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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김정은 지도자’는 왜 국제사회에 역행하는가

중앙일보 2013.02.13 00:28 종합 32면 지면보기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안희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1. 1985년 8월 27일 평양 남북적십자회담 때의 일이다. 북측이 ‘학생 무용체조’를 보여주겠다고 해 남측 대표단이 행사장인 모란봉경기장에 입장했다. 그러나 눈앞에 펼쳐진 광경은 인민군 복장을 한 수천 명의 학생들의 총검술 경연이었다. 남측이 ‘합의위반’이라고 항의했으나, 북측은 “학생들의 성의를 무시하고 퇴장한 데 대해 사과하라”고 적반하장으로 나왔다.



 #2. 1990년 10월 18일 자정 무렵, 평양 백화원초대소 내 남측대표단 숙소. 당시 강영훈 총리를 비롯한 남북 고위급회담 남측 대표단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북측이 사전 합의를 깨고 남측 대표단 중 이산가족인 강 총리 등 3명의 북측 가족들을 옆방에 데려다 놨기 때문이다. 만약 우리 대표단이 가족을 만나면 “수많은 이산가족 중에 대표단만 만나는 혜택을 입었다”는 반발이 남측 내부에서 나올 것을 겨냥한 것이다. 만나지 않으면 “남측은 말로만 인도주의 운운하지 숙소까지 찾아간 가족도 만나지 않았다”고 역선전을 하겠다는 심사였다. 결국 남측 대표단은 ‘보안을 지키되 만나라’는 서울의 지시에 따랐으나, 북한은 이마저도 며칠 뒤 한국에 온 북측 인사를 통해 남측 언론에 슬쩍 흘려 혼란을 유도했다.



 이런 사례는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것은 북한이라는 체제의 본질이 ‘빨치산’이라는 점이다. 위장, 성동격서(聲東擊西 ), 억지, 담담타타(談談打打) 등…. 북한은 1967년 김일성 유일체제가 성립되면서 국가 운영 방식이 국제사회의 질서와는 역행해 왔다. 아니 그렇게 해야만 독재체제, 수령유일체제가 존속할 수 있었을지 모른다. 정상적인 국가 운영 방식으로는 3대 세습 체제를 유지할 수 없고, 상대방과 경쟁이 되지 않기 때문에 이런 변칙과 술수로 대처하는 데 이골이 난 것이다.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분단 이후 북한이 구사해온 ‘빨치산 수법’ 중 백미(白眉)가 아닐 수 없다. 20여 년에 걸쳐 한·미를 비롯한 국제사회를 완벽하게 속였으니 말이다. 생존 시 김일성 주석은 ‘핵무기를 개발할 의지도 능력도 없다’고 되뇌었다. 그의 아들 김정일 위원장도 입만 열면 “한반도 비핵화는 주석님의 유훈”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다. 국제사회를 향해 ‘핵개발은 협상용’이니 평화협정 체결과 북·미 수교를 하자고 재촉해왔다. 북한이 가끔 핵 동결에 관한 합의에 응하니 국제사회도 ‘계속 협상하면 타결 보겠지’라고 방심했다. 북한은 이 틈을 놓치지 않고 계속 핵개발 실력을 향상해오다가 지난해 4월 핵 보유를 헌법에 명시하고, 12월 중순엔 장거리 미사일을 발사하고, 어제 3차 핵실험을 강행했다. 빨치산 식의 전격전인 것이다.



 미국과 중국이라는 주요 2개국(G2)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김정은이 핵실험 스위치를 누른 배경은 자명하다. 무엇보다 국제사회가 처음에는 반발하다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면 흐지부지해질 것이라는 그동안의 경험칙이다. 6개월 정도 지나면 미국이나 중국이 대화를 하자고 나올 것이라는 계산도 했을 것이다. 장거리 미사일과 핵실험을 통해 김정은에게 지도자로서의 확고한 카리스마를 부여하겠다는 국내통치상의 효과도 노렸을 법하다. 한·미·중의 정권이 교체되는 ‘어수선한 시기’에 강행해 버리는 것이 효과를 더 높일 수 있다는 생각도 했을 것이다.



 북한의 이런 계산이나 예측 중 일부는 단기적으론 맞을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이 미처 간파하지 못한, 그들의 좁은 눈으로는 간파할 수 없는 역사의 교훈이 있다. 저명한 역사학자인 폴 케네디 교수가 일찍이 주장한 ‘Over-stretching(지나친 확장)’이라는 혜안이다. 과도한 군사비 지출은 경제에 부담을 줘 결국 국가 쇠퇴를 부른다는 그의 주장은 인류 역사의 흥망사를 통해 통찰력을 인정받았다. 지금 김정은을 비롯한 북한 지도부는 샴페인을 터뜨렸을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착각임이 앞으로 드러날 것이다. 3차 핵실험까지 성공해 당장은 뿌듯하겠지만, 북한도 결국 케네디 교수의 이론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다. ‘핵보유국’이라고 주장하면 주장할수록 북한의 다음 카드는 소멸되고, 직면할 것은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국제사회의 단호하고 지속적인 제재일 테니까 말이다. 핵실험 강행에 따라 남측 국민들이 갖게 될 김정은 체제에 대한 불신과 이에 따른 남남 갈등의 자연 해소와 일치단결도 북한 통치자의 눈에는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아마 지금도 자신들의 핵실험에 대해 남측 내부에는 지지층이 있을 것으로 판단할지 모른다. 착각은 자유다. 하지만 이번 핵실험 강행이 소탐대실(小貪大失)의 치명적인 실수라는 것을 절실히 느낄 날이 올 것이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조성된 엄중한 안보위기를 슬기롭게 헤쳐나가려면 국민적 단합이 중요함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점에서 며칠 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과 여야 대표가 안보에 관해 보여준 통합의 리더십은 오아시스처럼 신선하고 시의적절했다. 그동안 우리 사회의 갈등의 뿌리가 대북인식에서 비롯된 점인 것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다. 북한보다 실질적으로 100배 국력이 우세한 한국이 북한이 핵실험에 성공했다고 기죽을 것 없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한·미동맹을 더욱 굳건히 하면서, 중국과의 관계도 밀접히 할 수만 있다면 오히려 호기가 왔다고도 볼 수 있다. 문제는 국민적 단결을 언제까지 지속할 수 있느냐다. 정부가 북핵 문제를 야당과 함께 풀어가겠다는 진정성을 발휘하는 것도 관건이다.



안 희 창 통일문화연구소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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