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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파니’사장 접었다 … ‘세이브더칠드런’갔다

중앙일보 2013.02.04 00:41 종합 30면 지면보기
“나이 50이 넘으면 돈 버는 일이 아닌 다른 일을 하겠다고 다짐해왔다”는 김미셸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
지난해 말 국내 NGO(비정부기구) 커뮤니티에서 화제가 된 일이 있었다. 미국을 대표하는 보석 브랜드 ‘티파니’ 아시아 총괄 사장이 그 화려한 자리를 던지고 국제아동보호기구 ‘세이브더칠드런 코리아’(SCK) 사무총장으로 간다는 얘기였다. 주인공은 김미셸(51)씨. 취임 한 달째인 지난달 31일 서울 창전동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실에서 만났다.


김미셸 사무총장 취임 한 달

 “지난 여름 어떤 분이 제게 새로운 명품 회사의 자리를 제안해 왔어요. 그때 말했죠. ‘저는 나이 오십 넘으면 돈 버는 일 말고 다른 걸 하겠다는 다짐을 늘 해왔다’고요. 그 분이 세이브더칠드런 사무총장 자리가 비어있다는 말씀을 하셨어요. 운명이다 싶어 공모에 응했죠.”



 그는 미혼이다. “어렸을 때 꿈이 ‘아이 다섯을 낳고, 빵 직접 구워주며 키우는 엄마가 되고 싶다’는 거였어요. 개인적으론 못 이룬 꿈이죠. 하지만 지금 더 많은 아이들을 돌볼 수 있잖아요. 하하.”



 2007년부터 ‘티파니’ 아시아 총괄 사장으로 일한 그는 1992년 티파니 뉴욕 본점의 시급 회계 직원으로 시작, 21년간 티파니에서만 근무했다. “해외 유명 업체 종사자들은 이직이 잦은 편입니다. 옮겨 다니면서 연봉, 직급이 더 오르기 때문이죠. 한 곳에 오래 있은 건 제가 좋아서 시작한 일이어서죠.”



 열여섯 살에 부모를 따라 미국 시애틀로 이민간 김씨는 워싱턴 주립대 금속공학과를 졸업하고 뉴욕 컬럼비아 대학원에 입학했다. 여학생이 드문 재료공학과였다. 미대를 원했지만 부모의 뜻을 따라 공대로 갔다고 한다. “석사 과정을 마칠 무렵 뉴욕 맨해튼 티파니 본점 매장에서 성탄절 대목 때 일할 시급 직원을 구한다는 광고가 눈에 들어왔어요. 미대를 못 간 아쉬움도 달랠 겸, 아르바이트라도 해보고 싶었어요.”



 아이비리그 공대생은 졸업만 하면 다들 부러워할 직장으로 들어가 자리잡을 수 있는 때였다. 하지만 ‘최저 임금을 받는 시급 직원’이 됐다. 그의 출발선은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매장 직원들보다 아래였다. “100년 넘는 보석 디자인 자료가 켜켜이 쌓인 회사 자료실은 제겐 그야말로 보물창고였어요. 눈 뗄 수 없이 아름다운 것들이 온통 주위에 있었죠.” 좋아하는 일이라 밤을 새우며 일했다. 그 덕에 승진도 빨랐다. 한국 지사장으로 11년, 중국·일본을 뺀 아시아 전 지역 티파니 총괄로 6년간 일했다. 그는 “돈을 좇은 게 아니라, 좋아하는 일을 하다보니 성공한 것”이라고 했다.



 취임 한 달 동안 세이브더칠드런 업무파악에 분주했다는 그는 자신의 이민 경험이 큰 도움이 된다고 했다. “미국으로 이민해 처음 등교한 날 제가 영어를 못하는 것을 알고 학교에선 다음날로 저만를 위한 영어 선생님을 채용했어요. 어린 마음에도 그 배려에 감동했죠.” 그는 당시 경험을 세이브더칠드런이 펼치는 다문화 가정 및 이주가정을 위한 사업에 반영하려 한다고 했다.



 ‘언어 두 개, 기쁨 두 배’ 프로그램이 이런 일환이다. 다문화 가정을 위한 이중언어지원 프로그램으로 외국인 엄마를 둔 자녀가 엄마의 모국어와 한국어 두 가지를 모두 습득하게 돕는 사업이다. 지난 주 김승수 전라북도 정무부지사를 만나 이 사업에 대한 양해각서(MOU)도 맺었다. 가정폭력, 부모의 방치 등으로 긴급 구호가 필요한 아이들을 돌보는 것도 이 단체가 주로 하는 일이다. “지자체에서 지정받아 운영하는 ‘아동보호전문기관’ 일이에요. 취임 후 직원들을 만났더니 1월 1일 새벽 3시에도 긴급출동했다고 하더군요. 경찰을 대동해도 부모가 신체적인 위협을 가하는 게 다반사라네요. 격무에도 직원들의 표정은 정말 밝아요. ”



 그가 티파니 경영에서 구축한 네트워크는 세이브더칠드런 업무에도 보탬이 되고 있다. “‘각자 후원자 100명씩 모아오자’며 주변 사람들을 독려하는 친구들도 있어요. 모두 큰힘이 됩니다.” 그는 “무작정 큰돈을 후원하겠다는 분들은 일단 만류한다”고 했다. 단체의 활동을 이해하고, 되도록 더 많은 사람이 꾸준한 관심을 보이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서란다. 김 사무총장은 “세이브더칠드런은 어려운 아이들을 동정하고 자비를 베푸는 기관이 아니다”고 강조했다. “아이들은 ‘20년 뒤의 우리’입니다. 세이브더칠드런은 단지 그들을 보좌하는 겁니다.”



 김 사무총장은 “후원자 중엔 한국전쟁 때 세이브더칠드런의 미국지부, 영국지부의 도움을 받은 사람도 있어요. 한국지부의 개인 후원자 중엔 30대 비율도 높습니다. 내 아이뿐 아니라 다른 아이의 미래에도 관심 갖는 젊은 사람들이 많다는 거죠. 대한민국의 미래가 밝아 보입니다.”



강승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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