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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규연의 시시각각] 아파트에 야수가 산다

중앙일보 2013.02.15 00:32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규연
논설위원
‘인터폰으로 사정하고 올라가 따져보고 회유에 협박에, 해볼 건 다 해봤다. 그때마다 위층 소음은 더 심해졌다. 2년 동안 이를 갈고 살았는데 전세 기간이 끝나 드디어 이번 주에 이사한다. 이사 가면 집에서 매일 볼링공을 굴려야지. 기다려라, 복수의 날은 왔다. 내가 이사 가는 곳은 위층의 위층이다’.



 한 인터넷 사이트에 올라온 글이다. 층간소음 갈등이 심하다고는 하지만 극단적이고 기이한 대처법이거니 여겼다. 그런데 주변 얘기를 듣고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게시판에서 이런 유(類)의 복수를 계획 중인 주민의 글을 봤다”(동료 논설위원), “위층의 위층으로 이사해 집안에서 줄넘기를 하고 있는 보복 후기도 읽었다”(후배 기자)는 것이었다.



 설 연휴 때 서울에서 ‘층간소음 살인’이 발생한 이후 온라인 공간에는 ‘복수 후기’가 넘쳐난다. 악질 위층을 응징했다는 경험담들이다. 낮은 주파수를 내는 우퍼 스피커를 위층을 향해 천장에 붙여놓고 요란한 음악을 틀어놓았다, 한밤에 위층으로 통하는 환기구에 ‘야동’을 틀어놓았다…. 영웅본색·올드보이 같은 영화 판에서 나올 만한 엽기적인 보복혈전이 난무한다. 놀랍게도, 층간소음 살인 사건의 피의자가 끔찍한 범죄를 저질렀음에도 “오죽 시달렸으면 그랬을까” 하는 동정론이 적지 않다. 통쾌하고 철저한 보복을 도모 중인 이웃이 그리도 많았나.



 일찍이 사회생물학자 에드워드 윌슨은 ‘바이오필리아’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생명·자연환경(바이오)을 지향(필리아)하는 사회적 유전자가 우리 몸속에 있다는 것이다. ‘생명애(生命愛) 지향’ 정도로 번역할 수 있겠다. 자연환경을 접하면 편안함을 느끼는 반면, 인공구조물에 둘러싸이면 아토피·정서장애를 일으키는 현상을 그는 바이오필리아로 설명했다. 비슷한 맥락에서 현대의 환경심리학자들은 주변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인간의 행동·태도를 탐사한다. 주변에 녹지대가 없는 고층아파트 주민들의 행동 양식을 파고들어 이들에게서 불안·초조와 공격·폭력 성향이 두드러진다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를 바탕으로 정서장애를 치유할 녹지공간과 함께 갈등을 조정할 공존의 문화가 꼭 필요하다는 결론을 얻게 된다.



 한국은 아파트 왕국이다. 공동주택 주거 비율이 70%에 가깝다. 일본 40%, 영국 20%, 미국 4% 수준이다. 몇몇 미니 국가를 제외하고 세계 일등 수준이다. 아파트가 본격적으로 들어서기 시작한 것은 1970년대 중반부터다. 40년도 안 돼 주거지가 온통 아파트로 변한 것이다. 주거환경은 급격히 변동했지만 사람들의 행동·생활태도는 단독주거 시절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취침 시간에 미라처럼 돌아다니고 쿵쿵대는 아이에게 주의를 주지 않으며 심야 세탁을 감행한다. 그사이 이웃은 점점 야수로 변한다.



 광속의 물질변화 속도를 거주문화가 따라잡지 못해 일어나는 ‘공동주택 문화 지체’는 비단 층간소음 갈등에 그치지 않는다. 쓰레기 배출, 공동시설 사용, 애완동물 관리 등을 놓고 파열음이 터져나온다. 우리 사회는 콘크리트 인공물만 건설했지, 그곳의 작은 평화를 유지할 규칙을 만드는 데 실패했다. 이참에 아래 층 배려, 위 층 복수 금지 등을 포괄적으로 담은 공동주택평화법이 나왔으면 좋겠다. 이를 근거로 아파트단지별로 사정에 맞게 세세한 평화규약을 만들 수 있지 않을까.



 층간소음 살인 현장을 찾았다. 13년 된 그리 낡지 않은 아파트단지였다. 특별히 부실시공이 문제가 되지도, 층간소음 갈등이 유난히 심하지도 않았다고 주민·관리사무소 직원은 말했다. 공동주택에서 사는 방식을 바꾸지 않으면 평범한 이 아파트에서 그랬듯이, 분노가 어디서든 타오를 수 있다. 부동산 경기가 한창 달아올랐던 몇 년 전, 이곳은 주택가격을 담합한 혐의로 당국에 적발됐다. 이런 문화 말고 ‘바이오필리아’ 문화가 우리에겐 필요하다. 아파트의 야수를 잠재우기 위해서.



이규연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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