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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이념 필요, 단 종북은 아니다

중앙일보 2013.02.04 00:37 종합 8면 지면보기
국민통합시민운동 공동대표를 맡은 박상증 전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오른쪽)과 안병직 시대정신 명예이사장. 좌우를 넘는 우리 사회의 미래를 찾는 데 뜻을 모았다. [김상선 기자]


박상증(83) 목사와 안병직(77) 교수. 지난 20여 년간 진보-보수 진영 시민운동을 각기 대표할 만한 두 사람이 손을 잡았다. 국민통합시민운동을 지난달 21일 출범시키며 공동대표를 맡았다.

보수·진보 ‘대표’ 안병직 교수·박상증 목사, 국민통합 위해 손잡다



 진보와 보수, 좌파와 우파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들이 그간 여러 차례 있었지만 대개 미완성이었다. 선거 때만 되면 서로 공존할 수 없는 대상인 것처럼 대립각을 세웠다. 이번엔 뭔가 달라질 것인가.



 -박 목사께선 줄곧 진보적 시민운동에 몸담았는데 지난 대선에서 박근혜 후보를 지지했다.



 ▶박상증(이하 박)=그렇게 얘기하면 (나의 삶을) 상당히 축소한 것이다. 내가 참여연대 대표, 아름다운재단 이사장 등을 지내며 어땠냐, 그걸 다 봐야 한다. (진보 쪽에도) 나같이 촛불시위에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다. 강정마을도 반대했고, 평택 기지문제도 반대했다. 어떻게 참여연대 대표가 그럴 수 있느냐고 한다면 그건 참여연대를 잘 모르는 거지. 참여연대가 공산당처럼 똑같은 얘기만 하는 곳이 아니거든.



 -우리 사회에 그간 이런저런 통합운동들이 있었는데.



 ▶박=내 경험을 얘기하면, 2004년 ‘희망포럼’이라고 들어보셨는지. 노사정위원회가 결렬됐을 때 시민운동가들이 나서서 화란(和蘭·네덜란드) 모델을 가지고 새로 만들어 보려고 했다. 노동조합·경제단체·정당을 방문하면 시민운동의 뜻이 좋다고는 하는데, 실지로 합의를 이끌어내진 못했다. 당시 분위기는 대한민국에 새로운 통합을 만들기엔 미진했다. 이번엔 좀 다를 것이다. 중도세력을 많이 참여하게 할 것이다.



 ▶안병직(이하 안)=우리나라 국민을 대한민국 국민으로 통합하는 일이 필요하다. 국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정당성을 인정해야 한다. 그것이 국민통합의 방향이다.



 -구체적으로 설명해달라.



 ▶안=대한민국은 해방 이후 국제협력 속에서 탄생하고 발전했다. 건국부터 유엔의 도움을 받았고,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민주주의 헌법을 기반으로 건국은 했지만 혼자 지킬 수 없으니까 한·미 동맹을 하고 미국의 원조를 받았다. 박정희 대통령도 미국을 비롯한 여러 선진국과 협력 속에서 경제개발을 성공한 거다. 이렇게 발전하고 번영한 국가를 지키면서 어떻게 더 선진국가로 업그레이드시키는가, 이것이 과제다.



 - 그 점을 특별히 강조하는 이유는.



 ▶안=진보진영에서는 대한민국을 국제협력의 관점이 아니라 독립운동이라든지 민족주의의 각도에서 본다. 자주·자립의 각도에서 대한민국의 역사를 보는 거다. 그렇게 보면, 이승만이나 박정희의 국제협력이 나쁜 것으로 보이게 된다. 지난 대선 때 민족문제연구소에서 ‘백년전쟁’이란 유튜브 사이트를 개설했었다. 거기에 이승만과 박정희는 침략자의 협력자이고 매국노라고 나온다. 자주노선을 강조하는 나라가 어딘가. 주체사상을 내세워 절대 제국주의에 고개 숙이면 안 된다고 한 북한은 어떻게 됐는가. 3대 세습을 하는 전제국가가 됐다. 그런데도 대한민국이 도덕적으로 부끄러운 나라라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



안병직(左), 박상증(右)
 -두 분의 포인트가 좀 다른 듯하다.



 ▶안=박 목사님은 좀 더 구체적으로 노사정 통합을 국민통합으로 얘기하셨는데 나는 그보다 우리 국민을 대한민국 헌법체제 속에서 대한민국 국민으로 만드는 것이 국민통합이라고 보는 것이다. 각각 개성 있는 국민통합운동을 하면 된다. 대화를 자꾸 하다 보면 어떤 국민통합이 좋다는 생각을 하게 될 것이다.



 ▶박=미국 인종차별 반대운동 할 때 이런 얘기가 있었다. 미국은 모든 것이 섞인 나라라고 하는데, 모든 색깔을 넣으면 까맣게 되지 않나. 그런데 미국에선 하얗게 된다는 문제제기였다. 그에 대한 대안으로 ‘그레이트 믹스드 샐러드(Great mixed Salad)’란 구호가 제시됐다. 즉 여러 재료를 섞어 샐러드를 만드는데, 각자 색깔을 다 유지하고 있다는 거다. 다양성 속에서 일치를 찾는 것이다.



 ▶안=목사님 말씀을 좀 부연하면, 지금 대한민국 수준은 국민이 이념적으로 아무리 컬러풀해도 다 수용할 수 있을 정도가 됐다. 좌익도 있고 공산주의도 있고 심지어 독재주의·반공주의 다 있을 수 있지만, 이 사람들이 대한민국이란 헌법체제 속에 서로 공존하면서 경쟁하는 체제를 만들자는 것이다.



 ▶박=독일 학생운동도 테러운동으로까지 갔는데, 그때에도 국회 제도 속에 들어가 싸울 거냐 아니면 밖에서 싸울 거냐 논쟁을 했었다. 결국 폭력적인 학생운동은 지지를 받지 못하면서 대개가 국회 안으로 들어가게 됐다. 우리는 48년 건국 이래 대한민국을 부정한 사람이 있었고, 그때만 있는 줄 알았는데 지금도 있어 문제라는 것이다.



 ▶안=문재인 후보가 대선 때 우리 민주당은 국민정당으로 거듭나겠다고 했다. 지금까지 대한민국 헌법체제를 전혀 부정했다고까지는 아니더라도 흔쾌하게 인정하지 않았다는 거 아닌가. 그런데 대선 패배 후 비대위 만들어 새로 거듭나겠다고 하는 이 순간에 이 중요한 말을 안 하고 있다. 우리가 국민통합운동 하는 또 하나의 이유가 거기에 있다.



 -박 목사께서 오랜 기독교 통합운동에서 얻은 교훈이 있다면.



 ▶박=통합운동이라는 것이 그렇게 쉽게 되지 않는다는 거다. 몇 사람이 구호 외친다고 사람들이 따르는 건 아니다. 겸손한 마음부터 가지고 시작해야 한다. 불가능할 수도 있다. 이런 말 잘 안 했는데, 요즘 통합운동 하면서 하는 얘기가 있다. 기독교 일치운동은 2000년 동안 해왔는데 오늘날까지 잘 안 된다는 거다. 나는 목사로서 기독교 일치운동에 50년 청춘을 바치고 투신한 사람인데, 일치운동이 슬로건대로 진행되는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 5년 동안 (통합을 완성)한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좌파를 어떻게 정의하나.



 ▶안=한국의 좌파 가운데 극단적 부류는 종북주의다. 대한민국 헌법체계를 부정하고 북쪽을 자기 조국으로 생각하는 사람하고 같이할 수는 없는 거 아닌가. 그렇다고 법률로 처단하거나 배제하라는 얘기는 아니다. 서구 역사에서 좌파는 사회민주주의로 수렴됐다. 예컨대 대한민국 헌법을 수용하고 국민정당으로 거듭나는 것이다. 우리 좌파도 사회민주주의로 변화하길 바란다. 그러면 대한민국 국민으로 통합되는 것이다.



 ▶박=나는 민주당을 극단적 좌파로 안 본다. 두루뭉실하게 섞인 것 아닌가. 엄격히 따지면 대부분은 새누리당 사람하고 비슷하다. 나는 그렇게 본다. 내가 중도라고 할 때는 상당히 광범위하다. 내가 좌파라고 할 때는 종북파와 비슷하다.



 -종북 에 대해선 공감하는 셈이다.



 ▶박=통합을 위해 종북주의와도 언젠가 대화해야 한다. 하지만 지금 제1의 대화 상대는 아니다.



글=배영대 기자

사진=김상선 기자



◆안병직=1936년생. 60∼70년대엔 한국을 ‘식민지 반봉건사회’로 규정한 좌파 경제학자였다. 80년대 이후에도 한국 경제가 계속 발전하는 것을 보며 기존 입장을 수정했다. 시대정신 명예이사장.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 일본 후쿠이 현립대 대학원 특임교수. 뉴라이트재단 이사장·한나라당 여의도연구소 이사장·시대정신 이사장 역임. 건국 세력, 산업화 세력, 민주화 세력이 경쟁하며 공존하는 새로운 역사관 창출을 우리 사회 과제로 꼽았다.



◆박상증=1930년생. 목사. 60∼80년대 국내 1세대 에큐메니컬(기독교 교회통합) 운동가. 국내뿐 아니라 세계 에큐메니컬 무대에서도 오랫동안 활동한 교회통합운동의 산증인이다. 한국기독교사회문제연구원 원장·세계교회협의회(WCC) 간사·아시아기독교협의회(CCA) 총무 역임. 90년대 이후엔 아름다운재단 이사장·참여연대 공동대표도 지냈다. 지난 총선·대선을 거치며 대한민국 정체성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 필요함을 새삼 깨닫고 통합운동을 이끌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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