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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한기 엿 만들어 30억 버는 ‘박사골’

중앙일보 2013.02.06 00:55 종합 20면 지면보기
전북 임실군 삼계면의 할머니들은 추운 겨울에 엿 만들기 부업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린다. 3시간 동안 출입문·창문 등을 밀폐한 뜨거운 방에서 갱엿을 잡아당겨 엿가락을 늘려 뽑고(왼쪽), 이를 문구멍을 통해 찬바람 부는 거실로 넘겨 콩고물을 묻힌 뒤 10㎝ 크기로 잘라 시중에 낸다. 전통방식을 지켜 품은 많이 들지만 전국 각지에서 주문이 온다. [사진 임실군]


4일 오후 8시 전북 임실군 삼계면 죽계리 대판마을의 한 농가. 창문을 활짝 열어젖혀 찬바람이 쌩쌩 부는 거실에서 60~70대의 할머니 둘이 엿을 당겨 손바닥 크기로 자르고 있었다. 엿은 옆방 방문에 뚫린 5~6㎝ 정도의 구멍을 통해 실타래처럼 술술 뽑혀 나왔다. 할머니들은 모자에 털 목도리까지 둘렀지만 “추워 손이 곱는다”면서도 분주하게 몸을 움직였다.

설 대목 맞은 임실 삼계면



 하지만 바로 옆방은 사우나 온돌방 같았다. 모든 문을 밀폐한 채 숨이 막힐 듯 뜨거운 구들장 위에서 반팔 차림의 할머니 여섯 명이 갱엿을 당기고 있었다. 두 명씩 엿을 잡고 1~2m씩 80여 회를 늘리다 보면 이마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혔다. 이강순(79)씨는 “3시간 동안은 문을 열 수도 화장실을 갈 수도 없는 엿방 ‘감옥’이랑깨. 힘은 억세게 들지만 돈 버는 재미에 하제. 서방님들 흉 보고 세상 돌아가는 얘기들 허다 보면 긴 겨울밤이 금방 가불제”라고 말했다.



 ‘박사고을’로 알려진 삼계면은 농한기인 겨울이 가장 바쁘다. 가장 추운 12월부터 다음해 2월까지 3개월간 전통방식으로 엿을 만들어 판매하기 때문이다. 특히 설을 앞둔 요즈음은 전국에서 주문이 쏟아져 부지깽이도 덤빌 만큼 바쁘다.



 삼계 주민들이 엿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은 20여 년 전부터다. 논이 적은 데다 뚜렷한 소득원이 없어 궁여지책으로 조상대대로 전해 내려온 엿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것이다. 현재는 학정·세심·죽계·후천·홍곡·삼계 등 6개 마을에서 200여 주민이 참여한다. 한겨울 반짝 땀 흘려 가구당 1000만~3000만원 총 30여억원의 매출을 올린다.



 삼계엿은 전통방식을 고수한다. 기계를 일절 사용하지 않고 밥·보리를 재료로 해 장작불로 가마솥을 달이고 손으로 빚어낸다. 이렇게 만든 엿은 바람 구멍이 많이 나 바삭바삭하면서도 고소하다. 입에 전혀 달라붙지 않아 남녀노소 누구나 즐긴다.



 엿 만들기는 꼬박 3일씩 걸릴 정도로 힘들다. 먼저 고두밥에 엿기름을 섞은 뒤 하룻밤을 재워 발효시킨다. 이렇게 만들어진 식혜를 장작불로 달인다. 이것이 조청이 되면 이를 다시 10시간 이상 졸여 갱엿으로 만든다. 마지막으로 갱엿을 늘여 엿가락으로 만들어낸다. 특히 갱엿을 엿가락으로 뽑아 내는 작업은 밤 7시 이후에만 한다. 찬바람이 씽씽 불 정도로 추워야 엿이 잘 굳고, 구멍이 숭숭 뚫리기 때문이다.



 이처럼 품이 많이 들고 인내를 요구하다 보니 젊은 사람들은 없고 60~80대 할머니들이 대부분이다. 주민들은 집집마다 돌아가면서 품앗이 형태로 일을 한다. 이처럼 정성을 기울여 만든 삼계 엿은 “옛날 할머니·어머니가 만들어 주던 옛맛 그대로다” “고향의 향수가 느껴진다”는 찬사를 받는다.



일부에서는 “박사고을 엿이라 아이들 머리에 좋은 것 아니야”는 얘기도 한다. 삼계 지역에서는 지금까지 박사가 160여 명이나 탄생해 면 단위로는 전국 최고의 수재 고향으로 꼽힌다.



 이복순(56)씨는“지난해 엿을 만들어 올린 수입으로 이웃 주민들끼리 중국 관광까지 다녀왔다”며 “힘을 덜 들이면서도 능률적으로 일할 수 있도록 마을 공동작업장을 설치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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