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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마 바둑 부부, 유럽서 신대륙 개척 꿈

중앙일보 2013.02.15 00:52 종합 26면 지면보기
프랑스 그르노블시 비자네(Bizanet) 초등학교에서 지난해 12월 열린 바둑대회 광경. 어린이 60명이 참가한 이 대회엔 바둑을 처음 접하는 교사와 학부모, 클럽 바둑인들도 함께 참가해 황인성 부부에게 바둑을 배웠다. 유럽 전역에선 연간 300번 이상의 공식 대회가 열리지만 바둑 보급에는 이런 비공식 이벤트가 더 유익하다.


화제의 만화 ‘미생’의 주인공 장그래는 프로 입단에 실패하고 무역회사에 들어간다. 연구생으로 프로 입단을 꿈꾸던 황인성(31)씨는 입단에 실패하고 멀리 유럽으로 갔다. 2005년부터 프랑스에 거주하며 베를린·취리히·암스테르담 등에서 바둑을 가르치고 있다.

바둑 전도사 황인성·이세미



유럽 무대가 호락호락한 건 아니다. 정부 지원을 받아 보급에 나선 프로기사들도 번번이 고개를 저으며 퇴각했다. 그러나 황인성 아마7단은 유럽에선 이미 널리 알려진 ‘마스터(Master)’가 됐다. 초창기엔 시합에 나가며 이름을 알려야 했지만 지금은 유명해져 각종 대회에 심판이나 사범으로 초청받는다(독일에서만 연 60회 대회가 열린다). 인터넷을 통해 정기적으로 가르치는 제자도 70명을 넘어섰다.



지난해 결혼한 이세미(29)씨도 아마5단의 바둑인이다. 월 수입은 700만~ 1000만원. 현재 유럽엔 독일 남자와 결혼해 함브르크에서 살고 있는 전 여류 국수 윤영선 8단이 왕성한 보급 활동을 하고 있고, 그 외의 프로는 모두 철수했다. 아마추어로는 황인성 부부가 처음으로 뿌리내리기에 성공한 것이다.



황인성(왼쪽)씨와 이세미씨 부부.
 황인성 부부가 ‘유럽 유소년바둑보급 프로젝트’라는 야심찬 계획서를 들고 서울에 왔다. 유럽 바둑팬은 15만~20만 명으로 추산된다. 연간 바둑대회에 한 번이라도 나간 사람은 6200명쯤 된다. ‘고스트바둑왕’이란 일본 바둑 만화가 번역돼 큰 히트를 쳤던 2003~2005년 유럽 바둑 인구는 한꺼번에 40%나 증가했다가 이후 잠잠한 실정이다. 왜일까. 답은 ‘언어’에 있다. 아시아에서 온 고수들은 10급을 7급으로 올려줄 수는 있지만 바둑을 전혀 모르는 어린이를 가르칠 수는 없다. 프랑스 어린이는 프랑스어로, 독일 어린이는 독일어로 가르쳐야 하는데 그게 불가능한 것이다.



 유럽 곳곳에선 오직 바둑이 너무 좋아 바둑 전파에 나선 자발적 ‘전도사’들이 꽤 있다. 예를 들어 프랑스의 중학교 교사 호세 올리바는 겨우 15급 실력인데 자신의 학교에서 50명을 가르치고 있다. 네덜란드의 도우 메이어는 1급인데 이름이 알려지자 4개의 초등학교가 그에게 바둑교육을 위임했다. 제자가 100명이 넘는다. 황인성은 1차로 이들 24명의 ‘선생’들에게 자격을 부여하고 체계적으로 가르칠 수 있는 교재 등을 지원해 점차 규모를 키워나가는 장단기 프로그램을 마련한 것이다.



 “스포츠든 게임이든 백인들이 만든 것만이 세계화돼 있습니다. 그게 현실입니다. 그러나 바둑은 콘텐트가 너무 훌륭하기 때문에 아시아에서 만든 것 중 유일하게 그 벽을 뚫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유럽 개척이라는 큰 꿈에 도전한 황인성 부부는 의욕에 넘쳐 있다. 프로기사가 아니기 때문에 비자 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지만 현지 바둑인들이 적극 돕고 있기 때문에 잘 풀릴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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