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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5명 사살' 스나이퍼 사격장 갔다 참변

중앙일보 2013.02.04 00:03 종합 21면 지면보기
카일
‘미국 역사상 최고의 스나이퍼’로 불린 저격수 크리스 카일(39)이 저격수 출신의 총격에 숨졌다. 현지 매체들은 카일과 그의 이웃 한 명이 2일(현지시간) 텍사스주 포트워스 인근 사격장에서 또 다른 마을 주민 에디 루스(25)가 쏜 총에 숨졌다고 보도했다. 루스는 전직 해병대 저격수로 외상후스트레스장애(PTSD)를 앓고 있었다. 카일은 루스의 치유를 돕기 위해 사격장에 함께 갔다가 갑자기 돌변한 루스에게 변을 당했다고 한다. 루스는 카일의 트럭을 타고 도주하다 경찰에 체포됐다.


적 255명 사살한 39세 전쟁영웅
외상후장애 해병대 출신 도우려
함께 사격장 갔다 사살당해

 카일은 PTSD에 시달리는 전역 군인들을 지원하는 재단(FITCO) 설립에 관여하는 등 이들의 치유를 위해 적극적으로 활동해 왔다. 트레비스 콕스 FITCO 국장은 “미국은 평생 애국자였던 영웅을 잃었다”고 말했다. 미 국방부 집계 결과 지난해 미군 자살자(349명)가 전년 대비 15% 증가해 전사자(295명) 수를 처음으로 넘어섰다. 수많은 전·현직 미군이 전쟁·고문으로 인한 공포와 무력감에 시달리고 있으며 이들이 벌이는 자살과 살인·폭력 사건이 끊이지 않는다. 기업들은 전역 장병의 고용을 꺼리는 등 사회문제가 되고 있다.



 카일은 11년간 미 해군 네이비실 저격수로 복무하며 255명(미 국방부 공식 확인 기록으론 160명)의 적을 사살했다. 여덟 살 때 아버지로부터 처음 총 쏘는 법을 배운 그는 카우보이로 일하다 1999년 입대했다. 이라크로 파견된 2003년 봄 처음 저격의 순간을 마주했다. 차도르 차림으로 수류탄을 들고 미군 쪽으로 다가오는 여성을 향해 지휘관의 명령에 따라 방아쇠를 당겼다. 그는 “사살 직전 상대가 여자라는 점 등 온갖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다”고 지난해 BBC 인터뷰에서 회상했다.



 이후 2004년 팔루자에서 40명의 반군을 사살하며 카일은 미군에겐 전설로, 현지인에겐 ‘라마디(저항 세력 거점)의 악마’로 불렸다. 1.9㎞ 거리에서 저격에 성공한 적도 있었다. 반군은 그의 목에 2만 달러의 현상금을 내걸었다.



 두 차례 부상을 입기도 했지만 카일은 2번의 은성무공훈장, 5번의 동성무공훈장을 받는 등 전쟁 영웅으로 대접받았다. 2009년 결혼과 함께 퇴역한 후엔 전투원을 훈련시키는 업체를 운영해왔다. 지난해엔 자신의 무용담을 담은 책 『아메리칸 스나이퍼』를 출간해 유명해졌다.



 전쟁 때마다 저격수는 최고의 영웅이었다. 어델버트 왈드론(미국)은 베트남전 당시 메콩강 정글에서 베트콩 109명을 사살했다. 핀란드의 시모 해이해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설원에서 소련군 505명을 저격해 세계 기록으로 남아 있다. ‘하얀 죽음’이란 별명을 가진 그는 햇빛이 반사돼 적에게 노출된다며 망원경을 부착하지 않은 채 이런 전과를 올렸다. 소련의 바실리 자이체프는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독일군 400여 명을 사살해 국민 영웅으로 떠올랐다. 이 중 상당수를 1㎞ 바깥에서 명중시켰다고 한다.



이충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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