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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승민 기자의 ‘남자의 그 물건’] 내복 입는 남자들

중앙일보 2013.01.25 04:11 Week& 8면 지면보기
1980년대에 태어난 사람에겐 없을지도 모르겠다. 첫 직장을 얻게 되면 부모님께 선물하는 빨간 내복의 추억 말이다. 아니, 어쩌면 빨간 내복을 못 구했을 수도 있겠다. 요즘 속옷 가게에서 빨간 내복은 ‘천연 기념물’처럼 희귀하기 때문이다. 최근 한 방송 퀴즈프로그램 문제가 이랬다. ‘60년대 내복이 빨간색이었던 이유는?’ 답은 ‘당시의 염색 기술 때문’이었다. 염색 기술도 변변치 않고 염료도 구하기 어려웠는데 빨강이 그중에선 제일 예쁘고 괜찮아 보였기 때문이란다.



 내복 색깔이 무엇이 됐건 따뜻한 내복 선물이란 나름의 미풍양속이 어느샌가 희미해졌다. 어른 공경이나 효도 사상 같은, 아름다운 마음씨가 옅어져서가 아니다. 환경이 변해 내복이 일상 필수품에서 밀려난 것이다. ‘겨울철 내복 입기’ ‘내복 입기로 실내온도 내려 난방비절감하기’ 같은 캠페인은 1997년 외환위기 이후 등장하기 시작했다.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소비자들의 심리에 착안한 제조업체가 캠페인을 시작했고, 나중엔 녹색연대 등 소비자 단체와 정부 차원의 활동으로도 이어졌다. 이후 10 여 년간 매년 겨울이면 다양한 형태의 내복 입기 운동이 벌어졌다. 하지만 캠페인이 끝날 무렵 언론엔 ‘각계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내복 판매량은 별로 안 늘었다’는 보도가 나오곤 했다. 캠페인이 별 소용이 없었단 얘기다.



 그러던 내복, 속옷 시장에 5년 정도 전부터 새로운 트렌드가 생겼다. 일본 의류 브랜드 ‘유니클로’의 내복, 히트텍 상품이 2005년 여름 국내에 처음 소개되면서다. 처음 3년간은 잠잠하더니 2008년 겨울부터 히트텍 내복 판매가 크게 늘기 시작했다. 유니클로가 히트텍을 전략 상품으로 정하고 전 세계 매장을 통해 마케팅을 활발히 펼치기 시작한 게 이때다. 그해 우리나라에서 18만 장이 팔렸다. 이듬해엔 75만장, 2010년 110만 장, 2011년 300만 장 등 엄청난 속도로 판매량이 늘었다. 전 세계 누적 판매량은 3억 장을 넘는다.



 비결은 뭘까. 내의 등을 활발히 연구해 온 대구예술대학 패션디자인학과장 김태규 교수는 “얇고 따뜻한 데다 패션성까지 겸비했다고 광고한 것이 큰 효과를 봤다”고 분석한다. 이전까지 내복을 입으면 움직임이 둔하고 갑갑하다며 멀리했던 젊은 소비자를 다시 내복 시장으로 끌어들인 게 히트텍 마케팅의 성과란 얘기다. 이 브랜드의 올겨울 광고 모델은 배우 류승범과 이나영이다. 실제론 속옷이지만 이들은 겉옷처럼 입고 광고에 등장한다. 현실을 반영하지 않는 광고지만 큰 반향을 일으켰다.



 지난해 11월, 이 브랜드가 히트텍을 사흘간 반값에 판다고 하자 매장 근처에 끝도 없는 줄이 늘어서는 기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올해 히트텍 판매량은 이달 말 500만 장을 돌파할 것으로 예상된다. 유니클로뿐이 아니다. 국내를 대표하는 내의 업체 중 하나인 비비안도 내복 판매량이 전년 대비 15%나 증가했다. 명실상부, 내복의 귀환이다.

 

오늘 밤 11시 JTBC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그 물건’에선 겨울 내의를 속속들이 파헤친다. ‘실험맨’ MC 김구라, 이상민, 이훈, 톡식이 각각 발열내의, 양모내의, 면내의, 기모내의 등 겨울 대표 내복 네 가지로 기상천외 실험 대결을 펼친다. 네 MC가 한겨울 엄동설한에 내복만 입고 내몰린 사연도 공개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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