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盧 "북, 핵주장 일리 있어" 비웃듯 2년 뒤

중앙일보 2013.02.15 01:01 종합 4면 지면보기
평양 핵실험 자축 대회 북한군이 14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군민연환대회’에 참석해 제3차 핵실험 성공을 축하하고 있다. 김기남 노동당 선전 담당 비서는 대회 연설에서 제3차 핵실험을 “미국의 대조선 적대시 정책에 대처한 단호하고도 정정당당한 자위적 조치”라고 했다. 김정은 국방위 제1 위원장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평양 AP=뉴시스]
“북한의 (핵보유) 주장이 일리가 있는 측면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임기 2년차인 2004년 11월 큰 논란을 부른 발언을 했다. 북한 핵 프로그램을 두둔하는 듯한 연설을 미국 LA 방문 길에 던진 것이다. 정부 당국자는 14일 “북핵 저지를 위한 한·미 공조는 일거에 뒤흔들렸고 남남 갈등도 고조됐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북한은 2006년 10월 첫 핵실험을 단행했다. 한 달 전까지도 핵실험은 없을 거라던 노 대통령을 비웃는 듯한 결정이었다.


“북한의 핵 주장 일리 있는 측면”→ 2년 뒤 첫 핵실험
오락가락 대북정책 20년

 첫 북핵 위기가 발생한 지 20년. ‘조잡한 수준의 핵 개발’로 평가받던 북한은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카드까지 드러냈다. 핵의 검은 공포가 한반도에 짙게 드리우게 된 건 대통령의 리더십·철학 부재도 한몫했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이다. 최완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은 “5년 주기로 교체되면서 냉탕·온탕을 오가는 대북정책으로는 북한의 집요한 핵 개발 의지를 적절히 제어하기 어려웠다”고 지적했다.



 햇볕정책 탓이나 진보·좌파성향 정부만의 문제는 아니다. “어느 동맹국도 민족보다 나을 수 없다”며 출범한 김영삼 정부는 1차 핵 위기가 터지자 “핵을 가진 자와는 악수할 수 없다”며 돌아섰다. 1년 뒤엔 김일성 주석과의 정상회담에 합의했다. 전 통일부 고위 당국자는 “YS는 ‘붕괴에 직면한 북한 정권과 타협할 수 없다’며 미국이 속고 있다고 비난했지만 며칠 뒤 북·미 제네바 핵 합의가 나왔다”고 말했다. 한 치 앞도 못 본 전략 부재는 3조5000억원의 대북 경수로발전소 비용 부담을 떠안는 결과를 낳았다.



 반핵·반전을 기치로 원전 건설을 가로막던 일부 환경단체도 북핵 문제에는 눈을 감았다. 일각에선 2002년 10월 고농축우라늄(HEU) 방식의 북핵 의혹이 제기되자 “미국 네오콘의 음모”라며 북한을 감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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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영태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 핵 등 대량살상무기(WMD)로 대남 열세를 일거에 만회하려는 북한에 대해 ‘북핵은 미국을 겨냥한 것’이라며 안이하게 대한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전봉근 국립외교원 교수는 “지난 20년 우리의 비핵화 외교도 실패했다”며 우크라이나 비핵화 사례 등 쉬운 모델을 적용한 게 패착이었다고 지적했다. 단순한 압박이나 형식적 인센티브로는 북한을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에 강력한 제재와 매력 있는 유인책을 함께 제공하는 한반도형 비핵화 조치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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