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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까지 살지…" 110세 보장보험 가입했다가

중앙일보 2013.01.25 00:28 경제 4면 지면보기
[일러스트=이정권 기자]
경기도 분당에 사는 이기열(54)씨는 이달 초 110세까지 보장하는 간병보험에 가입했다. “그때까지 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장수시대라고 하니까 충분히 보장받고 싶다”는 게 이씨의 말이다. 친정어머니가 치매로 오래 고생하고 작은아버지가 뇌를 다쳐 1년6개월간 식물인간으로 누워 있는 모습을 본 것도 영향을 줬다. 이씨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사람이 80세까지만 보장받는 상품에 가입했는데 요즘엔 100세 이상까지 보장받는 상품으로 앞다퉈 바꾸고 있다”며 “나이가 들어 질병으로 가족에 부담되는 게 싫어 아예 11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는 상품을 골랐다”고 말했다.


[J Report] 장수 불안감 때문에 … 110세 보장보험 가입자 확 늘었다
110세 생일날 돈 한 푼 없이 홀로 골방에서 병까지 걸려있으면 … 나, 어떡하지

 0.0024%. 한국 전체 인구에서 100세 이상 장수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이다. 2012년 현재 100세 이상은 1201명. 총인구 5000만4000명(2012년)을 기준으로 하면 4만여 명당 1명꼴이다.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할 정도는 아니라 해도, 쉽지 않은 일인 것은 사실이다. 100세 이상인 장수 노인이 1200여 명에 불과하다 보니 민영 보험에 가입한 장수노인도 많지 않다. 고객수 800여만 명인 삼성생명의 고객 중 100세 이상은 19명에 불과하다. 이런데도 최근 110세까지 보장하는 보험 상품이 속속 등장하고 가입자도 크게 늘고 있다. 국내 보험 시장에 ‘110세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110세 바람의 불씨를 날린 곳은 현대해상이다. 이 회사는 지난해 4월 주보험과 특약의 만기를 100세에서 110세로 늘린 ‘퍼펙트N종합보험’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기본계약과 상해사망, 상해후유장애, 골절·화상, 암진단 등에 대한 보장을 110세로 확대했다. 특히 암진단·간병 등 모두 54종의 특약을 110세까지 보장받을 수 있게 했다. 이전까진 보험 시장에서 100세 보장 상품이 대세를 이루고 있었다.



 이어 지난해 8월에는 동부화재가 기존에 판매 중이던 ‘훼미리라이프 실버 플랜’의 만기를 110세로 늘렸다. 두 달 뒤엔 한화손해보험이 온 가족의 상해와 질병은 물론 의료비, 운전자 비용, 강력범죄 피해를 110세까지 보장하는 ‘무배당 한아름슈퍼플러스종합보험’을 선보였다. 올 들어서는 LIG손해보험이 3일 110세까지 간병비와 간병연금을 보장받을 수 있는 ‘LIG 110 LTC간병보험’을 내놨다.



  한기혁 LIG손해보험 장기상품파트장은 “요즘 노인이 치매·고독사 등 노후 대비를 하지 못해서 어려움을 겪는 사례가 크게 늘고 있다”며 “고령화 시대에 대비하려는 고객의 요구를 반영해 보장기간을 110세까지 늘렸다”고 말했다.



 고객 반응도 뜨거워지고 있다. 현대해상의 ‘퍼펙트N종합보험’의 경우 10명 중 한 명꼴로 110세 만기를 선택했다. 지난해 4월부터 11월까지 8개월간 이 보험에 가입한 25만753명 가운데 110세를 만기로 한 사람이 2만3575명(9.4%)에 달했다. 현대해상 관계자는 “현재 100세 이상 노인이 차지하는 비중에 비해 압도적으로 많은 사람이 110세 만기 상품을 선택한 셈”이라고 말했다.



 이처럼 110세 만기 상품에 대한 관심이 커진 이유는 노후 불안감 때문이다. 많은 사람이 평균 수명은 갈수록 늘고 있는데 질병에 대한 대비, 노후 생활에 대한 준비는 부족하다고 느끼고 있다.



 회사원 김모(49)씨는 얼마 전 치매 판정을 받은 80세 아버지를 요양원에 모신 뒤 110세 보험에 들었다. 한 달에 150만~200만원가량 들어가는 요양원 비용을 내면서 “100세 이후까지 대비하지 않으면 자식에게 부담을 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그는 “지금처럼 평균수명이 늘어나면 나이 들어 혼자 쓸쓸하게 죽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고, 대비할 필요도 느낀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평균수명이 100세를 넘어 110세 시대까지 연장되는 게 꿈은 아니라고 보고 있다. 경제인문사회연구회에 따르면 100세 시대는 최빈사망연령(가장 많은 사람이 사망하는 연령)이 90대가 되는 시점으로 정의된다. 한국은 이 추세대로라면 2020~2025년쯤 100세 시대가 올 전망이다. 불과 10년 후의 일이다.



 김경록 미래에셋은퇴연구소장은 이런 현상을 ‘은퇴 파산’의 개념으로 설명했다. 김 소장은 “은퇴 후 삶을 두 가지로 볼 수 있는데 사람이 세상을 떠났을 때 돈이 남는 경우가 있고, 돈은 다 떨어졌는데 세상에 자신만 남는 경우가 있다”며 “많은 사람이 후자의 경우를 더욱 두려워한다”고 말했다. 그는 “100세 이상 고령자가 5만 명으로 급격히 증가한 일본처럼 한국도 초고령자가 급증할 가능성이 크다”며 “노후에 생존을 위한 최소한의 보장이 필요하다는 걱정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비판적 시각도 물론 있다. 막연한 불안감에 기댄 마케팅이 아니냐는 것이다. 금융소비자 단체들은 “가입자를 더 늘리기 어려워진 보험사들이 보장기간과 범위를 넓히고 보험료를 올리는 수단으로 110세 보험을 내세운다”고 의심한다. 조남희 금융소비자원 대표는 “노후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보험사가 역이용하는 측면이 있다”며 “만기만 늘리기보다는 보험사가 평균 기대수명 내의 보장을 더욱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 생명보험업계의 경험생명표 기준, 해당 나이의 고객이 그 나이에 사망할 확률을 뜻함. 예를 들어 110세 남자의 사망 확률이 100%라는 것은 110세를 넘겨 사는 남성이 한 명도 없다는 뜻임.



※ 경험생명표 : 보험 가입자의 생존·사망 현황을 분석해 성별·연령별 사망률을 계산한 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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