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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훈범의 세상탐사] 역시 강남좌파가 최고야

중앙선데이 2013.01.20 02:03 306호 31면 지면보기
“아무튼 강남좌파가 최고야.”
요즘 화제가 되고 있다는 영화를 보고 온 후배가 한마디 던졌다.
뭔 소리냐고 물었더니 불만 가득한 표정으로 투덜거린다.
“그렇잖아요. 폼은 있는 대로 다 잡고, 동지들은 다 죽었는데 혼자만 살아남아서 사랑도 얻고 부귀영화도 누리고….”

영화 ‘레미제라블’에 나오는 ‘있는 집’도련님 마리우스 얘기였다. 남들 목숨 거는 상황에서 사랑 타령으로 동지들 사기 떨어뜨리다가, 헌신적 장인 만나 생명 부지하고, 부자 아버지 덕에 호화판 결혼식도 올리며, 민초들의 비참한 삶과는 달리 쭈~욱 잘 먹고 잘살 ‘상팔자’가 아니냔 말이었다(원작에서 보면 그는 장인한테서 60만 프랑이라는 거액을 지참금으로 받는다).

평론가들보다 오히려 명쾌한 해석이었다. 내 눈에 영화는 그저 고춧가루 푼 신파였다. 뮤지컬 무대라면 몰라도 스크린이라면 600명 넘는 사상자를 냈던 민중봉기를 골목길 싸움 정도로 묘사하는 건 아니었다. 그것이 어떻게 평론가들 말처럼 “대선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의 마음을 치유해 준다”는 건지 이해하지 못하겠던 터였다. 그보단 대선 이후의 행태에 실망한 사람들의 분노를 자극한 건 아니었을까. 특히 모든 걸 바꿔야 할 것처럼 떠들다가 대선 패배가 아무 영향을 미치지 않는 편안한 삶으로 되돌아간 강남좌파들에 대해서 말이다.

한때 대선 후보였던 강남좌파는 자기 잘못은 하나도 없다는 듯 미국으로 날아가 버렸고, 그를 도왔던 변호사 강남좌파는 아마존의 맑은 공기를 마시며 머리를 식혔다. 다른 후보를 지지했던 강남좌파 교수는 입을 닫고 정치활동하느라 제쳐 둔 직업활동에 전념하고 있단다.

마리우스는 그래도 나중에 동지들이 산화한 현장을 찾아 속죄와 회한을 노래한다. 하지만 우리의 강남좌파들은 누구 하나 대선 패배의 책임을 입에 담는 사람이 없다. 자기가 되기보다 누구를 떨어뜨리는 게 목적이었던 후보조차 잘못을 인정하고 있는데 말이다. 나는 할 만큼 했는데 국민이 따라와 주지 못했으니 책임이 없고 반성할 것도 없다는 태도다.

그러고 보니 마리우스보다 먼저 떠오르는 장면이 있다. 영화 얘기가 나온 김에 다시 영화로 가 보자. ‘킹덤 오브 헤븐’을 생각하면 이해하기가 쉽다. 1187년 예루살렘 왕국을 지키는 성전기사단 100여 명은 나사렛 인근에서 술탄 살라딘의 군대 7000명과 조우한다. 많은 기사가 수적 열세를 지적하며 신중할 것을 주장했다. 하지만 기사단장 제라르 드 리드포르는 그들을 겁쟁이로 몰아 세운다. 공격은 강행됐고 반대했던 기사들도 별수 없이 따라나서야 했다. 결과는 뻔했다. 60명의 목이 잘렸고 40명은 사로잡혔다.

당시 공격을 반대했던 기사 제임스 드 메일리는 전설로 남아 있다. 수천 적군에 둘러 싸여서도 한 치의 흔들림 없이 칼을 휘두르는 그의 용기에 감복한 무슬림 병사들은 그가 죽는 게 안타까워 항복을 권유했다고 한다. 무모한 공격을 주도했던 제라르는 오히려 달아나 목숨을 구했다.

제라르와 강남좌파를 비교하는 건 지나칠 수 있겠다. 하지만 우리의 강남좌파들에게 그런 배신감을 느끼거나 냉소를 보내는 시선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터다. 뜬금없는 서양 중세 얘기를 끄집어낸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방점은 제라르의 광기보다 제임스의 용기에 찍힌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것이다. 목숨을 아끼지 않아 전설이 됐듯, 전부 잃을 각오를 해야 목표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다.

지난 대선의 승리자 역시 전부를 걸었다. 그 전임자도 그랬고, 그의 전임자 역시 모두 잃는 걸 두려워하지 않는 걸로 이름났었다. 심지어 역대 대통령 가운데 가장 ‘물통령’이라 불리는 사람도 전부를 건 순간이 있었다. 그에 비하면 지난 대선의 패배자들은 그랬다고 보기 어렵다. 아무리 후하게 쳐도 그렇다. 오히려 무임승차에 가깝다. 그들을 지지하던 강남좌파들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어찌 보면 제라르의 전투만큼이나 결과가 뻔한 싸움이었다. 홀로 살아서 떠드는 입을 예쁘게 봐 줄 사람은 없을 테니 말이다.

다음을 기대한다면 모든 걸 거는 연습부터 해야 할 터다. 목표에 도달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걸 다 잃어도 좋다는 각오부터 다지지 않으면 안 될 일이다. 나도 그렇지만 주변부터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못하다면 무늬만 진보라는 ‘짝퉁 진보’, 속은 차지도 않았으면서 겉모습만 신경 쓴다는 ‘패션 좌파’라는 비아냥이 꼬리표처럼 따라다닐 것이다. 목표 도달은 애초에 물 건너간 일일 테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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