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확증편향에 빠지지 않으려면

중앙선데이 2013.01.20 01:31 306호 30면 지면보기
2012년 런던올림픽 축구경기 한·영 8강전을 얼마전 케이블 방송으로 다시 볼 기회가 있었다. 지동원 선수의 선제골로 한국이 앞서 나가다 전반 33분 페널티 킥을 허용해 동점이 됐다. 그리고 채 5분이 지나지 않아 영국의 대니얼 스터리지 선수가 페널티 지역에서 우리 선수와 부딪혀 넘어지자 심판은 주저 없이 또 페널티 킥을 선언했다. 가혹한 판정이었다. 나는 물론이고 당시 경기를 시청하던 대부분의 우리 국민은 오심 내지 편파판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었다. 이미 우리 대표팀이 그 경기에서 승리했고, 이후 동메달까지 획득한 사실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느긋한 마음으로 재방송을 시청했다.

그런데 재방송을 보니 그 판정이 매우 억울하기는 했지만 얼마든지 가능한 판정으로 보였다. 같은 장면을 다시 보았을 뿐인데 왜 나의 생각이 달라진 것일까. 반복되는 느린 화면을 보고서도 그때는 왜 판정이 편파적이라고만 느꼈을까. 우리는 어떤 사태를 객관적으로 인지하고 합리적으로 판단하는 것일까. 여러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다. 혹시 우리는 보고 싶은 것만 보고, 받아들이고 싶은 것만 받아들이는 것은 아닐까.

심리학 연구에 따르면 사람들은 많은 인지적 편향과 맹점을 가지고 살아간다고 한다. 그중 하나가 ‘확증편향’이다. 확증편향이란 어떤 가설이나 명제가 주어지면 그것이 맞다는 증거를 찾는 데 몰입하는 경향을 말한다. 그 명제가 자신의 판단작용을 거쳐 설정되었거나 자신의 기대나 이해관계가 반영된 것이라면 그러한 경향은 훨씬 심해진다. 그래서 자신의 기대나 판단과 일치하는 정보에 대해서는 더 무게를 두면서도 기존의 신념과 상충될 때에는 아무리 객관적인 증거라도 의식적무의식적으로 무시하거나 왜곡하는 경향을 보인다고 한다.

스탠퍼드대 학생들을 상대로 한 유명한 실험이 있다. 사형제도에 찬성하는 학생들과 반대하는 학생들에게 사형제도의 효과에 관한 상반된 두 가지 연구결과를 제공했다. 한 연구는 사형이 범죄억제 효과가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고, 다른 연구는 그런 효과가 없음을 보여주는 것이었다. 논리적으로만 보면 상반된 연구결과를 접한 후 두 그룹의 생각은 그전보다 조금이라도 접근해야 마땅하다. 그러나 실제는 그렇지 않았다. 두 그룹 모두 자신의 생각을 지지하는 연구에 대해서는 ‘역시 그렇지’라고 하면서도, 자신의 생각과 배치되는 연구에 대해서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아니하고 다양한 이유를 들어 그 연구가 잘못되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결과적으로 두 그룹은 모순된 증거들을 제시받았음에도 기존에 가지고 있었던 생각을 더욱 강화한 것으로 나타났다.

확증편향을 극복하기 위한 방안도 다양하게 연구되고 있다. 기업이나 투자자와 같이 잘못된 의사결정이 직접적인 손실로 다가오는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그런 노력을 기대하기 쉽다. 그러나 이해관계가 대립되는 당사자 사이에 나타나는 확증편향을 극복하기란 쉽지 않다.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끼리만 교류하면서 자신들의 신념을 뒷받침할 이유들 만을 쌓아나갈 뿐 어떤 반대증거도 진지하게검토할 의사가 없다.

판사들도 확증편향으로부터 완전히 자유롭기 어렵다. 그래서 법에서는 판사가 선입견이나 편견을 갖지 못하도록 하는 여러 장치를 두고 있다. 검사가 유죄로 판단해 기소를 했더라도 확정판결을 받기 전까지는 피고인이 무죄인 것으로 추정해야 한다는 ‘무죄추정의 원칙’이 대표적이다. 재판에 들어가기 전에 수사기관이 제공한 증거를 미리 보지 못하도록 하는 ‘공소장일본주의(公訴狀一本主義)’도 있다. 제한된 정보 속에서 일정한 법칙에 따라 판단하는 훈련을 받아온 판사들은 적어도 직무영역에서는 일반인들보다 확증편향이 적다는 연구결과가 나온 바 있다. 물론 선입견이나 편견의 영향력을 배제하기 위한 직업적 훈련과 노력은 계속 필요할 것이다.

확증편향은 모든 ‘인지오류의 아버지’라고도 불린다. 찰스 다윈은 확증편향에 굴복하지 않기 위한 의식적 노력들을 주요한 연구방법론으로 채택해 큰 업적을 남긴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관찰결과들이 자신의 이론과 어긋날 때 오히려 더 주목했고, 자신의 생각이 옳다는 확신이 강해질수록 그와 모순되는 증거들을 더 적극적으로 찾아 나섰다고 한다. 우리도 기존의 생각이나 신념에 대해서 그 반대증거를 찾는 데 좀 더 노력을 기울인다면 판단의 오류를 줄이는 것은 물론이고, 공동체의 평화와 화합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이승련 서울중앙지법 부장판사. 서울대 법학과를 졸업하고 제30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서울지방법원 판사, 법원행정처 인사총괄심의관을 거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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