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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인사청문회는 염라대왕이다

중앙일보 2013.02.13 00:24 종합 34면 지면보기
채병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가 지난 5일 중앙일보 인터뷰에서 “청문회를 해보니 염라대왕 앞에 가면 이런 식으로 심판하나 싶었다”고 밝혔는데 그건 맞는 말이다. 우리보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정착된 미국에선 염라대왕 앞에서 망신살이 뻗친 것은 물론 인생이 망가진 사례까지 있다. 후보자 발표에 앞서 국세청·연방수사국(FBI)까지 동원해 꼼꼼하게 사전조사를 하는 미국에서도 인사청문 과정에서 낙마한 내각 후보자가 21명이나 된다.



 1989년 아버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한 존 타워 국방장관 후보자는 알코올 중독 논란이 일자 “청문회를 통과하면 장관 임기 중 와인이건 맥주건 술은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을 것이며, 이를 어길 시 물러나겠다”고 공개 선언했다. 타워는 이런 내용의 ‘금주 선언문’에 자신의 주치의와 새뮤얼 스키너 교통부장관을 증인으로 기재했다. 그럼에도 상원 인사청문회는 타워 지명을 찬성 47표 대 반대 53표로 부결시켰다. 그는 “의회는 수류탄을 던지고 기관총을 쏘는 곳”이라고 비꼬았지만 뉴욕타임스는 91년 그의 부고 기사에서 “타워는 사실상 굴욕 속에 워싱턴을 떠났다”고 기술했다.



 2004년 국토안보부장관으로 지명됐던 버나드 케릭은 9·11 테러 극복의 영웅에서 철창 신세로 전락했다. 뉴저지의 빈민가에서 윤락녀의 아들로 태어났던 그는 고등학교도 중퇴했던 밑바닥 인생의 전형이었다. 그럼에도 순경에서 출발해 뉴욕 경찰국장에 오르며 9·11 테러 당시 복구 활동을 진두지휘해 입지전적 인물로 부상했다. 그런데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불법 이민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게 드러나며 나락으로 떨어졌다. 자진사퇴했지만 그를 놓고 탈세, 횡령, 백악관 허위정보 제출 등 각종 의혹이 줄줄이 제기됐고 결국 기소돼 2010년 4년형을 선고받았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그의 수감번호는 ‘84888-054’다. 의회의 실력자였던 톰 대슐 보건복지부장관 지명자는 탈세 의혹으로 자진사퇴했고, 린다 차베스 노동장관 지명자, 조 베어드 법무장관 지명자는 불법 체류자를 고용한 ‘보모 스캔들’로 낙마했다. 허셸 거버 보훈장관 지명자는 성추문 의혹이 불거지며 스스로 물러났다.



 인사청문회가 후보자의 자질을 따지는 자리라면 불가피하게 당사자의 도덕성과 신상을 검증하지 않을 수 없다. 불필요한 정치 공방으로 당사자들을 흠집내려는 의도는 막아야 하지만 그렇다고 도덕성 검증이 배제된 청문회는 초장부터 구멍 뚫린 인사 검증을 야기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동흡 후보자의 ‘염라대왕 청문회’는 고위직을 생각하는 이들에겐 되새길 만한 표현이다. 대한민국의 고위직이 되려면 염라대왕 같은 청문회를 거쳐야 한다는 의식이 일반화돼야 자기 관리가 가능해진다. 멀리 미국까지 갈 필요도 없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라는 말처럼 치국에 앞서 수신과 제가부터 하는 게 인사청문회에 대비하는 공직 사회와 정치권의 자세다.



채 병 건 정치국제부문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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