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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월 수출 늘었지만 … 엔저 착시 주의보

중앙일보 2013.02.04 00:18 경제 1면 지면보기
#1. 올해 1월 수출이 두 자릿수 증가율(전년 동기비 11.8%)을 기록했다. 엔화가치 하락(원화가치 상승)의 공포를 무색하게 한 성적표다. 그러나 수출입 업무를 총괄하는 조영태 지식경제부 수출입과장의 마음은 편치 않다. 그는 “환율 변동이 바로 수출량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며 “원화가치 상승에 따른 기업의 채산성 악화는 여전히 큰 숙제”라고 말했다.


[뉴스분석] 11.8% … 예상 밖 두 자릿수 증가

 #2. 현대자동차는 지난달 세계 시장에서 41만2720대의 자동차를 팔았다고 1일 발표했다. 지난해 1월보다 27.8% 늘었다. 그러나 현대차 임원들은 걱정부터 먼저 한다. 현대차 관계자는 “올해는 신흥시장까지 성장이 둔화하고, 환율 변동에 따른 불확실성 증대로 매우 어려운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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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려한 1월 수출·판매 실적이 잇따라 나오고 있다. 그러나 숫자의 속사정을 아는 이들은 오히려 고개를 젓는다. 착시가 있기 때문이다. 첫 번째 엔저 효과의 착시는 달러 기준의 무역 통계에서 비롯된다. 환율이 아무리 변해도 달러로 표기되는 물건 값은 변화가 없다. 1000달러에 팔던 물건은 환율이 변했다고 표시 가격이 1010달러가 되지 않는다. 환율 변화에 따른 손실은 이렇게 번 달러나 엔을 원화로 바꾸는 과정에서 생긴다. 지난달 수출 증가율 11.8%는 달러 기준이다. 이를 원화로 환산하면 수출 증가율은 4%에 그친다. 지경부 조 과장은 “11.8%와 4%의 차이만큼 국내 업체가 환차손을 입게 되는 셈”이라며 “엔저의 단기 영향은 수출 물량의 축소가 아니라 수출은 했는데 남는 것이 별로 없는 기업의 채산성 문제”라고 말했다.



 ‘J커브 효과’도 착시를 부추긴다. 통화가치가 변한다고 수출입 물량이 확 바뀌진 않는다. 기존의 주문, 수출입 기업 간 거래 관행 때문이다. 일본의 무역수지 변화가 이를 보여준다. 지난해 10월부터 엔저가 본격화됐지만 일본 무역수지는 석 달째 악화 추세다. 2005년 엔저 때도 일본 무역수지는 1년 이상 조정기간을 거친 후 2006년 중반부터 변화가 나타났다. 엔저→한국의 수출경쟁력 악화→수출 물량 감소→무역수지 변화의 과정은 시차를 두고 일어난다는 의미다.



조업일수도 영향을 줬다. 지난해 1월 조업일수는 설 연휴로 인해 24일에 불과했다. 올해 1월은 26일이었다. 하루치 수출액은 20억원 안팎이다. 올해는 설이 2월에 있다. 1월 수출이 늘었는데, 벌써부터 정부가 2월 수출 걱정을 하고 있는 이유다.



 착시를 걷어내고 나면 엔저의 공포는 위협적이다. 3일 현대경제연구원은 올해 수출이 6% 감소할 것으로 전망했다. 일본 정부가 목표한 엔화가치 하락 수준(달러 대비 7%)을 감안해 분석한 수치다. 소비자의 행동 변화가 바로 나타나는 관광에선 이미 현실화됐다. 일본인 관광객은 지난 4개월 동안 18% 줄었다. 이 추세가 이어지고 일본으로 가는 한국 관광객 수도 그만큼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올해 관광수지 손실은 10억 달러에 달할 것으로 현대경제연구원은 분석했다.



이부형 현대경제연구원 수석연구위원은 “엔저는 침묵의 살인자처럼 중장기적으로 한국 산업의 경쟁력을 떨어트릴 것”이라며 “일본에 비해 한국이 열세에 있는 업종부터 타격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열세 업종으로는 미국에선 자동차·기계, 중국에선 철강·기계·자동차, 유럽연합(EU) 시장에선 철강·기계 등이 꼽힌다. 실물 경제보다 한 발 앞서가는 증권가에선 이미 기업의 1분기 실적을 무더기로 하향 조정한 상태다. 증권정보업체인 에프엔가이드에 따르면 현대차에 대한 증권사의 1분기 영업이익 전망은 지난해 말 추산보다 9.1% 깎인 2조745억원으로 하향 조정됐다.



 KTB투자증권은 원화 가치가 100원 오를 때 SK하이닉스는 5700여억원, LG디스플레이는 4800여억원대의 영업이익이 줄어들 것으로 전망했다. 유승민 삼성증권 투자전략팀장은 “엔저의 속도와 수준에 따라 차이가 있겠지만 1월보다는 2월, 1분기보다는 2분기 기업 전망치가 악화될 수 있다”고 말했다.



김영훈·이상재 기자



◆J커브 효과



영국 파운드화 가치 변화에 따른 영국의 무역수지 변동을 그래프로 그리면 알파벳 ‘J’와 같은 모습이 나타나는 데서 유래한 이론. 특정 국가의 통화가치가 하락(수출에 유리)하더라도 초기엔 무역수지가 오히려 악화하고, 상당 기간이 지난 후 수지가 개선되는 효과가 나타난다는 뜻이다. 기존 거래 양상·주문 등으로 인해 수출입 물량이 곧바로 변하지 않기 때문에 생기는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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