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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림의 성자' 슈바이처는 자기 연출의 대가

온라인 중앙일보 2013.01.20 00:03
슈바이처(左), 마키아벨리(右)


슈바이처와 마키아벨리. 흔히 선과 악의 상징으로 거론된다. 살았던 시·공간은 달랐어도 각각 휴머니즘과 권력지상주의를 대변하는 인물로 이해돼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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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연 그게 얼마만큼 진실에 가까운 걸까. 그들의 숨겨진 얼굴을 들춰낸 두 권의 평전이 나왔다. 일종의 ‘거꾸로 읽는 위인전’이다. 그간 잘 알려지지 않았던 두 인물의 새로운 면모를 보여준다. 사람만큼 흥미진진한 인문학 텍스트가 있을까. 두 권의 책이 반가운 이유다.



역사와 인간, 사회와 개인의 역동적 관계를 다시 한 번 돌아보게 한다.





슈바이처

닐스 올레 외르만 지음

염정용 옮김

도서출판 텍스트

456쪽, 2만원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모른다’는 말, 이 책의 주인공에게 딱 맞다. ‘원시림의 성자(聖者)’라 불리는 루트비히 필립 알베르트 슈바이처(1875~1965)다. 칸트를 연구한 철학자, 생명 존중 사상을 주창한 인본주의자, 아프리카 흑인의 고난을 덜어준 의사, 탁월한 오르간 연주자이자 바흐의 전기를 쓴 문화철학자, 한마디로 팔방미인형 천재의 전형이다.



 특히 나이 서른에 시작한 의학 공부를 마치고 의사로서 헌신한 아프리카 랑바레네에서의 인도주의적 의료 활동은 그에게 1952년 노벨평화상 영예를 안겨줬다.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한 이 위대한 사람을 두고 지은이는 왜 “오래 전에 이미 슈바이처의 새 전기가 나왔어야 했다”고 단언하는 것일까. “역사학의 임무는 (…) 원래 어떠했는지 보여주면 될 뿐”이기 때문이다.



 아프리카 역사와 신학을 전공하고 윤리학 교수로 일하는 이 전기 작가는 “슈바이처의 삶 전체에 대해 합당한 평가를 내리려 한다”고 말한다. 전 세계적인 성공을 거두며 시대의 총아가 된 슈바이처가 위인(偉人)이 될 자격이 있는 위인(爲人)인가 꼼꼼하게 뜯어보겠다는 학자적 결의가 풍긴다. 아프리카사에 정통한 유럽인이 저자라는 사실이 이 도발적 평전의 장점이라 할 수 있다.



‘밀림의 성자’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자기 꾸미기에 탁월한 연출가였다. [사진 텍스트]
 아프리카의 수백 개 병원들 중 하나에 지나지 않았던 슈바이처의 원시림 병원이 2차 세계대전 이후 그토록 유명해진 이유는 무엇일까. 슈바이처가 그 바쁜 진료 중에도 수만 통의 편지를 발송했고, 그 수신자가 아인슈타인에서부터 흐루시초프를 거쳐 존 F 케네디에 이르기까지 다국적 권력자였던 건 왜일까.



 슈바이처는 ‘전략적으로 행동하는 정치적 인간’이었는데 이 핵심 사실이 지금까지 대부분 간과돼 왔다. 그는 의사로서 돌본 흑인들을 친구로 대하기보다 측은히 여겨 의술을 베풀어야 할 하급 인종으로 여겼다. 유럽인으로서 그는 유색인에게 시혜를 준다는 의식이 있었다. 그의 인도주의적 선행에는 식민주의가 악이라는 판단이 없었다.



 이처럼 독일어권에서 슈바이처가 원래 어떠했는지를 보여주는 포괄적이고 학술적인 전기가 아직까지 나오지 않고 있기에, 필자는 그 공백을 메우려는 의도로 집필했다는 것이다.



 슈바이처는 자서전 『나의 생애와 사상』에서 삶의 위대한 순간과 결정을 언급하면서 그 날짜까지 자세히 기록했다. 속인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의 자서전들이 그렇듯 자신의 인생을 고상하게 꾸미려는 의도가 짙다. 기차의 3등석을 타고 해진 옷을 입은 채 점잔을 떠는 슈바이처의 모습은 연출한 것이라는 게 뻔하다 해도 매력 있는 노장으로 보인다. 그만큼 그는 타고난 전략가였다.



 그렇다고 슈바이처가 위인으로서의 자격이 없다는 건 아니다. 8학기가 채 안 되는 기간에 신학·철학·음악이론을 병행해 공부한 걸 보면 분명한 목표 의식을 세우고 효율적으로 집중해 성공에 이르는 낙관주의자의 면모가 강하다. 자신이 성취할 수 있는 것과 없는 것에 대한 현실적인 감각과 함께 지름길을 찾는 본능도 놀랍다. 2차 세계대전 같은 파괴적인 전쟁 이후 많은 이들이 새로운 지향점과 본질을 찾아 나섰을 때 이런 욕구를 반영하는 이상적인 영사막 구실을 한 대형(大兄)의 풍모도 보인다.



 이 모든 것을 이루기 위해 오랜 세월 힘들고 괴로운 자아 발견의 과정을 거친 노력가형 천재라는 점도 평가할 만하다. 슈바이처의 진실을 파헤친 신랄한 비판 뒤에 필자가 쓴 에필로그는 그래서 더 마음에 와 닿는다.



 “사람은 어떻게 신화로 변하는 것일까? 각 시대는 마치 낯설고 이름도 없는 사람이 자신의 해안에 도달하듯 자신만의 알베르트 슈바이처를 만들어낸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삶과 업적은 하나의 공통된 내용으로 통일될 수 없다.”



 한 시대의 우상이 된다는 건 위험하고도 대단한 일이다. 이 책의 부제 ‘생명을 위해 삶을 던진 모험가’가 담은 뜻이다. ‘슈바이처 신화’는 우리에게 역사를 엄정하게 되새김질하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한국 현대사에 명멸한 수많은 위인과 신화를 돌아볼 때, 이 새로운 슈바이처 전기는 하나의 시금석이다. 이미 출간된 전기들을 속속들이 파헤쳐 다시 쓰는 한국 인물사가 얼마나 많아져야 할까, 헤아려보게 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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