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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즈 칼럼] 크루즈 사업에 30개 면허가 필요하다니

중앙일보 2013.01.29 00:56 경제 10면 지면보기
김종훈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
한미글로벌 회장
‘법은 도덕의 최소한’이라는 말이 있다. 이는 사회 구성원들 간 최소한의 약속이 법이라는 이름으로 묶여서 국가에 의해 강제력을 가질 뿐이라는 의미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은 당연히 법을 지켜야 하지만, 법 또한 존중받기 위해서는 도덕을 바탕으로 실행되어야만 한다. 과연 우리 사회에서는 법이 도덕의 최소한으로 작동되고 있는 것인가?



 2003년께 당시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이었던 박용성 회장이 “골프장 건설에 800개의 도장이 필요하다”고 해서 한동안 화제가 된 적이 있다. 몇 년 후 그 당시 장관을 지냈던 L씨와 식사자리에서 규제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다. L 전 장관은 현직에 있을 때 직원에게 골프장 인허가에 필요한 도장 수를 조사시켜 봤더니 실제로 800개가 넘는 도장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며칠 전 크루즈 사업을 하는 지인으로부터 놀라운 이야기를 들었다. 크루즈 선(Cruise Ship)을 하나 띄우려면 숙박업·식음료업·관광업·주류업 등 무려 30여 개의 업종 면허를 따야 된다는 것이다. 이를 확보하기 위해 엄청난 시간과 노력이 소모된다. 또 국내 선적으로 외국을 왕복하는 크루즈 선에는 다른 나라 선박에는 다 있는 카지노가 없어서 외국인 관광객 유치에 막대한 지장이 있다는 것이다.



 박근혜 당선인이 대선 공약에서 특별히 강조한 것은 부정부패 척결과 법질서 정립이다. 하지만 박 당선인이나 차기 정부의 책임자들은 법질서, 부정부패가 상당 부분 ‘현존하는 법의 문제’ 때문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법이 법으로서 기능을 제대로 하려면 그 법이 지킬 수 있는 법이어야 하고 지킬 의사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현실은 이와 거리가 멀다. 골프장 건설에 800개의 도장을 받아야 하는 행정 규제와 크루즈 선 취항에 30여 개의 면허를 취득하여야 하는 법을 그대로 지키라고 요구하는 것은 관료주의적 발상이 아닌가? 누구를 막론하고 이런 복잡한 법을 정직하게 지키기는 어려울 것이며, 결국 정해진 법적 절차에 따라 규제의 문턱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관행대로 통과세를 지불해야만 하는 악순환을 되풀이하라는 얘기와 다를 바가 없다.



 우리는 1948년 정부 수립 후 수많은 법을 만들고 개정해 왔지만 체계적인 개정 없이 필요할 때마다 땜질식 처방을 해온 것이 사실이다. 그 결과 시대에 뒤떨어지고 글로벌 스탠더드와는 거리가 먼 수많은 법의 사슬이 존재하고 있다. 건설산업의 경우 300여 개가 넘는 법이 존재하고, 많은 법이 글로벌 경쟁력과는 거리가 먼 규제를 포함하고 있다. 물론 악법도 법인 만큼 지켜져야 하고 규제도 순기능이 있다. 하지만 무한 생존경쟁을 벌여야 하는 산업계를 국내법의 테두리로 한발을 묶어놓고 글로벌 시장에 나가 경쟁을 하라는 것은 법의 존재 의미와 맞지 않는다.



 새 정부에서는 엄정한 처벌을 통한 부정부패 척결로 법 질서를 회복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 하지만 법 제도의 체계적인 정비와 통폐합, 규제 법의 과감한 폐기에도 우선 순위를 두고 지속적인 노력을 경주할 필요성도 있다.



김종훈 건설산업비전포럼 공동대표·한미글로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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