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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박근혜는 중·일 갈등 풀 수 있다

중앙일보 2013.02.15 00:37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강일구]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지난주 유명한 아시아 전문가가 워싱턴포스트에 동아시아 긴장 상황에 대한 글을 실었다. 이 신문의 베이징(北京) 특파원 출신인 필자는 중국과 일본 간의 긴장 고조는 이제 최고조에 이르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진짜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은 양국이 센카쿠(尖閣)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釣魚島) 영토분쟁 때문에 전쟁을 벌일지 여부가 아니라 양측이 선박과 항공기·인력을 섬 주변에 배치하면서 자칫 충돌사고가 일어날 수 있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이런 충돌사고가 벌어질 경우에는 합당한 교전규칙도, 갈등완화 방안도 없다는 것이다. 그는 미국이 과거 아시아에서 여러 차례 전쟁을 치렀으며 이 같은 역사가 반복돼서는 안 된다고 경고했다.



 사실 아시아 국가들은 역사상 서로 전쟁을 많이 치르지는 않았다. 데이비드 강 남가주대 교수의 연구에 따르면 1648년 이후 아시아에선 주류 국가들 사이의 전쟁이 그리 잦지 않았다. 게다가 유럽에선 종교를 둘러싼 갈등이 상당수 전쟁의 원인을 제공했으나 아시아에선 그런 갈등이 거의 없었다.



 하지만 일본과 중국 사이의 긴장 고조는 우려할 만하다. 바로 지난주 동중국해에서 중국 해군 함정이 일본 구축함을 겨냥해 화력 통제 레이더를 작동했다. 이는 군인들이 적을 공격하기 위해 무기를 조준할 때 하는 행동이기 때문에 극단적인 도발 행위에 해당한다.



 일본은 지난주 워싱턴에 이러한 중국의 행동을 구체적으로 설명했다. 이는 의심할 여지 없이 충돌이 일어날 경우 일본도 어떤 대응이 필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2년 말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 인터넷판에 기고한 글에서 필자는 민족주의의 부상은 우리가 오랫동안 봐왔던 것보다 훨씬 더 높은 수준의 긴장을 유발할 것이라고 썼다.



 한국은 이런 긴장을 완화하는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 두 대국 사이의 긴장을 완화하는 것은 한국에도 전적으로 이익이다. 한국은 도쿄(東京)가 고통받는 것을 보면서 만족감을 느낄 수도 있겠지만 중·일 긴장에서 얻을 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뒷전에 앉아서 긴장이 고조되는 것을 바라보는 것도 무의미하다.



 더 중요한 것은 한국은 미국 같은 다른 중재자가 할 수 없는 일을 할 수 있다. 버락 오바마 행정부가 아시아 중시 정책을 펴고 있지만 워싱턴은 아시아에서 벌어지는 이 같은 상호파괴적인 긴장 상황에 개입할 생각이 없다. 설혹 미국이 긴장을 낮추려 한다 해도 베이징이 미국을 일본과 중국 사이에서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할 것이라고 여길 가능성은 희박하다. 미국에 일본은 동맹국이고 중국은 경쟁국이기 때문이다. 반면 한국은 정직한 중재자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다. 한국은 이 분쟁에서 지리적으로 가장 가까운 나라이기도 하다. 한국은 중국과 일본 모두와 좋은 관계를 맺으면 이익을 볼 수 있다. 게다가 중국과 일본 어느 누구도 한국을 상대방 편으로 보지 않는다. 이런 두 나라 사이의 중재 역할을 확실히 할 수 있는 나라는 아시아에는 물론 전 세계에도 한국 외에는 없다.



 베이징과 도쿄는 한국의 새로운 지도자를 대단한 존경심으로 바라보고 있다. 박근혜 당선인은 두 나라 모두에 잘 알려진 정치인이다. 일본의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지난해 대통령 선거에서 박 후보가 당선된 이후 처음으로 특사를 보낸 아시아 지도자다. 중국에 박 당선인은 이명박 대통령 시절 어려웠던 한·중 관계를 새롭게 개선하겠다는 상징으로서 베이징에 특사를 보내는 세심함을 보여준 인물이다. 간단히 말하면 아베 총리와 시진핑(習近平) 총서기는 서로 껄끄러운 사이이지만 두 사람 모두 한국의 새로운 대통령과는 좋은 관계를 맺고 싶어 한다.



 그렇다면 한국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분명한 점은 한국이 이웃 나라들 사이에 벌어진 영토분쟁에서 판결을 내릴 수는 없다는 점이다. 한쪽 편을 들 수도 없다. 하지만 두 나라가 아무리 팽팽히 대치해 한쪽이 절대로 물러설 수 없는 상황이라도 제3자가 중재하고 공감하며 두 나라가 체면을 살리면서 해결책을 찾을 수 있도록 다음과 같이 방안을 제시할 수는 있다.



 첫째, 한국의 새 대통령은 중·일이 지역 평화와 안정을 위태롭게 해서는 안 되며 이 상황을 조용히 다뤄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호소할 수 있다. 이러한 성명은 지역 내는 물론 지역 밖 나라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으며 도쿄와 베이징의 시선을 끌 수 있다.



 둘째, 이러한 공개적인 선언의 이면에서 중·일 지도자에게 아시아 지역은 두 나라의 긴장 완화를 원한다고 조용히 호소할 수 있다. (2월 25일 대통령 취임식 직후 축하 통화를 하면서 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한국은 분위기를 바꾸고 긴장을 완화할 3국 정상회담을 주선할 수도 있다. (조용하고 경치 좋은 제주도 같은 곳은 어떨까) 한국은 이미 서울에 한·중·일 3국 협력사무국을 유치했으니 장관급이나 정상회담을 제안하기에 좋은 위치에 있다. 일본과 중국의 우방(미국이나 러시아?)은 한국 주도의 이러한 제안을 전폭 지지할 것이다.



 박 당선인은 선거운동 기간 ‘신뢰의 정치’를 이야기했다. 이는 신뢰에 바탕을 둔 지역 관계와 외교 정책을 펴 나가겠다는 뜻일 것이다. 한국이 이웃 국가들 사이의 최근 긴장 상황을 완화하는 지도적인 역할을 하는 것만큼 이러한 새로운 외교의 성공사례를 만드는 더 나은 방안이 또 있을까?



빅터 차 미국 조지타운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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