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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려놓기 리더십’ … 선수들 기 살려 우승 노린다

중앙선데이 2013.02.10 00:01
해외 언론들은 한국 축구대표팀 감독을 맡는 걸 ‘독이 든 성배’를 드는 것에 비유했다. 많은 기대와 성원을 받는 자리이면서도 성적이 나쁘면 비참하게 쫓겨나는 경우가 많아서다. 야구도 크게 다르지 않다. 월드컵만큼 국제대회가 활성화되진 않았지만 야구도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덕분에 국가대항전이 자주 열리게 됐다. 2006년 첫 대회를 치른 WBC는 다음달 세 번째 대회를 맞는다.


WBC 시험대 오른 류중일 감독

제3회 WBC 사령탑은 류중일(50) 삼성 감독이다. 수퍼스타 출신 선동열(50) KIA 감독도, ‘야구의 신’ 김성근(71) 고양 원더스 감독도 국가대표팀을 지휘한 적이 없다. 프로 감독으로서 만 2년이 겨우 지난 류 감독에게 WBC는 영광보다 부담이 더 크다.



지난해 11월 정식 선임이 되기 전까지 그는 대표팀 감독이 되는 걸 불편해했다. 독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서다. 그러나 ‘대회 전년도 우승팀 감독이 대표팀을 맡는다’는 각 감독들의 합의에 따라 류 감독이 대표팀을 맡았다. 특급 스타 출신이 아니고, 감독 경험도 길지 않은 그에겐 모험에 가까운 도전이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에 출전한 한국 야구대표팀이 광저우 아오티 구장에서 훈련하는 모습. 맨 오른쪽이 올해 WBC 한국 사령탑을 맡은 류중일 감독(당시 대표팀 코치)이다. [사진=이영목 기자]


엔트리 7명이나 빠진 악조건



WBC 대표팀은 11일 서울에서 소집돼 대표팀 훈련지이자 1차 예선(3월 2~5일)이 벌어지는 대만으로 떠난다. 대표팀 소집에 앞서 류 감독은 “지난 두 차례 WBC(2006년 4강, 2009년 준우승)에서 우리가 너무 잘 싸웠다. 팀워크를 잘 다진다면 우승을 노려볼 수도 있다”고 말했다. 자신감을 표현했다기보다는 주술을 거는 것 같았다. 이번 대표팀은 이전보다 많이 약화됐다. 1, 2회 대회 감독이었던 김인식(66) 한국야구위원회(KBO) 기술위원장은 “투수력을 보면 걱정스러운 수준이다. 류 감독이 안타깝다”고 했다.



이전 대회에서 김인식 감독은 분위기를 주도했다. 2006년엔 박찬호·김병현 등 메이저리거를 불러들였고, 선동열·김재박·조범현 등 각 팀 감독들을 코치로 선임했다. 2009년 김인식 감독의 목소리는 더 커졌다. 대표팀에 오기 꺼리는 감독·선수들을 향해 “국가가 있어야 야구도 있다”고 일갈했다. 느슨한 분위기가 단단하게 조여졌고 대표팀은 일본과 다섯 차례나 명승부를 벌이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김인식 감독은 ‘국민 감독’이라는 칭호를 얻었다.



이번 대회에선 엔트리에서 제외된 선수들이 뉴스메이커였다. 메이저리그 소속팀에서 류현진(LA 다저스)과 추신수(신시내티)의 WBC 출전을 막았고, 봉중근(LG)·김광현(SK)·김진우(KIA) 등 에이스급 투수들이 부상을 이유로 줄줄이 떠났다. 감독이 강한 스타일이었다면 엔트리에 올랐던 선수들이 7명이나 빠지진 않았을 것이다. 다른 팀 감독들은 대부분 류 감독보다 선배다. 이 때문에 류 감독은 “할 수 없지 뭐. 다른 선수들도 야구 잘하잖아”라며 스스로 위안했다.



이번 대표팀은 어느덧 37세 베테랑이 된 이승엽(삼성)이 주도하고 있다. 김태균(한화)·이대호(일본 오릭스)를 이끌 타선의 맏형이자 팀 전체의 리더다. 이승엽을 팀 중심에 놓는 게 류 감독의 첫 번째 전략일 것이다. 이승엽의 경북고 선배인 류 감독은 삼성 코치 시절부터 후배를 잘 챙겼다. 이승엽이 일본에서 활약하던 시절에도 때마다 식사를 같이했다. 이승엽이 예상보다 빠른 지난해 말 국내에 복귀한 것도 류 감독의 힘이 작용했다.



삼성에서 그랬듯 류 감독은 이승엽에게 팀 리더 역할을 맡길 것이다. 아울러 39세 주장 진갑용에게도 많은 권한을 줄 것이다. 선수단 분위기는 선수들이, 또 분야별 훈련과 전략 수립은 각 코치들에게 맡길 예정이다. 지나치게 각론으로 들어가지 않는 것,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를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류중일 리더십’의 요체다.



류 감독은 리더 이전에 뛰어난 참모였다. 그 전엔 김재박 이후 1990년대를 대표했던 유격수였다. 빠르고 영민한 플레이로 1999년까지 삼성의 내야를 지킨 뒤 은퇴했다. 삼성엔 여러 스타가 있었지만 작전과 수비·주루에 두루 능한 인재는 류중일뿐이었다. 덕분에 그는 은퇴 후 12년 동안 삼성 코치로 활약할 수 있었다. 류중일은 선수들과 형제처럼 격의 없이 소통했고, 각자의 능력에 맞게 지도할 줄 알았다.



코치 시절 별명이 ‘질문왕’



김인식 전 WBC 대표팀 감독
류 감독은 “감히 내가 프로팀 감독이 될 거라고 생각했겠나. 그저 여러 감독님을 모시며 알게 모르게 많이 배웠다. 그게 내게는 최고의 행운이었다”고 말했다. 그는 선수 시절 백인천 감독과 김성근 2군 감독을 겪었고, 김응용 감독(2001~2004년)과 선동열 감독(2005~2010년) 밑에서 코치 생활을 했다.



코치 선배였던 조범현 전 KIA 감독은 “류중일은 정말 질문을 많이 했다. 코치가 되자마자 나뿐만 아니라 선배들을 따라다니며 계속 물었다. 별명이 ‘질문왕’이었다. 좋은 지도자가 될 것으로 믿었다”고 회상했다.



김인식 감독은 1회 WBC에서 ‘감독급 코치진’을 구성하며 류중일 삼성 코치를 불렀다. 2회 대회에서도 그는 또 대표팀 유니폼을 입었다. 2010년 광저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이끌었던 조범현 감독도 류중일을 대표팀 코치로 썼다. 대표팀이 국제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냈던 이유는 촘촘한 수비와 치밀한 작전 덕분이었다. ‘참모’ 류중일은 자기 분야를 확실히 장악했다.



2010년 12월 선 감독이 갑작스럽게 삼성 지휘봉을 놓자 후임으로 류중일이 낙점됐다. 선수와 코치로 무려 25년 동안 삼성에 있었지만 그가 삼성 감독이 될 거라고 생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류 감독은 큰 변화를 주지 않았다. 선 감독이 만든 마운드를 그대로 활용했다. 대신 비중이 약했던 공격력을 강화하기 위해 애썼다.



삼성은 팀 전체의 균형을 되찾더니 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 이승엽이 합류한 2012년 초반 삼성은 잠시 흔들리긴 했지만 여름 이후 독주하며 또다시 챔피언에 올랐다. 덕분에 류 감독은 꿈도 꾸지 못했던 대표팀 감독까지 됐다.



그는 강력한 리더라고 볼 수 없다. 대신 각 분야, 각 선수의 장점을 잘 이끌어내고 약점이나 문제점이 생기면 해당 참모와 상의해 변화를 모색한다. 리더로서 색깔이 뚜렷하지 않아 보이기도 하지만 또 그게 류 감독의 힘이다. 그는 “여러 감독님으로부터 배울 기회가 있었다. 위기에 처했을 때 ‘○○○ 감독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하고 생각하면 몇 가지 답이 나온다”고 말했다.



전형적인 ‘참모형 인재’였던 류 감독은 리더로서도 뛰어난 성과를 내고 있다. 끊임없이 소통하고 자신을 낮추는 참모 시절의 습관은 리더로서 훌륭한 자산이 됐다. 이제 막 감독으로서 자리를 잡은 그에게 WBC 감독은 무게감이 너무 크다. 여러 악재 속에서 4강에 오른다면 류 감독은 그런 대로 합격점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4강에 오르지 못한다면 감독으로서 탄탄대로를 달려온 그에게 커다란 시련일 것이다. WBC는 류 감독에게 기회이자 위기다. 



김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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