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체크 무늬? 전통 창호 무늬로 관객들 매료

중앙선데이 2013.02.10 00:01
세계 4대 패션 컬렉션 중 하나인 뉴욕 패션위크가 개막한 7일(현지시간) 오후 링컨센터 ‘더 스테이지(The Stage)’. 한국 디자이너들이 합동 패션쇼를 꾸미는 ‘컨셉코리아’ 현장은 뉴욕 패션계 인사와 셀레브리티는 물론 취재에 나선 현지 언론 등 700여 명이 몰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뉴욕 패션가 달군 한국 패션 5인방

‘컨셉코리아’는 문화체육관광부·한국콘텐츠진흥원·대구광역시·한국패션산업연구원이 함께 주관하는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 한국의 패션 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의 해외 진출을 지원하는 행사다. 2009년 가을 첫발을 뗀 뒤 이번이 일곱 번째다.



7일(현지시간) 뉴욕 링컨센터에서 열린 ‘컨셉 코리아 2013 FW’. 국내 디자이너 5명의 합동 패션쇼는 해외 언론과 패션계 인사들의 호평을 받았다. 왼쪽부터 최복호·계한희·김홍범·이상봉·손정완의 의상들. [사진=한국콘텐츠진흥원]


이날 행사에는 계한희·김홍범·손정완·이상봉·최복호(가나다순) 등 한국을 대표하는 디자이너 5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한국의 문화가 흐르다’(流, Rhythm of Korea)라는 주제로 옴니버스 형식의 런웨이를 꾸몄다.



특히 이번 패션쇼에서는 퓨전 국악과 어우러진 무대가 마련됐다. 개막과 함께 울려 퍼진 경쾌한 북소리에 맞춰 5명의 한국 디자이너가 작품을 만드는 과정이 오버랩됐다. 장면이 바뀌면서 퓨전 국악 리듬에 맞춰 모델들이 캣워크를 시작했다.



첫 무대는 검정과 흰색 바탕 위에 주술적인 문양으로 시선을 잡아 끈 최복호의 작품. 그의 작품은 늘 화려한 색상과 과감한 표현으로 보는 이의 시선을 붙들었다. 지나치게 무거워지는 분위기를 빨간색 포인트가 살려줬다.



이어진 김홍범의 무대는 튀지 않는 무채색이 주를 이뤘다. 세련되고 도시적인 디자인으로 심플하지만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품을 선보였다. 자칫 무료해질 수 있는 실루엣에 가죽과 모피로 포인트를 줘 신비로운 느낌을 살려냈다.



바이올렛 색상과 여성스러운 실루엣은 손정완 패션의 ‘공식’이다. 올해는 추상화가 칸딘스키의 구성 시리즈와 캐서린(예카테리나) 궁전에서 얻은 영감을 세련되게 표현했다. 음악을 작곡하듯 그림을 그렸던 칸딘스키의 느낌을 패션 속에 녹여냈다.



국민 디자이너 이상봉은 한국 전통 창호를 패션 디자인에 접목했다. 서양의 체크 무늬와는 다른 동양적인 선에 관객들이 매료됐다. 작곡가이자 가수 니온 히치는 “지금 내가 입고 있는 옷도 이상봉 선생 작품”이라며 “오늘 작품은 무늬와 색상이 독특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마지막 무대를 장식한 계한희는 20대 디자이너답게 실험정신이 돋보였다. 버려지는 포장용지를 재해석한 이미지, 노숙자 패션에서 볼 수 있는 통 큰 실루엣, 얼핏 보면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옷을 여려 겹 겹친 부조화를 통해 20~30대 젊은 세대의 불안한 심리를 포착해 냈다.



서울(Seoul)이란 글자를 그래피티화한 것이나 서울역과 해골을 이용한 엠블럼에서도 젊은 감각이 엿보였다. 계씨는 “청년실업이란 주제는 주변 친구들한테서 영감을 얻은 것인데 지금 뉴욕에서도 큰 사회적 문제로 부각되고 있다”며 “이런 무거운 주제를 재미있고 밝게 풀어보고 싶었다”고 작품을 설명했다.



주최 측과 디자이너들이 행사 뒤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왼쪽부터 계한희·이상봉·홍상표(한국콘텐츠진흥원장)·손정완·김홍범·최복호 디자이너.


이에 대해 뉴욕 패션계 마당발로 통하는 말릭사 시크는 “청년실업 문제를 패션 디자인의 주제로 삼은 건 도발적이면서도 재미있다”며 “그의 옷을 보면 돈이 없어도 얼마든지 옷을 잘 입을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고 말했다. 그는 “스트리트패션을 하이패션으로 승화한 솜씨가 20대라곤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세련됐다”며 “요즘 뉴욕에선 옷을 몸에 꼭 맞게 입는 게 유행인데 거꾸로 헐렁한 박스형 디자인을 과감하게 도입한 게 신선했다”고 덧붙였다.



이날 패션쇼엔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와 드라마 ‘섹스 앤 더 시티’에서 의상 스타일링을 맡았던 패트리샤 필드와 뉴욕 패션위크 창시자 펀 맬리스, 미국 언론 왕 윌리엄 허스트의 증손녀이자 패션모델인 리디아 허스트도 다녀갔다. 허스트는 “한국 패션이 이처럼 다이내믹한 줄은 몰랐다”며 “톡톡 튀면서도 세련된 작품에 매료됐다”고 말했다.



패트리샤 필드의 수석 스타일리스트 리오 쿠쿠는 “이번 쇼는 아주 개념적(conceptual)이었다”며 “늘 새로운 것에 목말라하는 뉴요커들에게 ‘컨셉코리아’의 신선한 감각은 청량제 같다”고 평했다. 그는 “컨셉코리아가 한국 디자이너들의 뉴욕 진출에 교두보가 되고 있다”며 “한국 디자이너가 뉴욕에서 얼마든지 통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패션쇼가 진행되는 동안 무대 앞은 국내외 언론의 취재 열기로 뜨거웠다. CNN과 CNBC 방송은 사전 인터뷰에 이어 현장 취재까지 했고 월스트리트저널과 로이터통신도 이틀에 걸쳐 관계자를 인터뷰했다. 패션잡지 보그와 스타일 등의 취재진도 현장에서 쇼를 지켜봤다.



공식행사가 끝난 뒤에는 행사장 인근의 스탠더드 호텔에서 ‘애프터파티’가 열려 그 열기를 이어갔다. 디자이너 이상봉은 “패션쇼도 패션쇼지만 해외 유명 언론과 바이어, 패션업계 종사자들이 한데 모인 이번 파티를 통해 디자이너와 뉴욕 현지 관계자들의 자연스러운 만남이 이루어졌다”며 “뉴욕 현지 네트워킹 강화는 물론 현지 정착에 도움이 될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고 밝혔다.



행사를 기획한 한영아 총괄 감독은 “요즘 뉴욕 패션가 어디를 가도 싸이의 강남스타일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며 “여기다 자동차·휴대전화 등 한국 상품도 고급품 대열에 끼면서 한국 패션과 문화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패션과 문화는 한번 익숙해지면 한국과 한국 기업에 대한 관심을 증폭시키는 폭발력이 있다”며 “한류 바람이 불 때 한국 패션을 더 알리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 같은 관심은 실제 구매로도 이어지고 있다. 이번 패션쇼에 참가한 김홍범씨는 “과거엔 우리가 뉴욕 바이어들을 찾아 다니며 만나 달라고 사정해야 했지만 ‘컨셉코리아’ 참가 이후엔 먼저 연락해 오는 바이어가 생기기 시작했다”며 “벌써 약속 스케줄이 줄줄이 잡혀 눈코 뜰 새 없다”고 말했다.



이번에 참가한 5명의 디자이너는 지난해 봄 시즌 패션쇼 후 각기 현지 세일즈 쇼룸에 입점했다. 계씨는 지난봄 시즌 참가 후 뉴욕 디자이너의 등용문이자 대표적인 편집매장인 ‘오프닝세리머니’에 입점하기도 했다. 오프닝세리머니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무도회 드레스를 두 번씩이나 만들어 화제가 된 제이슨 우 등이 거쳐간 곳이다.



뉴욕=정경민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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