을 옮기고서야 창경궁은 ‘창경원’이란 오욕을 벗을 수 있었다.



 현재 대온실은 사뭇 다른 모습이다. 외국 식물을 걷어낸 자리엔 우리네 들꽃이 소담하게 피어 있었다. 재래종 동백이 꽃분홍으로 점점이 물들고, 백량금 붉은 열매가 작은 구슬같이 여물었다. 정갈한 촌 집의 봄 풍경처럼 고운 철쭉이 재래식 펌프와 자그마한 장독과 어우러졌다. 창경궁 대온실이 보유한 재래종 꽃과 나무는 150종 1500여 주에 이른다. 겨울이 가실수록 할미꽃·금낭화 등 반가운 봄꽃이 고개를 내밀 터였다. 창경궁 대온실은 2004년 2월 6일 등록문화재 제83호로 지정됐다.



 ●관람정보=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연다. 창경궁이 문을 닫는 매주 월요일은 쉰다. 창경궁 대온실에는 해설사가 없다. 하지만 창경궁관리소에 문의하면 자세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다. 창경궁 입장료(어른 1000원, 18세 이하 무료)만 내면 온실은 무료 입장 가능하다. 02-762-9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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