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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징·홍콩 석학이 보는 중국 민주화와 한·중 관계

중앙일보 2013.02.04 08:55
한국과 중국은 정권 사이클이 일치한다. 2와 7로 끝나는 해마다 대통령 선거와 중국공산당 전국대표대회를 통해 지도자를 선출하고 다음 해 2월, 3월에 각각 새 정권을 출범시킨다.



정권 초 외교관계의 첫 단추를 잘 채우려면 중국의 속내를 정확하게 파악하는 게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한 달 남짓 앞두고 한국을 방문한 베이징과 홍콩의 대표적 석학 먼훙화(門洪華) 중앙당교 교수와 리롄장(李連江) 홍콩중문대 교수에게 중국의 고민과 한·중 관계를 물었다.











중국 시위 하루 500건 넘어 이 중 40%는 농민이 주도



중국의 인간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중국의 저명한 사회학자 페이샤오퉁(費孝通·1910~2005)은 이를 동심원(同心圓)의 파문(波紋)에 비유했다. 돌 하나를 수면에 던지면 그려지는 동심원의 물결처럼 ‘나(我)’를 중심으로 인간관계가 형성된다는 것이다. ‘나’로부터 동심원의 파문이 멀어질수록 인간관계는 약해진다고 했다. 그는 이런 인간관계의 질서를 ‘차등적 질서구조(差序格局)’라 이름 지었다. 리롄장(李連江) 홍콩중문대 교수는 이 ‘차등적 질서(差序)’의 개념을 차용해 중국 정부에 대한 중국 농민의 신뢰를 연구한 학자로 유명하다. 그에 따르면 정부에 대한 신뢰는 행정등급이나 서열이 높아질수록 커진다. 그는 빈부격차가 확대되는 가운데 중국의 3농(農)문제, 즉 농업·농촌·농민 문제 해결을 고민해 왔다. 성균중국연구소 초청으로 한국을 찾은 그를 지난 달 28일 만났다. 다음은 일문일답 요지.



-페이샤오퉁은 중국을 정확하게 인식하려면 인구의 80%를 점하는 농민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그건 1940년대 이야기다. 현재 비중은 50% 미만이다. 이제 중국 사회를 알려면 중국 도시를 연구해야 한다. 지금 문제되는 건 도시 빈곤 인구다.”



-중국의 역대 지도자들은 모두 농촌문제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오는 3월 출범할 새 정부는 어떤가.

“차기 총리로 유력한 리커창(李克强) 정치국 상무위원은 농촌의 빈곤타파 해결책으로 도시화를 생각하고 있다. 그 방법은 농촌 주변에 아파트를 지어 농민을 이주시키고, 원래 농민이 살던 곳을 개발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중앙의 정책이 지방으로 내려가 시행되는 과정에서 곧잘 변질된다는 점이다. 도시화가 지방 정부의 농민 토지 수탈로 악용될 가능성을 조심해야 한다.”



-농촌을 비롯해 많은 곳에서 집단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도대체 얼마나 많은 시위가 벌어지는가.

“집단 시위는 보통 50명 이상이 모인 경우를 말한다. 한 해 18만 건 이상의 집단 시위가 벌어지는 것으로 추측된다. 이 수치는 광둥(廣東)성 정부의 한 내부 회의에서 ‘우리나라에선 하루 평균 500건 이상의 집단 시위가 발생하고 있다’고 한 말이 외부에 알려지면서 나오게 됐다. 1년 365일에 500을 곱한 것이다. 이 중 농민 주도의 시위는 40%를 차지한다.”



-중국 농민은 억울한 일이 있으면 베이징의 신방국(信訪局)을 찾아 탄원한다. 베이징으로 가는 이유는 무엇인가. (※2005년엔 1270만 건의 신방이 접수됐다)

“신방국을 찾아가는 걸 상방(上訪)이라 한다. 상방의 주된 이유는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에 압력을 넣으면, 지방 정부가 자신의 문제를 처리하는 데 성의를 가져줄 것이라는 믿음에서다. 남의 힘을 빌려 공격하는 게 마치 태극권(太極拳)과 같다. 중국엔 ‘중앙은 은인이고, 성(省)은 친척이며, 현(縣)은 좋은 사람이고, 향(鄕)은 악인이며, 촌(村)은 원수(中央是恩人 省里是親人 縣里是好人 鄕里是惡人 村里是仇人)’라는 말이 있다. 행정 등급이 낮아질수록 신뢰가 작아진다.”



-최근 상방인들이 몰려 있는 베이징의 상방촌(上訪村)에선 시진핑(習近平) 총서기 등 중국 지도자들의 주소와 e-메일 주소가 적힌 소책자가 불티나게 팔린다고 한다.

“원자바오(溫家寶) 총리가 국가신방국에 가서 일부 상방인을 만난 적이 있다. 원 총리로선 상방인들에게 애정을 표시한 셈이다. 그러나 좋은 방법은 아니다. 구체적인 사안 해결은 결국 지방 정부의 몫이다.”



-신방국에 접수되는 사안 중 해결되는 건 0.2%도 안 된다고 한다. 그럼에도 중앙 정부가 신방 제도를 유지하는 이유가 뭔가.

“중앙 정부가 지방 정부를 믿지 못해서다. 신방 제도의 존속엔 지방 정부를 통제하려는 중앙 정부의 의지가 담겨 있다.”



-중국도 ‘민주(民主)’를 강조한다. 그러나 서방의 민주와는 다르다고 한다. 중국이 말하는 민주는 무엇인가.

“중국의 민주는 일종의 정책 자문을 말하는 것이다. 새 정책을 시행하기에 앞서 여러 사람의 의견을 구한다. 중국에선 이것을 민주라 부른다.”



-시진핑 시대에 대한 기대가 크다.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 성립 당시엔 공산당 말고도 8개 민주당파가 권력을 나눠 가졌다. 부총리와 최고인민법원장 등을 민주당파 인사에게 맡겼다. 중국공산당의 독재는 54년 설립된 전국인민대표대회(의회 격)가 과거의 전국인민정치협상제도(통일전선 기구)를 대체하면서다. 이는 퇴보였다. 만일 시진핑이 54년 이전의 정치협상 제도를 회복한다면 이는 커다란 진보다.”



-중국 특색의 민주모델은 구축 가능할까.

“‘중국 특색’이나 ‘중국 모델’이란 말은 흔히 개혁을 거부하는 구실로 이용된다. 나라마다 특징이 있겠지만 민주나 인권·권리 같은 가치는 인류가 공유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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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롄장 1963년 허베이(河北)성 출생. 톈진(天津) 난카이(南開)대 철학 석사. 미 오하이오주립대 정치학 박사. 2006년부터 홍콩중문대학 정치학과 교수로 있으며, 중국 농민의 정치 참여와 농촌 기층(基層)에서의 민주주의 정착에 대해 연구해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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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동아시아 쥐락펴락 안 돼 중, 德政과 仁政 전파할 것



중국의 대외관계는 역사적으로 이무(夷務)에서 양무(洋務)를 거쳐 외무(外務)로 이어지는 과정이었다는 설명은 설득력이 높다. 중화제국은 하늘→황제→백성으로 이어지는 계층질서를 주변 지역과 민족에게도 적용시켰다. 중국에서 국제전략이란 개념이 발전하지 못한 이유다. 대국전략, 동아시아전략, 국제관계이론 분야에 걸쳐 130여 편의 논문을 발표한 먼훙화(門洪華·44) 중국공산당 중앙당교 교수는 중국에서 국제전략 분야의 개척자다. 지난 달 25일 성균중국연구소 주최의 해외 저명학자 초청강연회에서 ‘중국의 국제 지위에 대한 이론과 실제’란 주제로 강연을 마친 먼 교수를 만나 중국의 대외전략과 한·중 관계를 물었다. 다음은 인터뷰 요지.









-박근혜 당선인이 당선 축하 특사로 온 장즈쥔(張志軍) 중국 외교부 부부장을 통해 ‘한·중 관계 발전을 위해 5년 청사진을 만들자’는 제안을 시진핑(習近平) 총서기에게 전달했다는 보도가 나왔다. 청사진에 들어가야 할 내용은.

“한·중 간 주요 의제는 세 가지다. 첫째, 안보 문제다. 양자 간 전략대화에 안보를 포함시켜 실질적인 전면적·전략적 동반자관계를 만들어야 한다. 둘째는 한·중 자유무역협정(FTA)이다. 한·중이 어떻게 FTA 문제를 솔선해 돌파하느냐에 따라 동북아 협력 내지 동아시아 자유무역지대 형성의 모범이 될 수 있다. 셋째, 북한 문제다. 두 나라가 적극적으로 협력해 북한의 안정과 개혁·개방을 추진해야 한다.”



-중국은 동아시아 안보공동체 구상을 제안한다. 이 구상과 6자회담의 관계는. 미국의 위상은.

“동아시아 안보의 특징은 전통적인 양자 군사동맹과 다자 안보협력 관계의 병존이다. 중국의 기본 목표는 개방적인 지역안보협력을 실현하는 데 있다. 6자회담은 중국이 구상하는 동아시아 안보협력의 중요 구성 부분이다. 중국의 안보 구상에 미국을 배제시키려는 목표는 없다. 단지 미국이 동아시아를 쥐락펴락 못하도록 만들기를 희망한다. 전통적인 동맹 안보가 아닌 아세안지역포럼(ARF)과 같은 다자 구조를 원한다.”



-2010년 류밍푸(劉明福) 국방대 교수는 저서 『중국의 꿈(中國夢)』에서 경제력은 물론 군사력, 종합국력까지 미국을 넘어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국은 미국을 언제 넘어설 것으로 보나.

“20~30년 내 중국이 미국을 넘어설 가능성은 없다. 중국의 경제총량이 단기간 안에 미국을 넘어설 수는 있다. 하지만 경제질량에는 문제가 많다. 이노베이션 능력도 부족하다. 군사역량에서 중국은 단기간에 미국을 제치기 어렵다. 미국의 우세는 하드파워뿐만 아니라 소프트파워의 영향력에서 나온다. 중국이 배워야 할 점이다. 중국의 실력이 커지면서 동아시아에서의 영향력은 미국을 넘어설 수 있다. 중국은 미국을 결코 추격·경쟁·초월의 대상으로 여기지 않는다. 중국은 1980년대 일본이 경제력으로 미국을 넘어서려 하다 겪은 실패담을 기억하고 있다.”



-중국은 전 세계에 문화력(文化力·지배적 가치)을 제공할 수 있나.

“중국은 동양문화의 전범(典範)이다. 선천적으로 문화가 우세하다. 단, 지난 30여 년간 개혁·개방을 추진하면서 중국은 문화 번영과 개혁의 중요한 의미를 홀시했다. 국가 현대화는 경제·제도·문화 현대화의 결합을 뜻한다. 중국의 문화 현대화는 심각한 도전을 받고 있다. 중국은 문화 개혁을 추진해 전 세계에 동양 가치관의 정수를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중국이 진정으로 우뚝 섰느냐(?起) 여부를 판단하는 요소다. 중국은 조화·덕정(德政)·인정(仁政) 등 동양적 가치관을 세계에 전파해 전 세계가 향유하는 가치 요소가 되도록 만들 것이다.”



-한국인들의 기억에는 중국의 역대 왕조와 맺은 조공(朝貢) 관계의 기억이 깊다. 중국의 국제전략 측면에서 전통적 요인의 영향은.

“조공 시스템에는 합리적인 요소도 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를 존중하는 (맹자의) ‘큰 나라가 작은 나라를 섬기는(以大事小)’ 사상과 경제·문화교류의 중요성을 강조한 점은 유지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물론 국가의 평등을 존중하지 않았던 점은 없애야 한다. 글로벌 시대에 조공시스템은 이미 존재할 수도 부활할 수도 없다. 상호 이해와 존중은 국가 관계의 기초조건이다.”



-중국이 덩샤오핑(鄧小平)의 ‘도광양회(韜光養晦)’ 전략을 폐기했다는 주장이 나온다.

“도광양회는 장기 전략 목표다. 시기를 기다려 나중에 복수하겠다는 식으로 이를 해석하면 중국은 세계의 위협이 된다. 내가 이해하는 도광양회는 겸허하고 자신을 완성시키려는 마음가짐으로 타인을 진솔하게 대한다는 의미다. 패거리를 맺지 않고 영원히 우두머리가 되지 않는다는(決不當頭) 입장이자, 한·중이 공유하는 유교철학과 일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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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훙화 1969년 산둥(山東)성 출생. 베이징대 국제관계학원에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중앙당교 국제전략연구센터 부주임, 중국개혁개방논단 이사직을 맡고 있다. 주요 저서로 『개방과 국가전략체계』 『중국국제전략도론』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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