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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치문의 검은 돌 흰 돌] 프로 vs 아마 해묵은 갈등 끝낼 첫수 뒀다

중앙일보 2013.01.25 00:00 종합 22면 지면보기
한국기원 허동수(GS칼텍스&GS에너지 이사회의장·사진) 이사장이 22일 대한바둑협회 회장에 당선돼 양 단체의 장을 겸직하게 됐다. 참석 대의원 15명 중 14표를 얻어 사실상 ‘추대’된 허 회장은 “두 단체가 유기적으로 연계해 필요하다면 토대까지 근본적으로 바꾸는 작업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때이른 전망이지만 바둑계가 희망하는 두 단체의 통합이 가까워진 느낌이다. 



 바둑은 아마추어 단체보다 프로 단체가 먼저 생겼다. 그게 1945년 일본에서 돌아온 조남철 9단(당시 초단)이 세운 한성기원이고, 55년 한국기원으로 이름을 바꾼다



 바둑을 ‘예도(藝道)’로 본 일본식 개념에 따르면 전문기사는 장인이거나 기도정신을 추구하는 도인에 해당한다. 동시에 승부에 목숨을 거는 무사적 측면도 엄존한다. 바둑은 그런 식으로 예술도 아니고 스포츠도 아닌 그냥 ‘바둑’으로 수십 년을 살아 왔다.



 그러나 제도권 밖에 존재했기에 진학, 군 입대 등 민감한 이슈에서 항시 소외됐다. 정부 지원도 없었다. 바둑의 존폐를 좌우할 이런 혜택을 받기 위해선 바둑은 예총 아니면 대한체육회에 가입해야 했다. 한국기원은 예술이냐, 스포츠냐를 놓고 갈등한 끝에 스포츠의 길을 걷기로 결정한다. 이 결정엔 중국도 바둑이 스포츠라는 점이 한몫했다.



 스포츠의 길이 쉬운 건 아니었다. 바둑이 왜 스포츠냐를 놓고 격론이 벌어졌고, 대한체육회는 물론이고 한국기원 내부에서도 반론이 만만찮았다. 체육회 가맹을 위해 전국 아마추어 단체인 대한바둑협회가 한국기원 창설 60년 만인 2005년 비로소 탄생했다. 한국기원에서 분화한 대바협은 곡절 끝에 2009년 체육회 정식 가맹단체가 됐다. 2010년엔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데다 한국이 금메달 3개를 싹쓸이하며 ‘바둑=스포츠’의 이미지는 좀 더 선명해졌다. 그러나 두 개의 단체 사이엔 때로 마찰음이 일었다.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 바둑이 정식 종목에서 빠진 것은 가장 쓰라린 실패로 남아 있다. 두 단체의 ‘분열’이 실패의 원인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



 바둑 팬이기도 한 대한체육회 최종준 사무총장은 “(두 단체가) 개인의 이익이나 조직 속성을 버리고 통합으로 가는 게 좋다”고 진작부터 역설해 왔다. 현재 바둑이 당면한 위기상황을 헤쳐나가려면 보급, 즉저변 확대가 필수적이다. 보급은 아마추어 쪽이 맡고 있지만 프로의 유명세가 없이는 성공하기 어렵다. 다시 말해 두 단체가 따로 놀면 바둑의 힘은 약화된다.



 한국기원 허동수 이사장이 대한바둑협회 회장까지 겸직하게 된 데엔 바로 이 같은 바둑계의 위기의식과 통합에 대한 열망이 담겨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둑은 어린이들의 두뇌개발은 물론 게임중독을 치유하는 힘이 있고, 노인들의 치매 예방과 레저에도 최적이다. ‘힐링’의 시대에 바둑은 새로운 총아가 될 수 있다. 허 회장은 인사말에서 “발전-개혁위원회를 구성해 종합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허 회장의 취임과 더불어 양 단체가 힘을 합해 아마추어의 홀대 우려와 프로의 기득권을 다 같이 불식시키고 바둑이 건전한 사회체육으로 자리잡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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