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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당·화장실 못 짓게 하니 일하러 안 와

중앙일보 2013.02.15 00:37 경제 3면 지면보기
대한상공회의소에서 14일 열린 ‘기업 애로 타개를 위한 새 정부 정책 과제’ 대토론회에서 윤장혁 화일전자 사장(왼쪽)이 중소기업 자금난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이현재 경제2분과 간사 등 300여 명이 참석했다. [사진 대한상의]


#1. 경기도 고양시 장항동의 한 인쇄업체에는 화장실이 없다. 회사 직원들은 인근 장항1동 주민센터의 화장실을 쓴다. 20%로 제한된 건폐율(대지면적 대비 건물 바닥면적 비율) 규제로 좁은 공장 안에 생산시설을 최대한 많이 넣다 보니 벌어진 일이다. 같은 지역에 있는 편의점용 냉장고 제조업체 세대산전은 임시방편으로 컨테이너를 활용한 가건물을 창고 등으로 쓰고 있다. 이 가건물이 허용되는 데도 무려 16년이 걸렸다. 이홍근 세대산전 사장은 “공장 시설은 물론이고 직원 식당·화장실·기숙사를 짓기 힘들다 보니 구인난은 더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상의, 기업 애로 타개 대토론회



 #2. 대구의 아이디알시스템은 60대 직원을 신규 채용하고 있다. 꾸준히 성장해 온 기업이지만 일하겠다는 20∼30대를 찾을 수 없어서다. 최병준 사장은 “그래도 우리는 사정이 나은 편”이라고 말한다. 그는 “조선 기자재를 만드는 이웃 업체는 매년 10명씩 채용 수요가 생기는데 지난해 단 한 명도 뽑지 못했다”며 “청년 실업자가 30만 명이라는데 직원 10명 뽑기가 어렵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말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14일 주최한 ‘기업 애로 타개를 위한 새 정부 정책과제’ 대토론회에서 쏟아진 중소기업의 하소연이다. 이날 토론회에 패널로 참석한 중소기업 사장들은 한목소리로 규제개혁을 주장했다.



 여전히 기업 뒷다리를 잡는 규제가 많다는 불만도 이어졌다. 대표적인 것이 산업단지 규제다. 제조 공장 위주로 산업단지를 만들다 보니 지식·문화산업 등이 들어갈 여지가 크지 않다는 지적이다. 안호경 알트플러스 E&C 사장은 “주상복합 등 복합 용도 건물이 늘어나고 있는데 산업단지에선 공장에 다른 시설을 추가한 복합 용도 건물이 들어서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는 또 “동대문 패션타운, 강남 뷰티타운은 왜 산업단지가 될 수 없느냐”고 되물었다. 안 사장이 이날 토론회에서 밝힌 공장 신·증설 애로만 20건에 달했다. 대표적인 게 따로 노는 법 체계다. 산업단지 입지 관련 법에선 소규모 산업단지 지정 권한을 군수에게 위임해 놓고, 다른 법에선 도지사 주관으로 통합 심의를 하게 해 사실상 권한 위임이 안 되는 식이다. 법인세 과세를 강화하려는 움직임에 대한 우려도 나왔다. 윤장혁 화일전자 사장은 “경쟁국은 앞다퉈 적극적인 경기 부양책을 쓰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법인세율 인하, 중견기업 세제혜택 확대, 가업상속 지원 등 ‘비 올 때 우산’ 같은 실질적 지원을 하라”고 요구했다.



 이런 요구에는 다 이유가 있다. 기업이 규제 개혁의 힘을 체감했기 때문이다. 세대산전이 2009년 16년 만에 허가를 받았다는 가건물이 대표적이다. 임시방편이지만 가건물 창고가 생긴 후 생산 설비를 넣을 공간이 늘어나면서 35명(2007년)이던 직원 수는 84명(2012년)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수출은 2.5배, 매출은 76% 늘었다. 경기도에 따르면 건폐율·용적률 규제를 20%포인트씩만 완화하면 전국적으로 일자리가 36만여 개 늘어나고, 부가가치세 수입이 연간 3조원 증가한다. 마구잡이 개발 우려에 대해 구춘민 경기도청 팀장은 “기업이 공장을 더 짓기 위해 여기저기에 땅을 사면 오히려 난개발이 늘어난다”며 “이미 확보한 부지를 잘 활용할 수 있게 하는 게 환경보호에도 낫다”고 말했다. 이홍근 세대산전 사장은 “규제개혁은 돈(정부 재정)을 들이지 않고도 일자리를 늘리고 중소기업을 살리는 길”이라고 강조했다.



 토론회에서 손경식 대한상의 회장은 “새 정부는 기업이 본연의 역할인 투자와 고용에 앞장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규제개혁을 통해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김종석 홍익대 교수는 주제 발표를 통해 “기업에 대한 불신과 경제민주화 확산으로 한국의 기업·규제 환경이 악화됐다”며 “국회의원 입법을 통한 규제 신설에 대해서도 검증 절차를 도입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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