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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부의사가 쓰는 性칼럼] 부부 사이가 최우선

온라인 중앙일보 2013.02.10 00:01
“정말 이해할 수 없어요. 내가 뭘 그리 잘못했다고 이혼하자는 건지….”


"잠자리서 이기적" 40대男, 아내의 이혼요구에…

결혼 8년차 40대 남성 H씨는 울분에 차 아내를 성토했다.



“열심히 번 돈 다 갖다 주는데, 다른 남편들과 비교하고, 술집 다니는 것도 안 되고, 피곤에 절어 애들이랑 못 놀아주는 것도 꼴 보기 싫대요. 게다가 잠자리에서도 이기적이라나요?”



이혼만은 안 된다며 찾아온 H씨. 세상이 변했는데도 H씨처럼 부부 사이가 최우선이라는 걸 부정하다가 위기에 빠진 남편들이 부쩍 늘었다.



[일러스트=강일구]
2003년 봄, 필자 부부가 성 문제와 부부 갈등의 연결고리를 공부하러 미국으로 떠날 때 선배 의사는 “우리나라 부부들이 함께 병원 와서 상담하고 치료 받겠어? 어려울 텐데…”라며 걱정했다. 이 같은 우려를 뒤로하고 ‘용감하게’ 미국행을 택한 우리는 킨제이 성연구소를 거쳐 하버드대 부부치료센터에서 열심히 수련받았다.



선배의 걱정처럼 가부장적인 한국에서 성치료와 부부치료의 병합이 가능할까 고민하던 필자에게 하버드 부부치료센터장인 78세의 노교수 헨리 그루네바움 박사가 정신이 번쩍 드는 조언을 건넸다.



“내가 처음 치료를 시작한 40여 년 전엔 미국도 그랬어. 남편들은 치료를 거부하고, 아내를 부추긴다고 항의도 했지. 미국 부부의 절반이 이혼하는 지금, 위기의 부부 상당수가 치료자의 도움을 받고 있어. 한국도 미래엔 변할 거야. 당신들이 돌아가서 사명감을 갖고 한국의 부부들을 도와 줘야지.”



2005년, 필자가 귀국할 당시만 해도 부부의 갈등과 성 문제는 별로 주목을 받지 못했다. 그런데 2013년 현재, 한국에서 부부 문제는 사회적 이슈의 중심에 있다. 이혼율의 증가와 요즘 TV채널을 장악하다시피 한 부부 문제에 대한 프로들을 보면 격세지감을 느낀다. 아쉽게도 제대로 된 해결책 제시보다 출연진의 사적 경험과 흥미 위주의 피상적 얘기에 그치지만, 부부 문제가 중요 이슈가 된 것 자체는 대단한 변화다.



이런 변화에 필자의 꾸준한 활동이 주춧돌이 되었다는 평가는 기쁘다. 필자가 강조해 왔던 친밀감, 섹스리스, 각방의 위험, 스킨십, 옥시토신, 부부의 성이 중요한 축이란 표현과 의미가 이제 상식처럼 인구에 회자되는 것을 보면 뿌듯한 생각도 든다. 부부가 한 침대를 쓰기 시작한 건 도시화로 주거공간이 좁아져서라거나, 부부 중심의 핵가족제도는 자본주의의 산물일 뿐이라는 반박 의견도 있다.



조선시대 양반가정에서 부부는 안방과 사랑방으로 각방을 썼다. 그 시절 젊은 첩을 들이거나 외도를 해도, 아내와 섹스리스 상태라도, 이혼위기에 처하거나 사회적으로 비난받지 않았다. 그러나 어쩔 것인가. 그 시절은 가고, 산업화 사회의 현대인은 부부 중심의 핵가족으로 살아야 한다.



이혼하지 않고 아내·자녀들과 행복하고 건강하게 살려면 서로 요구를 수용하고 타협하는 부부관계와 성생활의 유지가 중요하다. 수많은 연구에서 행복한 부부관계가 심신의 건강과 행복을 결정짓는 주 요소라는 사실도 입증됐다. 관계개선의 노력이 울며 겨자 먹기가 아니라 나 자신의 건강과 행복을 위해서도 꼭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위안으로 삼길 바란다. 이번 명절에도 또 힘든 부부가 있겠지만, 그래도 부부 사이는 어떤 관계보다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이 옳다.



강동우·백혜경 성의학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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