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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공간 재활용 ‘로 트렌드’

중앙일보 2013.01.29 06:58
지난 23일 ‘갤러리 정다방 프로젝트’를 찾았다. 낡고 거친 모습 그대로를 드러낸 벽면에 홍익대 대학원 회화과의 ‘다방회동’ 전시물이 걸려있다.



어? 다방이야 갤러리야 버려진 모습 그대로네

 2013년 트렌드를 예견하는 도서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단어가 있다. ‘로 트렌드(Raw Trend)’가 그것이다. 인공적으로 꾸미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날것을 추구하는 흐름이다. 뉴욕의 소호, 북경의 798예술거리처럼 버려진 모습 자체에서 생산성을 찾는다. 서울의 폐공간도 속속 변화를 꾀했다.



문래동 ‘정다방 프로젝트’=젊은 창작자들이 홍대 앞을 떠나 문래동에 모였다. 방직공장과 철공단지가 떠난 자리에 150여 명의 작가가 활동 중이다. ‘갤러리 정다방 프로젝트’는 이들을 응원하는 공간이다. 한경훈(39)씨가 총괄 운영하는 이곳은 2010년까지 30년간 다방으로 영업하던 곳이다. 법원 민원인들의 만남의 장이자 철공소 철공인들에게 커피를 배달하던 곳이었다. 하지만 법원이 이전하면서 정다방도 문을 닫게 됐다. ‘그곳에 깃든 30년의 세월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이 안타깝다’는 생각이 한씨가 정다방을 매입한 이유다.



 ‘정다방’ 세 글자가 무뚝뚝하게 써있는 오래된 간판을 따라 지하로 내려가면 회색 콘크리트 벽을 드러낸 갤러리가 나온다. 자본에서 최대한 탈피한 공간을 만들기 위해 벽지조차 바르지 않았다. 그런 벽면에 예술가의 회화 작품이 걸려 있고 조형 미술품이 설치돼 있다.



 한씨는 이곳을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대관해주고 있다. 문래동 젊은 작가들의 사정을 잘 알기 때문이다. 다만 문래동 지역 주민들에게 전시 공간이 항상 열려있어야 한다는 조건만 붙였다. 매월 셋째 주 토요일 ‘문래 아트데이’를 연다. 지역주민을 갤러리로 초대해 도예체험 교실과 ‘문래동 벽에 낙서하기’ 등을 진행한다. 지난 21일엔 ‘브런치 카페 정다방 프로젝트’도 오픈했다. 영역을 점차 확장하면서 지역주민과 예술가들 사이의 간극을 좁혀가고 있는 이들은 앞선 해외 사례처럼 예술의 힘으로 문래동이 개발되길 꿈 꾼다.

▶ 문의=02-2633-4711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지난해 11월 23일 개관한 한남동 ‘구슬모아 당구장’은 2007년 단국대가 이전하면서 자연스레 도태된 곳이다. 이곳을 대림미술관에서 월세로 임대해 갤러리로 운영하고 있다. 예전 당구장의 간판을 그대로 사용해 밖에서 보면 갤러리의 모습을 가늠할 수 없다. 신진 미술가들의 작품이 전시되는 전시장 한 켠에 당구대도 그대로 놓아두었다. 윤아영 큐레이터가 처음 이 공간을 보러 갔을 때 빨대가 꽂힌 채 남아있던 요구르트병이 인상 깊었다고 한다. 윤 큐레이터는 “많은 이야기들이 담겨 있을 것 같은 공간을 훼손하기 싫었다”며 옛 간판과 당구대를 남겨둔 이유를 설명했다.



 지역주민들은 반신반의했다. 개관을 앞둔 준비기간에 몇 번이고 당구장에 들러 제대로 진행되고 있는지 확인하러 오는 주민도 있었다. 소문을 듣고 먼 데서 찾아온 이들은 오래된 골목과 옛 간판이 그대로 남겨진 전시장 외관이 젊은 작가들의 신선한 작품과 대비를 이뤄 색다르다고 평한다.

▶ 문의=02-3785-0667



 

구수동 ‘파절이 옥상농원’=“옥상에 떨어지는 햇빛이 너무 아까웠어요.” 20~30대 도시농부 집단 ‘파릇한절믄이(이하 파절이)’의 멤버 이한별(25)씨가 말했다. 이들은 지난해 노들섬과 환경연합건물 마당 등에서 농작물을 길러 홍대 앞 유기농 카페 4곳에 납품할 정도로 실력파 농사꾼이다. 비결은 자원순환. 음식물 쓰레기를 모아 퇴비로 활용하고 지렁이를 이용해 땅을 기름지게 만든 것은 기본이다. 빗물도 아껴 농업용수로 사용한다.



 올해의 목표는 옥상텃밭 만들기다. 단지 상자나 화분을 옥상에 갖다 놓겠다는 것이 아니다. 옥상 바닥 전체에 흙을 올려 진짜 토지처럼 만들겠다는 계획이다. 거래하던 카페 사장님이 구수동 오피스 건물의 옥상을 내줬고, 소셜펀딩을 통해 1000만원을 모으면서 단계를 밟아가는 중이다. 옥상에 흙을 올리려면 구조안전진단을 통과해야 한다. 흙을 올리고 사람이 다녀도 건물이 버틸 수 있는지를 실험하는 것이다. 파절이는 한국도시녹화의 도움을 받아 이 단계를 무사히 통과할 것으로 내다 보고있다. 겨우내 공사를 마쳐 4월엔 첫 파종을 할 계획이다. 현재 따로 디자인 팀을 꾸려 버려졌지만 쓸모 있는 물건을 모으고 있다. 변기를 활용한 색다른 화분을 만들거나, 공사장의 폐 파이프를 주워 농사용 자재로 사용할 요량이다. 더 많은 사람들과 노하우를 나누고자 ‘비 파절이 데이’도 연다. 도시농업에 관심 있는 누구나 신청만 하면 참가할 수 있다. 모임에서 옥상텃밭의 발전 방향이 더욱 구체적으로 굳어지길 바란다.

▶ 문의=cafe.naver.com/pajeori/





<한다혜 기자 blushe@joongang.co.kr/사진=장진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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