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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령 400년 된 천연기념물 호두나무 광덕사서 위용 뽐내

중앙일보 2013.02.15 03:30 6면 지면보기
지난호에 이어 이번호에도 천안시 동남구 광덕면 일대를 둘러 보자. 천안의 대표 명물이 된 호두과자의 유래를 찾아 광덕사 호두나무를 찾아가고 조선조 3대 여류시인으로 꼽히는 김부용의 이야기와 장군바위의 전설을 따라가 본다. 천안 사람들도 잘 모르고 있는 옛 이야기를 들으며 광덕으로 떠나 보자. 발길 닿는 곳마다 사연이 넘쳐 난다.


백순화 교수와 떠나는 천안 이야기 여행 ②

정리=최진섭 기자 , 도움말·사진=백순화 백석대 교수



광덕사에 있는 호두나무는 우리나라에 전래된 최초의 호두나무라는 이유로 천안의 명물이 됐다.


◆광덕사 호두나무



광덕사 보화루 앞에 높이가 18.2m 수령이 400년 된 호두나무가 위용을 드러내고 있다. 전설에 의하면 약 720여 년 전 고려 충렬왕 16년에 영밀공 유청신이 중국 원나라에 갔다가 돌아올 때 어린 호두나무 열매를 가져와 묘목은 광덕사 경내에 심고 열매는 자신의 고향집 뜰에 심었다고 한다. 지금의 나무가 그때 심은 나무인지 정확한 근거는 찾을 수 없으나 이것이 우리나라에 호두나무가 전래된 시초라 해 광덕사는 호두나무의 시배지로 알려지게 됐다.



 이런 유래가 있는 호두나무이므로 광덕사에는 호도전래사적비가 있으며 이 나무는 1998년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돼 보호되고 있다. 이처럼 광덕사의 호두나무는 문화적, 생물학적 자료로 가치가 높다. 현재 광덕사를 위시해 광덕면 일대에는 대략 25만8000여 그루의 호두나무가 재배되고 있다고 한다. 이것은 천안에서 생산되는 전체 호두 생산량의 60%에 해당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천안 광덕면은 호두나무 생장의 최적지로 일컬어지는데 호두나무의 서식지가 주 생산지로 되게 된 것은 이곳의 토양과 햇빛, 온도 등 환경이 알맞은 때문이다.





◆김부용의 묘



조선조 3대 여류시인으로 손꼽히는 김부용의 시비.
한편 광덕사에는 호두나무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이 있다. 조선시대 평양감사를 지낸 김이양의 소실이었던 김부용이다. 그녀는 시명이 운초였고 초당마마라 불리었다. 신사임당, 허난설헌과 함께 조선조 3대 여류시인으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녀는 가난한 선비의 무남독녀로 태어나 네 살 때 글을 배우기 시작해 열 살 때 당시와 사서삼경에 통했다고 한다. 그러나 부모를 일찍 여의고 퇴기의 수양딸로 들어가면서 기생의 길을 걷던 중 봉조하 김이양 대감을 만나 그의 소실이 된다.



 하지만 김이양이 호조판서로 부임하게 되어 혼자 한양으로 가게 된다. 생이별을 한 그녀는 재회의 날만 기다리며 오랜 세월을 외로움과 눈물로 보낸다. 슬픔에 못 이겨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도 하면서 그녀는 피를 토하는 듯 애절한 시를 써서 인편으로 김이양에게 보낸다.



 학수고대하던 그녀는 마침내 기별을 받고 한양으로 올라간다. 남산 중턱에 ‘녹천당’을 꾸미고 김이양과 15년을 함께 생활한다. 그가 죽은 후에는 정절을 지키며 살다 자신의 유언에 따라 김이양의 묘 근처인 이곳에 묻히게 됐다.



 참 역설적인 것은 지체 높은 김이양의 무덤은 오늘날 풀덤불에 묻혀 잘 보이지도 않고 접근하기도 어려운데 부용의 묘는 정갈하게 잘 가꾸어져 있다. 매년 천안문인협회 추모행사뿐 아니라 추모객들이 그녀를 흠모해 찾아오기 때문이다. 이는 세상의 부귀영화보다 예술의 생명이 유구하다는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은 아닐까? 부용이 남긴 가장 아름다운 시는 ‘부용상 사곡’인데 다소 긴 시이기에 그에 못지않은 ‘춘풍’이란 칠언절구의 시를 소개한다.



 수양버들 늘어진 창을 열고 기대서니



 임 없는 뜰엔 푸른 이끼만 길게 자라고



 주렴 밖에 가끔 봄바람 절로 일면



 임 오시나 속은 것이 몇 번이던고



 

이별의 아픔을 견디며 수많은 시를 남겼는데 그녀의 애틋한 마음이 담긴 주옥 같은 시들은 ‘부용집’에 350여 수가 전한다. 이들은 규수문학의 정수로도 꼽히나 정작 우리나라보다는 한시의 고장인 중국에 더 잘 알려져 있다.



◆장군바위



부용 묘를 지나 능선 길을 따라 장군바위를 향하니 길은 완만하나 광덕사에서 바로 오르는 길보다 멀다. 장군바위에도 전하는 이야기가 있다. “옛날 허약한 한 젊은이가 깊은 산속을 헤매다 허기와 갈증으로 사경에 이르렀는데 어느 곳에서인지 물소리가 들려 소리 나는 곳을 향해 가보았더니 큰 바위 밑에서 물이 뚝 뚝 떨어져 신기하게 여겨 손으로 받아먹었더니 얼마 되지 않아 몸이 마치 장군처럼 우람하게 됐다고 하여 장군바위라 칭하였다.”고 한다. 광덕산의 모든 바위가 장군이 거느렸던 병사 같다고나 할까?



 광덕산은 국보급 보물도 많지만 이야기가 풍성한 산이다. 해마다 찾는 이가 늘어 천안시에서 광덕산 쉼터를 새로 조성했다. 주차장과 토속 음식점, 농산물센터, 펜션 등이 있어 가족과 함께 머물기엔 아주 그만이다. 또 옛 모습 그대로인 광덕리 마을에 들어서면 동네 주민들이 가지고 나온 광덕 호두와 발갛게 익은 홍시, 느릅나무 껍질, 버섯, 산채나물이 보기만 해도 힘이 난다. 광덕산 주차장 주변으로 식당과 관광농원이 있어 소박하지만 맛있는 산채나물비빔밥과 도토리묵 무침을 맛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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