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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층간소음 개선,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

중앙일보 2013.02.15 00:35 종합 33면 지면보기
최준호
경제부문 기자
13일 오후 정부세종청사 국토해양부 기자실에서 예정에 없던 백브리핑(비공식 기자회견)이 열렸다. 최근 아파트 층간소음이 살인사건으로까지 번지면서 사회 문제로 떠오르자 주무 부처인 국토부에서 부랴부랴 만든 자리였다. 국토부는 전날에도 이와 관련한 ‘참고자료’를 배포했다. 그런데 비판 여론이 수그러들지 않자 “언론에 직접 설명하라”는 장관 지시가 다시 내려졌다.



 ‘아파트 층간소음 관련 제도 현황 및 향후 개선 방향’이라는 7쪽짜리 백브리핑 자료는 꽤 자세했다. 하지만 새로운 내용은 별로 없었다. 기존 ‘표준 관리규약 준칙’에 층간소음을 포함한 전반적인 주거생활 소음예방에 관한 내용을 구체화해, 시·도지사 관리규약 준칙에 반영할 계획이란 게 전부였다. LH공사의 아파트에 한해서는 ‘이르면 내년부터’ 층간소음이 상대적으로 적은 기둥식 구조 설계를 의무화하고, 민간업계에도 인센티브를 제공해 기둥식을 유도하겠다고 덧붙였다. 나머지 대부분은 새누리당 정희수 의원이 지난달 발의한 주택법 개정안 등 기존에 발표된 내용을 재탕한 것들이었다. 구구한 설명이 민망했던지 박선호 주택정책관은 “자료 앞부분은 이미 나온 내용들이며 새로 나온 것은 뒷부분”이라는 말도 보탰다.



 우리나라 아파트의 85%는 기둥 없이 내력벽만으로 지탱하는 ‘벽식 구조’다. 충격이 벽 전체를 타고 전해지기 때문에 기둥식보다 층간소음이 심할 수밖에 없다. 앞으로 지을 아파트는 바닥 두께도 늘리고 기둥식도 유도하겠다는데, 말 그대로 ‘소 잃고 외양간 고치기’다.



 어쩌다 이리 됐을까. 아이가 셋인 기자는 1977년 지어진 주공아파트에 살고 있다. 겉은 낡았지만 층간소음으로 아랫집에서 찾아온 적은 한 번도 없다. 문제는 일산·분당신도시처럼 80년대 후반에 대거 들어선 아파트에 있다. 당시 신공법이라고 도입된 벽식 구조는 건축비용도 절감되고 공사기간도 단축됐다. 기둥과 보를 쓰지 않다 보니 천장이 낮아져 층수를 더 높일 수도 있었다. 그렇게 건설업체에 ‘달콤한 20년’이 흘렀다. 정부는 모든 걸 시장에 맡겨두고 뒷짐지고 있었다. 문제점을 인식하고 뒤늦게 바닥두께 기준을 의무화한 것은 2005년에 들어서다. 국토부의 한 공무원은 이렇게 해명했다. “개발연대에 어쩔 수 없었던 일이었다. 그 시절엔 아마도 사회적 합의가 있었을 것이다. ”



 우리나라는 주택 중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중이 60% 안팎이나 된다. 일본은 10%에 불과하다. 층간소음으로 목숨을 잃는 사람이 나온 건 예외적 현상이 아니라 정책실패를 알리는 적신호다. 개발연대와 해외사례를 들어 변명한다면 ‘눈 가리고 아웅’ 아닐까.



최 준 호 경제부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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