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노트북을 열며] 일본은행 꼴, 한국은행 꼴

중앙일보 2013.02.04 00:28 종합 34면 지면보기
김종윤
뉴미디어 에디터
일본이란 나라, 납득이 안 된다. 중앙은행 총재를 협박하는 총리를 보면 충격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대놓고 시라카와 마사아키(白川方明) 일본은행 총재를 몰아붙였다. “여보시오, 말 안 들으면 일본은행법을 개정할 거야!”



 그 내용, 황당하다. 일본은행이 정책목표를 달성하지 못하면 총재를 해임하겠다는 것이다. 중앙은행은 정부 기관이 아니다. 통화신용정책의 독립적 수립과 자율적 집행은 중앙은행의 고유 권한이다. 당연히 중앙은행 총재의 임기는 보장돼 있다. 이건 글로벌 스탠더드다. 아베 총리는 중앙은행의 자주성을 깔아뭉갰다. 결과는 시라카와 총재의 백기 투항. 그는 물가가 2%로 뛰도록 무제한으로 ‘머니 프린팅’ 하겠다는 항복문서에 서명했다.



 이렇게 해서라도 엔화가치를 떨어뜨리겠다는 일본 정부의 절박함을 이해 못 하는 건 아니다. 경기 불씨를 살려 디플레이션을 벗어나겠다는 처절한 몸짓이다. 문제는 방식이다. 아베 총리의 수법은 조폭들의 그것과 다를 바 없다. 당장은 풀린 돈이 일으킨 각성제 효과로 일본 국민은 황홀해한다. 부작용은 금세 나타날 것이다. 무제한 양적완화가 계속되면 이웃 나라가 피해를 보게 된다. 그래서 가만히 있을 수 없다. 서로 경쟁적으로 돈을 풀게 된다. 이는 모두 함께 죽는 근린궁핍화(beggar-thy-neighbor)의 망령으로 치닫는 지름길이다.



 이런 위기에 빠지지 않도록 리더십을 발휘할 선장이 중앙은행이다. 특정 국의 중앙은행이 권력의 시녀가 되면 그 나라만이 아니라 경쟁 국가의 경제에도 악영향을 끼친다. 중앙은행 독립의 기수였던 일본은행의 명성은 이제 깨졌다. 신뢰를 잃은 일본은행은 앞으로 일본 경제의 구조적 장애물로 부각될 공산이 크다.



 막무가내 ‘아베노믹스’와 무기력한 일본은행에 대한 이런 날 선 비판의 울림은 깊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커서다. 곧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당장 첫해부터 경기침체라는 먹구름을 피할 길이 없어 보인다. 공약으로 내세운 복지확대도 뜻대로 안 돼 약속을 지키기 어려워질지 모른다. 서민들은 “못살겠다”고 아우성을 칠 것이다. 이럴 때 정부는 유혹에 빠지기 쉽다. 중앙은행을 동원한 무제한 금융완화다.



 한국은행법 4조는 ‘한은의 통화신용정책은…정부의 경제정책과 조화를 이뤄야 한다’고 돼 있다. 한은이 정부의 경제정책과 접점을 찾는 건 필요하다. 중요한 건 강도(强度)다. 한은이 ‘조화’가 아닌 ‘복종’의 길로 가면 바로 일본은행 꼴 날 수 있다. 김중수 한은 총재는 2010년 내정자 시절 “한국은행도 정부”라고 말했다. 이 탓인지 김 총재 취임 이후 3년여간 한은의 행보가 ‘독립’과는 거리가 멀었다는 시각이 많다. 한은은 금융시장의 리더다. 리더가 조금만 흔들려도 시장은 폭풍을 만난 것처럼 휘청거린다. 정권이 바뀌든, 새 정부가 들어서든 흔들림 없이 꼿꼿하게 할 일 하는 중앙은행은 그래서 소중하다.



김 종 윤 뉴미디어 에디터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