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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채한도 증액 막자니 … 미 공화 ‘깅그리치 악몽’

중앙일보 2013.01.16 00:17 종합 20면 지면보기
“미국에 대한 국제사회의 신뢰와 신용도는 ‘협상카드(bargaining chip)’가 될 수 없다.”


오바마 “안 늘려주면 정부 디폴트” 압박

 버락 오바마(Barack Obama) 대통령이 배수의 진을 단단히 쳤다. 그는 14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1기 임기를 마무리하는 기자회견에서 연방정부의 부채한도 증액에 대해 이같이 말했다. 공화당이 장악하고 있는 하원에서 부채한도를 늘려주지 않으면 사상 초유의 미국 정부 디폴트(채무불이행) 사태도 불사하겠다는 경고다.



 만성적자 상태인 미 정부는 국채 발행으로 이를 메워왔는데 정부가 빚을 낼 수 있는 한도를 의회가 정한다. 현재 한도는 16조4000억 달러로 이미 지난해 말 상한까지 찼다. 미 재무부가 비상조치로 2000억 달러를 임시변통해 두 달 정도 시간을 벌어놨지만 늦어도 3월 초까지 의회가 한도를 증액해 주지 않으면 부도를 낼 수 있다.



 하지만 공화당도 물러서지 않겠다고 벼른다. 지난해 말 ‘재정절벽’ 협상에서 오바마의 여론몰이에 밀려 부자 증세를 받아들였던 것과 같은 일을 반복하지 않겠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당시 두 달 미뤄놓은 10년간 1조1000억 달러 재정지출 삭감 협상을 정부 부채한도 증액과 연계해 오바마의 항복을 받아내겠다는 얘기다.



 그러자 오바마가 먼저 정부 부채한도 증액은 협상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없다고 미리 못박았다. 공화당으로선 ‘1995년 뉴트 깅그리치의 악몽’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94년 공화당은 빌 클린턴 정부의 방만한 재정지출을 물고 늘어져 중간선거에서 압승했다. 하원의장이 된 깅그리치는 여세를 몰아 95년 클린턴과 ‘예산 전쟁’을 벌였다.



 깅그리치는 클린턴이 추진한 교육·의료개혁 예산안을 확 깎아버린 1996회계연도 예산법안을 하원에서 통과시켜 대통령에게 내밀었다. 클린턴은 비토권 행사로 맞섰고 연방정부가 두 차례에 걸쳐 28일 동안 마비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연방공무원이 월급을 못 받고 노인과 재향군인이 병원에도 가지 못하게 되자 비난의 화살은 깅그리치에게 퍼부어졌다.



 기세가 꺾인 공화당은 96년 대통령선거에서 클린턴에게 재선을 헌납했고 98년 중간선거에서도 패했다. 공화당 대선주자 0순위로 꼽혔던 깅그리치의 정치생명도 그걸로 끝났다. 공교롭게도 깅그리치와 클린턴은 각각 현 하원의장 존 베이너와 오바마의 멘토였다.



 현재 오바마의 입지는 18년 전 클린턴보다 유리하다. 지난해 대선에서 이겼다. 2011년 중간선거에서 바람을 일으킨 강경보수 ‘티파티(Tea Party)’ 도 한풀 꺾였다. 더욱이 정부 부채한도 증액은 미 의회가 방망이만 두드리면 되는 요식행위다. 얼마든지 막을 수 있는 파국이다. 의회가 이를 자초한다면 비난의 화살은 대통령보다 의회, 특히 하원을 장악하고 있는 공화당으로 향할 공산이 훨씬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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