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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2) 탄핵 그리고 대통령 대행 ②

중앙일보 2013.02.13 00:50 종합 2면 지면보기
2004년 3월 15일 오전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국무총리 집무실에서 고건 대통령 권한대행이 주재하는 공명선거 관계장관회의가 열렸다. 탄핵 사태가 있고 3일 후 일이다. 사진 오른쪽부터 고 권한대행, 안병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 강금실 법무부 장관. [중앙포토]


점심으로 도시락이 배달됐다. 입맛이 있을 리 없었다. 젓가락을 몇 번 들지도 못했다. 다시 전화를 걸고 받고…. 내내 수화기를 손에 쥐고 있어야 했다. 노무현 대통령과의 전화는 연결되지 않았다. 비서실은 행사 중이라 통화가 어렵다고 했다. 2004년 3월 12일 낮 12시20분 이헌재 경제부총리를 불렀다.

고건 "그때 강금실 한 마디만 더 했다면…"



 “해외 공관과 외교 채널 연락은 반기문 장관에게 지시해 조치했습니다. 이 부총리께선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통과됐지만 우리 정부의 외교·안보·경제정책에 변화는 없다’는 메시지를 외국인 투자자에게 보내주십시오. 대외 신인도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네. 그렇게 하죠.”



 오후 1시30분 경제·외교·안보 관계장관 회의를 열었다. 서울 세종로 정부 중앙청사 총리 집무실 안의 직사각형 회의 탁자에 장관들이 둘러앉았다. 모두 말없이 시선은 아래로 향하고 있었다. 내가 입을 열어야 했다. 크게 숨을 들이마셨다. 그리고 말했다.



 “오늘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합니다. 비상상황인 만큼 행정 각부가 흔들림 없이 국정 수행에 임해주기를 당부드립니다.”



 모두발언이 끝나고 장관들이 돌아가며 보고를 했다. 노 대통령을 수행하고 있는 조영길 국방부 장관을 대신해 유보선 국방부 차관이 첫 보고를 맡았다.



 “ 감시와 경계태세를 강화할 것을 주 내용으로 하는 군사 대비태세 강화 지시를 이미 전 군에 하달했습니다.”



 다음은 이종석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사무차장 차례였다.



 “NSC 상임위원회 등을 조속히 개최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의 각종 외교 일정을 조정하겠습니다.”



 그리고 이헌재 경제부총리가 보고했다.



 “13일 아침 경제장관회의를 개최해 부처별 당면 경제현안을 점검하고 대응책을 강구하겠습니다. ”



 허성관 행정자치부 장관의 보고가 이어졌다. “ 경찰 비상경계령을 발표했습니다. 13일 시·도 행정부시장, 부지사 회의를 소집해 민생 안정대책을 당부할 계획입니다.”



 위기 속에 실낱같은 안도감을 느꼈다. 모든 부처가 기민하고 신속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회의는 길지 않았다. 30분 만에 끝났다.



 오후 2시 미리 정리해 놓은 총리의 입장을 발표했다. “헌정 사상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데 대해 개탄스럽게 생각한다. 이런 상황에 대해 국민에게 죄송스러운 마음을 금할 길이 없다”는 내용이었다. 급한 일은 더 있었다. 박관용 국회의장에게 전화를 걸었다.



 “대통령이 진해 행사에 가 계십니다. 오후 5시는 돼야 오십니다. 탄핵안 의결서는 5시 이후에 보내주십시오.”



 “그러겠습니다.”



 법적으로 의결서가 청와대에 도착하는 순간 대통령 직무는 정지된다. 대통령이 청와대에 없는 상태에서 직무가 정지되는 사태를 막아야 했다. 노 대통령은 진해에서 급거 상경 중이었다. 도대체 대통령이 돌아오면 무슨 말로, 어떻게 위로해야 한단 말인가. 다시 한숨이 나왔다. 하지만 감정에 빠져 있을 시간은 없었다. 오후 3시 위기관리 내각의 첫 국무회의를 소집했다. 1시간30분 전 경제·외교·안보 관계장관 회의에서 논의한 조치를 공식화하기 위한 절차였다.



 “전 세계가 걱정과 우려를 갖고 우리를 지켜보고 있습니다. 저를 비롯해 국무위원 모두 일체의 동요 없이 시급히 처리돼야 할 국정 현안을 추진해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서둘러 정리한 최우선 국정 현안 10가지를 차례로 말했다. 국정이 정상적으로 돌아가고 있다는 메시지를 대외에 알리기 위해서였다.



 “먼저 남북관계의 평화적 발전, 한·미 동맹·6자회담의 성공적 추진을 포함해 대북 정책과 대미 정책, 외교 정책의 일관성을 차질 없이 유지해야 합니다. 둘째로 군은 이번 사태에 흔들림 없이 맡은 바 임무에 충실함으로써 국가 안보에 추호의 틈이 발생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셋째로 ….”



  말을 마쳤다. 국무위원들의 토론이 이어졌다. 그런데 토론의 흐름과 맞지 않는 돌출 발언이 나왔다.



 “권한대행은 대통령의 권한을 소극적으로 대행하는 것이지 적극적인 대행은 할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었다. 나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강 장관은 며칠 후 또 “가능하다면 (17대 국회에서) 탄핵 소추를 취하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적절한 방법”이라고 발언했다. 야당의 반발과 선거 중립 시비를 불러일으켰다. 나는 3월 17일 열린 국무회의에서 “ 민감한 시기에 민감한 정치 사안에 대해 발언할 때는 신중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말했다. 강 장관을 겨냥한 경고였다. 사실 강 장관이 한 번만 더 그런 언행을 한다면 법무장관직에서 물러나게 할 생각이었다.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국무회의를 끝내고 청와대로 이동했다. 오후 4시30분 국무위원 간담회가 열렸다. 20여 분이 지나 비서진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통령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노 대통령은 담담했다. 그의 머릿속에서 어떤 생각이 휘몰아치고 있는지 짐작할 수 없었다.



 “법적인 판단과 국민의 판단이 남아 있어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결과를 겸허히 기다리고 정책과 국정의 흐름을 놓치지 않도록 학습에 전념하겠습니다.”



 노 대통령은 말을 마치고 청와대 본관 현관으로 걸어나갔다. 나와 같이였다.



 “자주 보고 자료를 올리겠습니다.”



 “….”



 노 대통령은 말이 없었다. 그는 나와 악수를 나누고 청와대 현관 앞에 대기하고 있던 차 에 올라탔다. 차 문은 내가 닫았다. 경호원이 닫는 게 관례였지만 그때만큼은 내 몫 같았다. 떠나는 차 뒤를 지켜봤다. 깊이를 알 수 없는 무거운 감정이 밀려왔다. ‘아, 이제 내가 대한민국을 관리해야 하는구나’. 1962년 공직 생활을 시작했다. 10·26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5·17 비상계엄령 전국 확대, 그리고 두 번의 국무총리. 많은 일을 겪었다. 긴장을 먹고사는 삶이었다. 하지만 지금까지 한 번도 느껴보지 못한 무거운 마음이었다.



 청와대 현관에 함께 서 있던 김우식 대통령 비서실장이 정적을 깼다.



 “앞으로 주 1회 청와대에 오셔서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해 주셔야겠습니다.”



 “….”



 난 대답을 하지 않았다.



정리=조현숙 기자



◆ 역사 속 지식



대통령 권한대행의 권한




노무현 대통령 탄핵 소추 사태는 헌정 사상 초유의 일이었다. 대통령을 대신한 권한대행이 어느 범위까지 업무를 할 수 있는지에 대한 규정은 없었다. ‘대통령이 궐위되거나 사고로 인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 국무총리, 법률이 정한 국무위원의 순서로 그 권한을 대행한다’는 헌법 제71조 문구뿐이었다. 사태 직후 학계와 정부 안팎에서 토론이 이어졌고 개략적인 범위가 제시됐다. ▶갑작스러운 국가비상사태에 대한 대처 ▶시급한 외교적 사항의 결정 등 대통령에게 부여된 모든 권한을 행사할 수 있다. 하지만 국민에 의해 선출되지 않아 민주적 정당성이 약하다. 헌법재판소 탄핵 심판도 단기간에 이뤄진다. 대통령의 통상 직무범위 내에서만 권한을 행사하는 게 옳다는 결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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