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검은 피카소’ 바스키아를 만나다

중앙일보 2013.02.15 00:59 종합 24면 지면보기
바스키아, 행렬(Procession), 1986, 나무판에 아크릴과 나무 부조, 162×244㎝. [사진 바스키아재단]


엄마 손을 잡고 간 뉴욕 현대미술관(MoMA)에서 피카소의 ‘게르니카’(1937)를 봤다. 그림 앞에서 눈물 흘리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화가가 되리라’ 마음먹었다. 이 아이가 ‘검은 피카소’로 불리는 화가 장-미셸 바스키아(1960~88)다.

28세에 요절 장 - 미셸 바스키아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서
회화·부조 14점으로 전시회



 이 일화는 그의 일대기를 다룬 영화 ‘바스키아’(1996)의 첫 장면으로도 쓰였다. 후에 프랑스 칸영화제에서 감독상을 받기도 했던 화가 줄리안 슈나벨(62)의 감독 데뷔작이다. 슈나벨은 1980년대 미국 신표현주의의 기수로 바스키아와 함께 활동했다. ‘게르니카’는 1981년까지 MoMA에 위탁돼 있다가 스페인에 반환됐다.



 전설은 계속된다. 8살 때 교통사고로 장기손상을 입어 비장(脾臟) 제거 수술을 받았다.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어머니가 건넨 의대생들의 해부학 책을 들여다봤다. 아버지는 아이티 출신 회계사, 어머니는 푸에르토리코계 이민자의 딸이었다.



  고교 땐 가출해 2주간 공원에서 노숙했다. 수소문 끝에 아들을 찾으러 온 아버지에게 “저는 언젠가 아주 아주 유명해질 거에요”라고 말했다.



 이듬해부터 가짜 종교를 팔아 돈을 버는 ‘세이모’(SAMO, 속어 ‘Same Old Shit’ 즉 ‘흔해 빠진 쓰레기’의 줄임말)라는 캐릭터를 만들어 뉴욕의 거리 곳곳에 스프레이로 그려 주목받았다.



 그는 집을 떠나 키스 해링·키키 스미스 등과 어울렸다. 22세에 독일 카셀 도쿠멘타에 최연소로 참가했다. 요셉 보이스·안젤름 키퍼·게르하르트 리히터 등의 작품과 함께 전시됐다. 이듬해엔 뉴욕 휘트니 비엔날레에 참여했다. 가고시안·매리 분 등 세계적 화랑에서도 개인전을 열었다.



 28세에 마약 중독으로 요절하기 전까지 바스키아는 8년간의 짧은 활동으로 세계 미술계의 스타덤에 올랐다. 정규 미술 교육을 받지도 않았다. 그래피티(낙서화)를 예술의 반열에 올려 놓았고, 주류 미술계에서 성공한 최초의 흑인으로 꼽혔다. 비행기, 자동차, 야구선수 행크 아론 등 선망하던 흑인 영웅들, 해부학적 도상들이 들어간 전복적·저항적인 그의 회화는 현재 미술 시장 최고의 ‘블루칩’으로 꼽힌다.



 글로벌 미술시장 분석회사인 아트프라이스에 따르면 바스키아는 지난 수 년 간 1945년 이후 출생 미술가 중 경매 시장에서 가장 잘 팔리는 작가다. 비주류, 비상업적 낙서화가의 부상은 미술시장 시스템이 낳은 아이러니이기도 하다. 서울 소격동 국제갤러리에서 다음 달 31일까지 장-미셸 바스키아전을 연다. 캔버스나 널빤지에 그린 회화와 부조 14점이 나왔다. 무료. 02-735-8449.



권근영 기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