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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인들, 한국 '옥수역 귀신' 보고 '기겁'

중앙일보 2013.02.04 00:57 종합 25면 지면보기
제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을 찾은 관람객들이 대형 모니터 화면에 구현된 이종범 작가의 웹툰 ‘닥터 프로스트’를 감상하고 있다.


전시장 한 켠에서 여학생들의 “꺄악!” 하는 비명에 이어 까르르 웃음이 울려 퍼졌다. 40인치 대형 모니터 속 만화의 한 장면에서 불쑥 등장한 피 묻은 손에 놀라서다.

손 튀어나오고 벨소리 딩동~ 한국 웹툰, 유럽 사로잡았다
제 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서 ‘한국특별전’



 학생들이 보고 있는 만화는 한국 웹툰작가 호랑의 ‘옥수역 귀신.’ 호랑 작가는 이 만화에서 플래시 기술 등을 이용해 화면 속 그림이 순간적으로 움직이는 연출을 선보였다. 공포만화의 긴장감을 극대화했다.



 지난달 31일부터 3일까지 프랑스 남서부의 소도시 앙굴렘에서 열린 제 40회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의 한 풍경이다. 올해 한국은 행사의 주빈국(Guest of Honor)으로 초청받아 시 한복판 생 마르샬 광장에 375㎡(약 113평) 규모의 ‘한국만화특별전’을 열었다.



 전시장 내부 ‘디지털로 놀다’ 섹션에서는 현재 한국에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웹툰의 대표작들이 대형 모니터와 태블릿PC 등으로 소개됐다. 프랑스 관람객들은 화면 속 귀신이 갑자기 뒤를 돌아보고(‘봉천동 귀신’), ‘딩동~’ 하는 벨소리 등 효과음이 삽입되고(‘기사도’), 만화 중간에 갑자기 애니메이션이 등장하는(‘콘스탄쯔 이야기’) 등 한국 웹툰이 보여주는 새로운 표현방식을 맘껏 즐겼다.



 특히 단체로 전시관을 찾은 학생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앙굴렘 인근지역 알리탱에서 학생들을 인솔하고 온 교사 안 마리(40)는 “컴퓨터 화면 속 세로로 이어지는 만화를 보는 것은 새로운 경험이었다. 마치 영화를 보는 듯한 생동감이 있어 아이들이 좋아하는 것 같다”고 했다.



웹툰작가 호랑의 ‘옥수역 귀신.’ 만화 속 그림이 순간적으로 움직인다.
 ◆10년간의 변화=앙굴렘만화페스티벌은 매년 20만 명이 넘는 관람객이 찾아오는 유럽 최대 규모의 만화축제다. 한국은 10년 전인 2003년에도 이 페스티벌에 주빈국으로 초청돼 특별전시를 가졌다. 당시에는 ‘한국만화의 역동성’을 주제로 유럽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한국만화의 매력을 알렸다.



 그 사이 한국만화 지형도는 크게 바뀌었다. 출판시장의 침체와 디지털 기술의 빠른 성장이 맞물리면서 만화를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요 플랫폼이 종이잡지에서 웹 기반으로 옮겨갔다. 네이버·다음 등의 포털 사이트에 매주 200여 편의 웹툰이 연재되고 약 1700만 명이 일상적으로 만화를 즐긴다.



 플랫폼이 바뀌면서 표현방식도 변화했다. 세로 스크롤 감상에 걸맞은 연출과 IT 기술을 이용한 기발한 장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만화, 그 다음’이라는 주제를 내건 이번 특별전에선 한국 만화시장의 이같은 변화에 주목했다. 디지털로 확장되는 만화 매체의 미래상을 보여줬다.



 페스티벌 명예 디렉터를 맡고 있는 필립 라보 앙굴렘 시장은 “한국만화가 지난 10년간 이룬 예술적 성취와 기술적 발전, 새로운 표현방식을 알리고 싶어 다시 초대하게 됐다”고 밝혔다.



 ◆디지털 만화의 약진=출판만화 강국인 프랑스에서도 차츰 디지털 만화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있다. 지난해 5월에는 프랑스어권 최초의 웹툰 포털사이트 ‘델리툰(Delitoon.com)’이 문을 열었다.



 프랑스 최대 만화출판사 카스텔만의 편집장이자 델리툰 운영을 맡고 있는 디디에 보르그(45)는 “유럽에도 자신의 블로그 등에서 웹 만화을 선보이는 젊은 작가들이 많다. 그 중 우수한 작가들이 델리툰에 연재를 시작했다. 이는 한국의 웹툰 시스템을 모델로 한 것”이라고 했다. 3월부터는 이 사이트에 한국 웹툰 작가들의 작품도 소개될 예정이다.



 인기 웹툰 ‘닥터 프로스트’의 이종범 작가는 페스티벌 기간 중 열린 심포지엄에서 ‘새로운 한국형 크리에이티브, 웹툰’이라는 주제로 강연했다. 그는 지난 10여 년간 한국 만화시장 변화와 젊은 작가들의 다양한 실험을 소개했다. 현장을 찾은 30여명의 현지 만화 관계자들은 “한국 웹툰의 수익모델은 무엇인가” “출판만화 시장에는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가” 등을 질문하며 큰 관심을 보였다.



 ◆한국만화의 매력=이번 특별전에서는 조석의 ‘마음의 소리’, 윤태호의 ‘미생’ 등 60여 편의 웹툰과 함께 ‘한국만화의 거장’ 이두호·김동화 화백의 작품세계를 소개하는 섹션 등이 마련됐다. 이두호 앙굴렘 한국만화특별전 조직위원장을 비롯해 이희재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사장 등 총 30여명의 작가와 관계자들이 앙굴렘을 찾았다.



 현재 유럽은 미국과 일본을 앞서는 한국만화의 최대 수출시장이다. 한국콘텐츠진흥원에 따르면 한국만화의 유럽 수출액은 2005년 약 41만 달러(약 4억 5000만원)에서 2010년에는 약 225만 달러(약 25억원)로 급증했다.



 2005년 『빨간 자전거』를 시작으로 6작품, 총 14권의 만화를 프랑스어판으로 출간한 김동화 화백은 “유럽 사람들은 한국만화가 일본 망가(漫<753B>)와 비슷하면서도 독특한 에너지와 감성을 갖고 있다고 평한다”며 “우리 콘텐트에 자신감을 갖고 세계 시장을 적극 두드릴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글·사진 이영희 기자



◆앙굴렘국제만화페스티벌=프랑스 파리에서 남서쪽으로 442㎞ 떨어진 앙굴렘시에서 매년 1월 말에 열리는 세계 출판만화 축제. 지난해에는 약 25만 명이 다녀갔다. 40주년을 맞은 올해는 한국만화특별전 이외에 ‘아스테릭스’ 시리즈의 작가 알베르 우데르조 특별전, ‘미키&도날드’ 전 등이 진행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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