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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네 어르신 굴곡진 삶 글로 남겨

중앙일보 2013.02.04 00:13 종합 17면 지면보기
빨치산 활동으로 징역 7년을 살았던 박정덕씨가 대전 직업교도원 작업실에서 편물 작업을 하는 모습(위). 김기선씨의 대학 졸업 앨범 사진(아래). 김씨(오른쪽 넷째)는 중앙대 재학 시절 4·19 시위
대에 참가했다. [사진 관악구]
“도당 학교에 입학해 공부하는데, 학습 과목은 당사(黨史)와 해방 후 조선 등 4과목이었다. 선생님은 모두 북부 출신 김일성대학 교수였다.”(박정덕, 『바람에 꽃잎은 져도』 중)

관악구, 자서전 제작비 지원
6·25전쟁, 4·19혁명, 외환위기 등
서민들 시각서 고스란히 담아



 “정규군으로 입대하기엔 나이가 어렸기 때문에 제2국민병으로 징집돼 8사단의 신규 병력으로 충원됐다. 겨울에 벌어지는 빨치산 토벌작전은 사실상 토끼몰이나 다름없었다. 지리산의 겨울은 혹독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빨치산은 저항하지 못했다.”(김관영, 『봉사로 꽃피운 인생』 중)



 6·25전쟁 당시 지리산. 한 사람(김관영)은 쫓고 다른 한 사람(박정덕)은 쫓기는 처지였다. 박정덕(81·여)씨는 전남 곡성군 오곡면 여맹위원장인 빨치산, 김관영(82)씨는 학도병 출신 이등병이었으니까-. 60여 년이 지난 지금 두 사람은 똑같이 서울 관악구 주민이다.



 평범한 사람, 그러나 결코 평범하지 않은 인생을 살아낸 어르신 9명의 이야기가 자서전 9권으로 출간됐다. 관악구의 ‘어르신 자서전 제작 지원 사업’을 통해서다. 관악구가 만 65세 이상 노인을 대상으로 진행한 이 사업을 통해 자칫 묻힐 뻔한 근현대사의 이야기가 빛을 보게 됐다. 관악구는 1인당 200만원씩 제작비를 지원했다.



 9권의 자서전에는 각각 6·25전쟁이나 4·19혁명, 5·16 쿠데타 같은 굵직한 현대사의 한 장면과 오일쇼크, 외환위기 등을 이겨낸 서민의 기록이 그들의 시각으로 고스란히 담겨 있다.



 빨치산 출신 박씨, 이제 더 이상 쫓기지 않게 됐지만 남은 인생도 결코 평탄할 수 없었다. 1952년 체포된 박씨는 빨치산 생활로 얻은 부상 탓에 다리를 잘라냈다. 같이 빨치산 활동을 했던 남편은 국군에 사살됐다. 이후 무작정 상경한 박씨는 재혼, 그리고 다시 사별을 겪었다. 지금은 무의탁 노인 3명과 함께 정부 지원금으로 살고 있다.



 이들만큼 극적이진 않지만 다른 이들의 자서전도 생생한 한국 현대사를 담고 있다.



 3대째 서울 토박이인 김기선(74)씨는 1960년대 후반 사업가로 성공했다. 도심 개발로 쫓겨난 철거민이 대거 봉천동 일대로 넘어오자 은천시장과 버스회사 신동아운수를 설립해 큰돈을 벌었다. 그러나 1, 2차 오일쇼크 충격을 이기지 못하고 사업을 정리했다. 이외에 50대 이후 찾아온 우울증을 극복하기 위해 혼자 읊다가 시조 시인이 된 우선경(75·여)씨, 지적장애 1급으로 태어난 아들을 뒷바라지하다 장애복지계 대모가 된 이청자(70·여)씨, 제빵 인생만 살다가 외환위기 후 사업을 접은 후 지역봉사로 노후생활을 하는 방성열(69)씨가 자서전을 썼다.



 자서전은 어떤 의미일까. 박정덕씨는 “한때 반대편에 섰던 사람이 정부 지원을 받아 편안히 살고, 이렇게 살아온 이야기까지 남기게 돼 감격스럽다”며 “젊은이들이 나를 비롯해 다양한 인생을 산 우리 세대의 자서전을 통해 당시 시대 상황을 잘 이해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관악구는 매년 10명씩 선정해 자서전을 출간할 계획이다. 유종필 관악구청장은 “유명한 사람만 자서전을 써야 하는 게 아니다”라며 “오히려 평범한 이들의 기억이 모여 중요한 기록으로 남는다”고 말했다.



유성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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