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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회 삼성화재배 월드바둑마스터스] 흑, 자결로 최후를 장식하다

중앙일보 2013.02.04 00:53 종합 27면 지면보기
제12보(141~152)=백△로 젖혀둔 것은 만약에 대비해 선수해두려는 겁니다. 흑이 이 수에 받지 않을 가능성은 거의 없지만 프로들은 1%의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대비합니다. 한데 여기서 급변사태가 발생하고 맙니다. 141이란 ‘자살수’가 등장한 것이지요. 이 수로부터 흑은 일직선으로 옥쇄의 길을 갑니다. 우선 정수부터 살펴보겠습니다.


[본선 16강전]
○·박정환 9단 ●·중원징 6단

 흑이 ‘참고도’로 받으면 백은 물론 대마를 잡으러 갑니다. 가장 확실한 최후의 일격이 어디냐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습니다만 눈을 없애는 데는 백2가 가장 좋다고 합니다. 흑에는 상변 쪽과의 연결을 보며 버티는 수도 있음 직해서 뭔가 A쪽을 두고 싶은 유혹도 생기는 곳입니다. 아무튼 중원징 6단에게 이 대목에서 대마의 죽음은 다음 기차역처럼 분명하게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조금 장황했습니다만 요약하면 141의 절단은 뻔한 운명에 대한 자포자기적 저항이자 울부짖음 같은 수라는 거지요.



 142는 프로들에겐 쉬운 맥점입니다. 143 나올 때 144부터 주르륵 훑어가면 그렇지 않아도 약한 중앙 대마가 손상을 입어 저절로 사망하게 됩니다. 수순이 매우 쉽지 않습니까. 흑이 선수를 잡아 149로 한 집을 냈지만 150에 두니 또 한 집이 보이지 않습니다. 바둑은 흥망을 다투는 게임이라 이렇듯 처절한 ‘옥쇄’가 존재합니다. 패망한 왕국의 군주처럼 중원징은 마지막을 자결로 끝맺었고 박정환 9단은 150과 152로 목을 쳐주었습니다. 바둑이 끝났는데 두 기사는 말 없이 판을 내려다보고 있었습니다.



박치문 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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